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화회→회화지 아카이브→30호→"지천년, 견오백(紙千年,絹五百)" 한지의 성지, 전주 흑석골!
특별기고

"지천년, 견오백(紙千年,絹五百)" 한지의 성지, 전주 흑석골!

김도영((재)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문화재학박사)

"지천년, 견오백(紙千年,絹五百)", 이 말은 한지에 작업을 하면 천년이 가고, 비단에 작업을 하면 오백년을 간다는 의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조선의 종이는 중국 사신들이 다투어 받기를 원했고, 그중에 으뜸은 전주한지이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전주는 최고의 종이를 생산했던 곳이다. 전주에 위치한 전라감영에는 한지를 제조하는 '지소'라는 곳이 있었다. 조선시대 한지 제조와 제도는 "1415년(태종 15)에는 국영 제지공장이며 종이제조 사무담당기구이기도 한 조지소(造紙所)가 설치되어 제지기술과 합리적 생산관리에 관한 일이 맡겨지고 지질(紙質)의 개량과 생산원가의 절하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지방공장에는 모두 698인의 지장이 각 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제지기술자들은 법적인 우대를 받도록 규정되어 생활보장을 받는 특전이 부여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회)고 한다.

전주한지의 우수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특히 보존용지로써 특수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문화재복원용지로 선정되었고, 이탈리아 국립보존복원 중앙연구소의 복원용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2024년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신청목록으로 선정하였고, 2026년에 최종 확정될 것에 대비하여 전통한지의 생활화 및 시설 구축 등을 준비 중에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전통한지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전주시는 작년 5월 23일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 흑석골에 한국전통문화전당 <전주천년한지관>을 개관하였다.

옛 지명에 '돌이 반, 흙이 반'이라 해서 '반석리'라고 불리었던 서학동(동서학동, 서서학동)은 산자락에서 검은 돌이 많이 나오면서 대중적으로는 '흑석골'로 불리우게 되었다. 흑석골은 주변을 감싼 주변 산 위 동굴에서 시작된 풍부한 물줄기가 골짜기를 따라 큰 폭의 낙차를 만들며 전주천까지 흘러갔고, 흑석골 동남쪽 뒤로는 보광재가 있는데 이 보광재는 옛날 완주군의 구이면과 임실에서 전주로 통하는 고갯길로써 물자를 이송하고 행인들의 지름길 통로로 이용한 중요한 길이다. 이 길은 한지 제조의 주원료인 닥나무를 재배하는 임실로 뻗어 있었고, 인근에는 생산된 한지를 전국의 상단에게 유통·판매할 수 있는 남부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보광재는 전주시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하여 사라지지 않도록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이처럼 한지 생산을 위한 최적의 요건을 갖춘 흑석골이 한때 '한지골'이라는 별칭으로 명성을 드높일 때가 있었다. 해방 이후 흑석골에도 점진적으로 거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근 지역의 피난민과 이주민들까지 흑석골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 중 지공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 당시 전국적으로 규모를 갖춘 제지공장이 많지 않았는데 흑석골에는 '전주제지'가 이전부터 한지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후 1960년대 들어서 제지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였고, 흑석골에 지공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중소규모의 한지생산 공장(가내수공업 포함)이 단지를 조성하게 되었고 '전주의 산업지대'라고 할 정도로 흑석골이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 초반까지 청조제지, 문성제지, 문산제지, 호남제지 등 약 20~30여개의 한지공장들이 성업하였다. 당시 제지업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최대 규모였다.

한국전통문화전당 전주천년한지관이 발간한 『돋음집』 내용에 보면, "흑석골에서 흐르는 물은 ph 7~9를 넘지 않은 중성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양질의 한지생산에 적합했다고 한다. 종이가 누렇게 변색하는 이유는 산성 성질을 유지하기 때문인데 전통한지는 중성지의 성질을 띠어 오래 간다고 한다. 중성화가 종이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다. 즉 흑석골은 자면 굴에서 발원하는 풍부한 수량의 물, 경사진 지형으로 인해 생긴 큰 폭의 낙차, ph 7~9를 넘지 않는 종이생산에 적합한 물성 덕분에 전국 최대·최고의 한지를 생산 할 수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전국 최대 규모의 한지생산지인 흑석골이 1980년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환경에 관한 정부의 정책과 1990년 후반 중국산 저렴한 기계지가 대거 수입되면서 국내 한지생산업체들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어쩔 수 없이 기계지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통 전주한지의 생산은 급감하였고 설 자리를 잃어갔던 것이다. 또한 흑석골의 한지공장들은 표백제의 정제되지 않은 오폐수 처리로 인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전주시 팔복동에 위치한 산업단지 내로 대부분 자리를 옮겨가야만 했다. 이렇게 한때 흑석골이 아닌 한지골로 불리었던 찬란한 명성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시대변천적 상황을 고려하고,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주천년한지관>이 흑석골에 개관하였고, 전주한지를 전통기법으로 생산하는 기술 및 소재(원료)연구를 주요업무로 하면서, 전주한지의 복원 및 계승, 후계자 양성 및 한지문화의 확산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닥무지 행사를 통해 '한지골'이라 불리우던 시절 한지공장에서 근무하셨던 마을 주민들과 직접 닥무지 작업을 하며 작은 마을 축제를 열었다. 또한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흑석골이 한지골로써 자리했던 스토리를 채집하고 알리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이제는 흑석골에 대한 혁신적이면서 큰 마스터플랜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생각된다.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종이인 전주한지 생산단지가 재조명 받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 국민들이 찾고,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세계종이의 성지로써 '한지골'이라는 명성을 드날리기를 소망한다.

전주천년한지관 외부(중정)
전주천년한지관 외부(중정)
전주천년한지관 정면 출입구
전주천년한지관 정면 출입구
전주천년한지관 야경
전주천년한지관 야경
전주천년한지관 전시실 내부
전주천년한지관 전시실 내부
지면 보기 · 원본 2쪽PDF에서 열기 ↗
지면 1지면 2

원 게재: 특별기고 / 회화지 30호(2023) 52–53쪽 · 원본 PDF 54쪽 ↗

이 지면의 도판

전주천년한지관 외부(중정)특별기고(김도영)전주천년한지관 외부(중정)
전주천년한지관 정면 출입구특별기고(김도영)전주천년한지관 정면 출입구
전주천년한지관 야경특별기고(김도영)전주천년한지관 야경
전주천년한지관 전시실 내부특별기고(김도영)전주천년한지관 전시실 내부

같은 호의 글

30호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