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부활을 꿈꾼다
한국화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학교 교육적 본질에서 본다면 창의성과 독창성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생활화 측면에서 도구 사용은 손쉽게 접하기가 어려워 학교 수업에서 다른 용구재료에 밀리기 일수 이었고, 한국화를 전공하여 수업에 임하는 교원도 적었다는 이유를 且置 하더라도 꽤 이유 있는 항변은 없을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과시욕구가 잠재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산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고. 교육학자인 피아제는 첫눈이 내리면 누군가 첫눈을 밟기 전에 아침 일찍 자신이 먼저 밟아보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서둘러 학교에 갔던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국을 확인하면서 존재에 대한 만족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회화에서 생명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결합하여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나 그 과정이라 한다.(정희남교수의 신나는 미술교실, 생활지혜사)
우리 회화사에 나오는 작가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창의성을 발현한 회화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원 그림이 조선시대 후기에 한국 풍경을 양식화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데는 창의성과 독창성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단원 김홍도 그림이 독보적인 것은 그 무렵 비슷한 표현을 보인 작품들이 그의 화풍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단원의 아들 김양기나 단원의 제자인 김득신, 백은배, 유숙, 유운홍 등이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들 그림속에 단원의 작품 체취가 남아있다.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 청풍계도, 장동팔경 등 작품을 남겼는데 이 모델이 된 곳은 지금의 서울 청운동 일대이다. 특히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자연을 매우 즐겨 그렸다. 정선은 승경지도 그렸지만 동작진, 남산, 세검정 그리고 압구정도를 그렸다. 부벽준을 강하게 수직반복으로 사용하여 강직하고 시원한 붓놀림으로 그린 청풍계의 그림은 아름다움을 살려 암벽이 살아 있는 듯싶다. 자연 중에서 화가들이 좋아하고 인상 깊은 곳은 평생 교과서가 된 것이다. 세잔이 생 빅트와르 산을 평생을 두고 그렸다. 이 산이 그의 고향이면서 매우 좋아 했던 것으로 본다. 연작으로 그렸으며 새로운 미술이 개척되는 쾌거가 이룩되었다. 원뿔의 산이며 원통의 나무, 공으로 처리된 솔잎덩어리 등은 그의 입체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그 시대 풍미했던 인상주의를 등지고 창의성 있게 새 양식을 세운 것이다. 20세기 입체파에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그림이 눈속임이 아니라 산이라는 대상이 오브제로서 형태로 파악 되었다는 것이다.
단원이나 겸재가 시대의 美術觀을 깨우치고 새로운 미술을 개척한 것은 세잔과 비교해 보듯 간과해서 볼 일이 아니다.


강희언의 인왕산도 겸재의 인왕산인 인왕제색도와 다르지 않은가. 당시 화단에서 볼 수 없는 정확한 원근법과 투시가 서구적 기법의 사생풍경에 가깝게 개척했으며 특징 있는 먹의 농담은 골계미를 보이고 있다. 홍세섭의 유압도는 지금 보아도 신선미가 있다. 조선조 세종대 이수문이 일본에 영향을 끼쳐 일본인 슈분(周文)이 한국에 다녀갔던 것은 독창성과 창의성에 있지 않겠는가. 일본 사람이 해마다 부산 동래관에 머물며 조선 그림을 사갔다. 소당 이재관의 그림이 당대 독창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어부도는 원경 없이 근경에 어부인 주인공이 그려졌고 초저녁 어스름 달 밤과 낚싯대와 사립문의 강아지는 오두막과 함께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이 시대엔 여산초당, 적벽, 소상팔경 등 중국화풍 내지는 중국식 정자와 초당, 의복 등이 중국풍이다. 그런데 임당 백은배의 그림은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고 거니는 모습이다. 기려도엔 한국 강촌과 한국의복을 입혔다.
근대 화풍도 중국풍과 일본풍이 만연했다. 그 당시 청전 이상범 등 6대 화가들은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그 시대를 살았다. 특히 청전의 경우는 승경지를 그리지 않고 황량한 언덕이나 벌판길을 그렸다. 구태의연한 자연과 답습식 풍경을 그린다면 이미 사생아이지 않을까.
오늘날 전시되고 있는 한국화를 보면서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독창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고 관념산수도처럼 답습에 의한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각 기관에서 실시하는 미술교육이 강사의 기법과 효과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학교 교육 또한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기교와 재료 활용에 치중되고 있다고 본다. 개성과 창의성을 위한 교육 없이 예술혼을 말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국화와 나아가서는 한국의 모든 미술이 활성화 되지 못하는 것은 여기에 문제가 있는 듯싶다. 따라서 각 개인의 예술혼에 대한 지도와 열정만이 화가로써 먼저 해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 한국화의 부활은 꿈이 아니다.

원 게재: 전북회화-한국화에 대하여 / 회화지 14호(2006) 30–32쪽 · 원본 PDF 3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