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묵(流墨)-김승호 수묵전
· 기간 : 2003. 5. 28~6.3 · 장소 : 공평아트센터 2층 A실
실험성을 빌미로 한 변종적 한국화가 범람하는 시류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필묵개념을 근간으로 한 수묵화의 묘경을 안출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화가 김승호가 여섯 번째 개인전을 맞게 되었다. 청록산수에서 시작하여 수묵담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화의를 전개해 온 그가 한국화의 소재로서는 익숙치 않은 수양버들을 화두로하여 순수한 묵상표현에 매진하게 된 시기는 2003년 3회 전시로 소급된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형상들과 색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담채마저 배제한 채 오직 지필묵(紙筆墨)만으로 현색(玄色)으로서의 묵미(墨美)의 경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필묵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숙련된 기본기를 바탕으로 표현된 그의 수양버들은 태풍이나 가지치기로 인해 온전치 못한 변형된 형태가 주를 이루었고 특히 나무의 특정 부분만을 클로우즈업시킨 정치한 세필묘사가 두드려졌다. 그러한 가운데 필선은 강약에 의해 여유와 긴장이 조응하고 다소간의 농담의 변화가 가미되면서 점차 그의 묵상에는 기골어린 필의가 살아 숨쉬고 수묵과 운필의 격조 역시 높아만 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지필묵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노력에 따른 일련의 성과를 검증해 보는 자리인 셈인데, 전통적인 화도에 비추어 볼 경우 그의 수묵미학 그 근간은 골법용필(骨法用筆)과 기운생동(氣韻生動) 나아가 수운묵장(水暈墨章)의 개념에 자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우주만물의 모든 색을 아우르는 극색이자 색 이전의 색 혹은 가장 이상적인 색으로서 도(道)의 색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순수한 먹만으로 음양의 조화는 물론 물상의 미감과 내밀한 본성마저 현현해 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수묵구오채라는 문구처럼 먹의 문채라 할 수 있는 건(乾) 묵(墨) 농(濃) 담(淡) 습(濕)의 운용을 통해 다양한 양상의 묵미를 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묵위상(水墨爲上)과 같은 고전미학의 기본 틀 하에서 지필묵이 아닌 물성(物性)의 탐색 예컨대 장지나 요철지 그리고 장봉과 파필의 구사 등을 시연해 가며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표현 물상의 진상은 물론 화면 전체의 기운마저 생동케 하고 있다.
나아가 대상을 표현하는 필의 운용으로서의 필력을 지칭하는 골법용필에 관해서인데 이는 표현 대상의 진실을 농축된 골간의 필로 그려내는 용필의 정신적 경지를 의미한다. 기운생동의 표출여부는 골법용필에서 골색의 창출로 이어지므로 아무리 기교나 수사가 출중하다 해도 대상의 내적 생명의식과 율동성이라 할 수 있는 사의(寫意) 즉, 기골이 비동하지 않으면 화면의 신선함은 상실되고 만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어떤 꾸밈도 미화도 없는 작가의 동태적인 화면에는 단지 기골을 근원으로 한 다양한 조형의 운율만이 존재 할 뿐이다. 그의 호방하면서도 정교한 필적들 속에서 호흡과 기는 붓 끝에 기탁한 채 마치 삼전절(三轉折)의 원리라도 체득한 듯 선조의 속스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근작들에 관해서 부언하지 안을 수 없는 또다른 사항은 허(虛)를 그리는 방법 즉, 여백의 형식 감각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인데 물상과 여백 간의 성긴 조화는 실(實)을 위한 허의 작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케 하여 화면을 보다 변화있고 상쾌하게 한다. 이는 그가 구도나 필묵의 운용에 있어서 일정 단계 묘용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거으로 기와 운의 표출에 있어서 골(骨) 혹은 기는 주로 나무의 굵은 가지에서 운은 느슨하면서도 가느다란 가지와 잎새들의 크고 작은 여백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처럼 주변 경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대상을 소재로 삼아 전통적인 수묵의 정신성을 계승하고 소화하면서 독자적인 화경의 묘를 획득해 내고 있는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미술평론 : 미학박사 손청문〉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11호(2003) 36–37쪽 · 원본 PDF 3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