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솔 화랑을 다녀와서』
9월 27일 오후... 학원으로 향하던 난, 운보 김기창(1914~2001) 선생님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솔 화랑에 들르게 되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안내를 하는 예술회관이나 학생회관과는 달리, 팜플렛만 놓여 있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전시장에서 난 혼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지난 겨울, 청주 운보의 집에서 보고 온 이후 처음 접하는 운보 선생님의 작품들이었다. 세상의 잡된 소리대신 신이 조용히 읽어 내리는 맑은 소리, 이야기를 들으며 한 점·한 선 정성스레 화폭에 옮겨지는 운보 선생님의 회화세계는 이제 신의 경지에 이르러 내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운보 선생님의 작품에서 난 조금의 욕심도 느낄 수가 없었고, 아름다운 세계만이 내 눈 속에... 내 마음속에 차분히 펼쳐질 뿐이었다. 청록산수, 화조, 바보산수 등 멋진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운보 미술관에서 내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다 준 「걸레추상」과 「太陽을 먹은 새」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太陽을 먹은 새」는 태양을 먹었으되 조금의 오만함도 괴로움도 없는 오직 순수하고 무구할 뿐이었다. 비단에 채색한 청록산수는 여러 점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내 눈길을 끈 작품은 '청주 빨래터'이다. 산을 표현한 먹 선에서 운보 선생님의 기가 느껴졌고, 자연스런 번짐 또한 내가 운보 선생님에게서 받은 감동이 비단에 번져 나가는 것 같았다. 「바보 山水」 또한 내게 색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켰고 세태를 풍자하는 운보 선생님의 강렬한 예술 정신이 화폭에 투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에 난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왠지 모를 뿌듯함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갈수록 조용함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恨)이라면 한(恨)이지요.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늙어가면서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의 세계로 귀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날더러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
운보 미술관에서 읽고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던 운보 선생님의 글이다. 만일 내가 그랬다면....내가 운보 선생님처럼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아마 난 쉽게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오히려 행운으로 여기고 살다 가신 운보 선생님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좀 더 일찍 그 분의 예술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이번 전시회는 운보 선생님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늦게나마 운보 선생님의 비서실장이셨던 빨간 고무신 김형태 아저씨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들을 수 있게 된 걸 더 없는 영광으로 여기며, 이미 고인이 되신 운보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전시장을 다니면서 내가 감동을 느끼는 일이 잦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안고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1호(2003) 51쪽 · 원본 PDF 51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