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작품

작업노트
소설 탁류는 채만식의 대표작품이다. 1937년 10월 13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 소설로 사회의 어두운 세태를 그렸다. 우리 민족의 기구한 처지를 나타낸다. 중간에 백제의 흥망을 더듬는다고 한 것은 나라가 망한 사정을 되새기게 한다. 긍정적 인물들의 수난을 그리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당대의 어두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친일과 반일의 기로에 서있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탁류는 한 많은 역동의 시대에 중심에 있는 작품으로 우리가 알아야할 작품이다. 그의 부친은 상당한 부농이었으나 1905년을 전후해 일제의 조선토지수탈 계략에 의해 경제적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그의 집 가까이에 이엽사 농장이라는 대일본지주가 살았다. 이엽사 농장은 전주, 익산, 옥구에 논 1,000정보·밭 200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농민 1,700명을 거느린 거대 농장이었고 본거지가 군산시 서수였다. 탁류를 쓴 채만식의 고향집은 서수와 임피의 경계 지역으로 한 마을이나 같았다. 이엽사 농장주인은 니이가다현 사람들이었고 주임은 사이토오 이었는데, 일본이 밝힌 전국 평균 소작료가 46.7~42.4%였는데 75%의 소작료를 요구하는 악질 농장이었다. 동아일보를 보면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전반까지 전북에서는 16여건의 소작쟁의가 있었고 군산에서는 이엽사 소작쟁의 이외에도 2건 이상의 큰 소작쟁의가 있었다고 한다.
서수에서 농민들을 옥구농민조합 아래 서수농민조합을 1927년 8월 4일 만들었다. 이어 8월 5일 서수청년회가 만들어지고 두 단체는 8월 19일 '농민문제'강연회를 하다가 경찰이 가로막자 '서수농민조합 만세', '서수청년회 만세', '세계 무산자 만세'를 외쳤다니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소설 탁류는 탄생했다. 이 작품에서 정주사,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모두 속물화하고 타락한 1930년대 한국사회의 인간상들이다. 이들은 초봉을 이용하고 탐하며 짓밟는다. 그리고 효용가치가 없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녀를 버린다. 채만식은 소설에서 이 속물들을 그만의 장기인 풍자로써 꼬집는다. 순결한 여인 초봉을 농락하는 이 사회가 채만식이 말하고자하는 탁류이다. 이 그림은 흐르는 탁류 속에 시대의 상들이 떠오르게 했다.
약력
이 승 훈(Lee, Seng-hoon)
- 全州大學 美術敎育科 卒 同 大學院 美術科 卒業 ● 個人展 1回(全北藝術會館) ● 東으로 韓國現代美術展(中國西安美術學院美術館) ● 全北人物列展(全北藝術會館) ● 傳統의 힘, 韓紙와 毛筆의 造形展 外 多數 ● 大陸의 메아리展(安山 丹園展示館) ● 全北美術의 照明(全北道立美術館) ● 現 : 山墨會, 志朋展, 全北繪畵, 韓國美協, 傳統美術敎育硏究會, ART, 益山古蹟硏究會, 천칭天秤文學會 會員, 群山大成中學校 勤務
원 게재: 전북회화 나의작업노트 / 회화지 14호(2006) 16쪽 · 원본 PDF 1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