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미술관 입문기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트리나 포올러스는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 무엇인가를 내 나름대로 '문화의 향유'라고 생각하며 살고있다.
산골에서 자라난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제대로 문화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맛은 낯설지만 톡 쏘는 자극으로 삶이 지루하고 밋밋하기만 했던 나에게 무한한 호기심과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안겨 주었다. 그 후 다양하게 문화, 예술분야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문화행복 추구지수'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녀교육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세끼 밥을 챙겨 먹듯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주길 바라고있다. 문화야말로 우리네 삶을 보다 싱싱하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거나 음악회, 공연장, 서점, 영화관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공간을 두루 찾아다니면서도 유독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바로 미술관이다. 자연이 그려 낸 풍경이외엔 달리 그림을 감상하거나 마음껏 그릴 수 없었던 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왠지 미술관에 들어서면 낯을 가리고 어려운 숙제를 앞에 둔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곤 하였다. 그런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도 미술관을 나들이 할 기회는 좀처럼 많지 않았다. 전북학생종합회관으로 도서관 나들이 길에 들러본 1층 전시실이나 가끔 들러 본 예술회관 그리고 소리문화의 전당에서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잠시 들러본 전시회 관람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눈이 빠지게 방학을 기다리고있다. 방학이 되면 곧장 아이들과 함께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미술관 순례와 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것이다. 3년 전, 신현림의 사진 산문집인 〈희망의 누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이후, 그녀의 다양한 책은 물론 미술과 관련된 책을 즐겨 찾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이란 분야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방학엔 큰 맘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9박10일 동안 서울로 문화체험 나들이를 감행하였다.
[도판] (수묵 작품, 캡션 없음)
서울에서의 박물관, 과학관, 고궁, 미술관, 예술의 전당, 대학로로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9박 10일간의 추억은 지금껏 우리들에게 무궁무진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또 다른 서울나들이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갖게 하였다. 열흘 동안 머물렀던 인사동 거리는 신선하고 다채로운 체험을 많이 제공해주었던 문화공간이었다.
인사아트센터에서의 '상상 속의 그림전'은 놀이를 통한 다양한 미술체험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주 쉽게 그림과 친해질 수 있었던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느끼고 만들고 그림과 놀았었다. 우연히 지나다 들러 본 한가한 갤러리에서의 한 때는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 현대작가들의 그림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해주었고, 그림이 내게 던진 화두를 기쁘게 받아들이게 해주었는가 하면, 며칠동안 그로 인해 끙끙대보게도 하였다.
그 외에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하고 다닌 골동품 상가나 예쁜 그릇상점, 근사한 옷가게, 찻집의 인테리어 등은 모두 새로운 눈요기요, 볼거리요, 우리의 미적 안목을 확대시켜 주었던 것들이었다. 그 후 즐겨 맛보게 된 '미술'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첨가된 '영혼의 비타민'은 우리들 생활에 더욱 더 싱싱한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지난 겨울방학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밀레전'을 다녀왔다. 워낙 사람의 발길이 많아 사람에 치였던 터라 '밀레전'보다는 그 옆 조그맣게 문이 열려있던 천경자 화가의 방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더욱 강렬한 인상을 안고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올 여름방학엔 미술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김환기 미술관 ,이응로 미술관 그리고 가나아트 센터 등으로 미술관 순례를 하고 왔다. 아이들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술관 나들이를 즐길 정도가 되었다. 큰 아이는 그림을 보며 자신의 느낌을 말해주기도 하고 내 느낌을 묻기도 한다.
아직은 천방지축인 둘째는 제 멋대로 구경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가 멋지게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림 구경 못지 않게 나를 즐겁게 한다. 늘 지지고 볶는 일상생활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아이들의 대화가 즐거워 자꾸 길을 나서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가 공부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둘째 아이가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기나 종이 접기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좌충우돌 돌아다닌 미술관 경험이 아이들의 창작의욕이나 미적인 감각을 건드려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
쳇바퀴 돌 듯 별다를 것 없이 일상에 묻힌채 무뎌진 나의 감성이 또 다시 신선한 자극과 충격의 찬물 한바가지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방학이 가까워지는 것이 분명하다. 돌아오는 겨울 방학엔 지난번에 들러보지 못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종상 미술관과 선재아트센터, 등잔 박물관, 그리고 또 다시 인사동 그 거리를 만끽하고 싶다.
이번엔 또 어떤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새로운 '영혼의 비타민'을 제공해줄지 그리고 무뎌진 나의 감성을 또 다시 얼마나 반짝거리며 출렁거리게 해줄지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나날들이다.
[도판] (천경자 풍의 인물 그림, 캡션 없음)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1호(2003) 47–48쪽 · 원본 PDF 4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