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화가 잃어버린 아름다움
[도판] (기려도 그림, 캡션 없음)
전통 한국화에는 산수가 펼쳐진 자연 속을 유유히 소요하는 인물이 그려진다. 서양 풍경화 속 점경 인물보다는 크고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화보다는 몇 배 작은 인물이 등장한다. 낚시 대를 들고 가거나 낚시를 즐기고, 배를 타고 낚시를 하거나 폭포를 주시하고, 차를 마시거나 꽃나무를 바라다본다. 초당의 정자에 홀로 앉아 고요히 사색을 즐기거나 책을 읽고, 차를 다려 음미하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달을 보고 시를 읊거나 풍경을 즐긴다.
서양화에서처럼 화가가 바라본 자연의 한 면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산수 풍경 속에 인물을 배치하여 그로 하여금 산수를 바라보게 한 그림을 그린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기 자신이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끼며 돌아보게 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가가 그림 속에서 바라본 곳을 그리는 것으로 시점이 이동된다. 이동시점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림의 폭이 옆으로 길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옛 그림은 두루마리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펼쳐보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병풍 그림도 우에서 좌로 시선을 돌려가면서 보면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서양 그림처럼 한 중앙에서 다짜고짜 보는 것은 사진기로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요즈음 현대 한국화에서 -특히 공모전- 산수화나 풍경 속에 주인공 같은 사람이 그려진다면 낙선 감이 될 것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을 최운수님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 소개된 임당 백은배의 기려도 그림을 보자. 나귀를 탄 맑고 깨끗한 한 중년의 선비가 사동을 거느리고 굽어 돌아가는 길을 나귀 방울 소리와 나귀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산오리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모습은 차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틱낫한의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는 철학을 그 먼데 가서 구할게 아니다.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그림을 보자. 그림이 묘사되었는지 그러지 않는지 자못 설명하기 어려운 끝에 배가 놓여져 있고, 그 배안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노인과 사동이 앉아 있다. 이 노인은 아물아물 거리는 저 언덕 위의 꽃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주석의 한국미특강(솔, 2003.1)에 따르면 노인이 본 언덕과 나무는 주관적 풍경이라고 한다. 단원의 노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전하는 것이다. 화제 "老年花二似霧中看, 늙은 나이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네"라는 시구는 본래 두보의 한시에서 따온 것이다. 시 한 수를 읽고 단원은 이 그림을 그리고 또 시조도 지었다. "봄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이중에 늙은 눈에 보이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그리고 일필휘지로 화제를 쓰고 자작시를 시조창으로 유창하게 읊조렸다는 것이다. 그 느낌을 시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나타낼 줄 알았고 그 집합체가 한편의 그림으로 남았다.
詩書畵는 동일시되었고 화가의 그림이 더욱 풍성하게 되었다. 짧게는 한 행이나 시나 두 행으로 제화를 썼고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이 그림과는 별도로 제첨과 발문, 비평시를 붙였다. 한사람의 주인공으로 그림 가운데 화가가 있으며 유창한 한편의 판소리처럼 그 울림이 그림과 함께 제화로 남았다.
[도판] (단원 마상청앵도, 캡션 없음)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원의 馬上聽鶯圖를 보고자 한다. 주인이 막 말의 고삐를 당겼는지 말의 뒷다리가 엉켜 있고 선비가 고개를 돌려 새소리 나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 구종 아이도 바라보는데 말만 우뚝 섰다. 그리고 배경은 텅빈 공간이다. 이 여백은 시의 내용과 같이 비안개 자욱한 강으로 보인다. 봄의 정경을 이렇게 농익게 표현한 것이다. 시흥이 감돌고 인생무상의 아련한 흐느낌 마저 젖어들게 한다. 현대 어떤 그림이 이만한 울림을 가져다 주겠는가. 표현성이다, 상징성이다 외치고 조형성의 근저를 말하고 있지만 인간의 내면을 속속히 전해줄 수 있을까. 오주석님의 해석에 의하면 김홍도가 시까지 지었고 썼다는 것인데, 시서화는 기본이고 철저하게 공부하고 개척해 볼 일이다. 이 그림의 느낌을 죄다 시로 형성해 놓았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시 짓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귤 한 쌍을 오려 놓았나/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 실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 다가 봄 강에 고운깁을 짜 놓았구나" 우리 산천은 어디를 가도 그림 같고 시흥이 돋는다. 중국시인이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보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지 않은가. 사계절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은 이 땅에 사는 누구나 시인이나 철학자, 화가로 만들 수 있다. 퇴계와 율곡이 나왔으며 많은 시인 묵객이 나왔다. 그러하기에 옛 그림 속에 온유함과 후덕함, 절제미와 조화미, 여백의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 것이다.
[도판] (주상관매도, 캡션 없음)
현대 한국화는 급속히 발전하는 듯 싶더니 급속히 침체의 늪에 빠졌다. 모두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는 것이다. 한국화 속에 서구 표현 기법만 기생하고 있다. 문인화를 별개의 것으로 분류했으며, 그 의미도 작게 생각하고 있다. 문인화 하면 사군자만 떠올리고, 수묵으로만 그려지며, 좀 더 의미가 확대 된 것이 없다. 문인화 공모전은 그 사례가 더욱 심하다. 미술대전과 각종 공모전의 한국화 그림이 조형요소로 된 표현 성에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원 게재: 한국화에 대하여 / 회화지 11호(2003) 44–45쪽 · 원본 PDF 4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