서정만(에이옥션 대표)
화랑 인터뷰
대담: 박지예(전북회화회 회장), 유예빈(전북회화회 총무) 장소: A옥션 일시_2020년 10월 28일

Q 회장님께서는 언제부터 화랑 일을 시작하셨고,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A 80년대 초에 아버지께서 표구사를 시작하셨어요. 당시에는 전문 상업화랑 보다는 표구사로 시작해 그림을 일부 사고파는 정도였죠. 그리고 외삼촌도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시면서 전주에 내려오실때마다 자주 표구사에 들러 서울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들려주시곤 하셨어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제가 본격적으로 80년대 말 정도부터 뛰어들어 '솔화랑'으로 이름을 바꾸고 화랑으로서의 역할을 갖추기 시작하였죠.
Q 그럼 회장님이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신 1980~90년대에 전라북도에서 활동하시던 작가 중 기억나는 분들이 있나요?
A 그때 당시 미술 시장에서는 우리 한국화와 서예가 거래의 중심이 되었어요. 또한 당시의 문화 자체가 고마운분에게 그림을 선물하는게 일상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을 선물하고 거래하는 일이 많았어요.
전라북도 전주 같은 경우에는 큰 기업체나 생산적인 일을 하는 공단 같은 곳아 많지 않아서 관공서 위주로 미술품이 거래가 되었어요. 그당시 서화의 일번지였던 전라북도 서화가들의 명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기억에 남는 분들로는 벽천 나상목(1924~1999), 토림 김종현(1913~1999), 강암 송성용(1913~1999), 석전 황욱(1898~1993) 선생님이 계시는데, 특히 이 네 분의 거래가 가장 활발했어요. 1980~90년대 이 시기가 위의 네 선생님을 중심으로 서화가 가장 빛나고 거래도 많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다가 1999년도에 벽천, 토림, 강암 세 분의 선생님들이 돌아가시게 되고, 그림을 선물하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점점 미술품의 거래도 줄고, 더 나아가 미술시장이 전반적으로 많이 위축되었죠.
Q 그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동하던 작가분들은 누가 있으셨나요?
A 위에서 언급한 선생님들의 바로 다음 세대는 아니지만 한국화는 벽경 송계일(1940~ ), 현림 정승섭(1941~ ), 목정 방의걸(1938~ ), 이철량(1952~ ), 서예는 산민 이용(1948~ ), 효봉 여태명(1956~ ), 서양화는 유휴열(1949~ ), 선기현(1957~ ) 선생님 등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미술 시장에서의 큰 역할을 하고 있었죠.
Q 회장님께서 화랑을 운영하실 때 1990~200년 초반 시내 중심지역에서의 솔화랑의 역할을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A 그 당시의 화랑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와 소장가의 중간에서 매개역할을 하는 아주 큰 자리에 있었죠. 쉽게 말해 상업화랑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화랑들은 대부분 상업화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순수한 자기 자본으로 (판독불가: 다음 쪽으로 이어짐 — 제공된 이미지 범위 종료)
원 게재: 찾아보는 역사 / 화랑 인터뷰 / 회화지 27호(2020) 30쪽 · 원본 PDF 3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