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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회화-문인화의 현대적 변용

문인화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에 대하여

이철규 (예원예술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교수)

문인화는 동양화에 있어서 양식개념보다는 정신개념을 담은 이지적인 사상을 구성하면서 성립된 예술이다. 학식과 인격이 높은 문인 사대부에 이루어진 예술이기에 그 내재 된 정신세계란 매우 심오한 것 이었다.

문인화는 그 발생시기부터 현실세계의 온갖 부자유의 속박에서 탈피하려는 신선합일적 사상(神仙合一思想)의 노장사상(老莊思想)과 일종이 자연미관을 강조하며 '묘오(妙悟)' 의 경지에서 대자연에 귀의 하려는 속세초월사상(俗世超越思想)을 형성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 된 경지, 즉 자연의 미를 인격화하려는 고차적인 정신성을 추구하였다. 문인화의 출발이 고차적인 정신성의 추구로 인한 사의적인 상징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문인화는 사실적인 문제보다는 화면에 깃든 작가의 정신주의를 제일주의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심오한 정신세계가 바탕이 되는 문인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조선말기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와 그 추종세력에 의해 극도의 문인취미를 낳으며 크게 융성하였다. 하지만 말미에 이르러 문인화가 내용보다는 다분히 형식적이 되었고, 사의를 중요시 여기는 본연의 사상적 측면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는 김정희를 비롯한 이하응, 민영익, 정학수 등 일부 문인사대부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인계급으로 한 시대의 분위기에 맹목적으로 이끌려갔을 뿐 높은 교양과 화론에 근거한 작업이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격의 화풍추구가 문인화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적 바탕이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19세기 말엽부터는 심한 형식주의로 타락 되었으며, 후진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당의 업적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고 오랜 단절을 초래하였다. 또한 근대를 넘어 오면서 문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된 데에는 그 몇 가지 요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문인화의 주된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는 시, 서, 화일치사상(詩.書.畵一致思想)의 붕괴형상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詩와 書는 1920년대 선전의 계기로 書는 근대적 회화로 인식되지 못하고 사실상 취미와 교양으로 간주되어 버렸다. 이는 문인화가 순수한 회화의 영역에서 제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정상적인 미술활동의 중지를 들 수 있다.

셋째, 서구 문명의 수입으로 인한 사회계급의 붕괴현상으로 문인화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문인 사대부라는 신분계층의 소멸이다.

넷째, 전통적 문인화의 시대적 예술성의 한계를 들 수 있다. 문인화란 작가의 인품을 그림의 예술적 거치나 미적 가치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시대적 미감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인화의 발전은 신분계층이 크게 변화되고 조선 문인사대부(文人士大夫)인 선비와 양반계층이 없어지면서, 동시에 문인화라는 하는 장르 역시 설자리를 잃게 되니, 전통 문인화의 계승이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미감에도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많았다. 특히 1920년대에 이르면 엄격한 의미에서 전통회화의 개념이나 기준과 이념이나 방법이 도전을 받아 와해되는 징후를 나타내게 되었다. 즉 남화, 북화, 문인화등의 장르 간의 구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사회변화와 화가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었다. 예컨대 사대부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화가가 전문적인 직업인이 됨에 따라 사대부의 교양이나 고결한 인격으로부터 문인화의 요구만이 분리되어 하나의 양식이 된 것이 그러하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문인화를 즐겨 그리는 화가가 반드시 높은 교양이나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남이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일제의 식민지 아래 짓밟히면서도 그에 항거하는 화가가 없었고, 그들의 작품에서 원말 사대가나 청조(淸朝)의 석도(石濤), 팔대산인(八大山人)과 같이 정말 격조 높은 문인화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1)

이렇듯 위에서 언급한 문인화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근대, 현대에 와서는 문인화가 엄격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타당할 것이지만 문인화가 지니고 있는 정신을 이해하고 실현하려는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문인화의 전통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은 문인화가 존속할 수 있는, 즉 하나의 회화양식으로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문인화 지닌 정신과 조형성에 대한 연구를 통한 현대 문인화로서의 변용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인화의 정신을 이해하면서 현대 문인화로서의 변용가능성을 나름대로 추구하였던 작가로는 중국의 청말 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을 들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과, 경운(頸雲) 김용진(金容鎭),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 월전(月田) 장우성(長遇聖)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김용진은 해방 후 문인화 계통의 작품에 전념하면서 문인화의 회화적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펼쳐 보였다. 허백련은 남종화법을 토대로 문인화관에 입각해 詩書畵一致의 사상을 추구하였으며, 고결한 필의와 화격을 고수하면서 문인화가의 전형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볼 때 문인화의 양식적인 전환은 해방 후 등단한 새 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몇몇 기성작가들의 자기 갱신을 통하여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선배들처럼 전통에 얽매이지 않거나 꾸준한 실험을 통하여 문인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변용시켰으며, 이들의 미감에는 문인화의 조형성이 동양정신의 구현과 더불어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사실에 공감하였던 것이다.

몇몇 작가들에 의해 문인화의 정신을 이해하면서 현대적 미감으로 변용시켜 왔지만 화단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후 현대화단에서는 그 인식이 사뭇 퇴색된 감이 없지 않다. 전후 현대에서는 문인화를 무조건 아마츄어들이 그리는 그림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원래부터 문인화는 산수화로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수는 문인화가 아니라는 생각과 그 소재에 있어서도 사군자 혹은 화훼화만으로 인식되어져 있고2) 문인화에 내포된 격조와 은유적 함축성 등의 개념적 성격을 경원시 하고 그 기법만을 전수시키는 것에도 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현대 문인화로서의 변용가능성은 사군자라는 국한적인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문인화의 그 내면에 내재된 정신을 십분 이해하면서 시대적 미의식에 맞는 회화적 차원으로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 1) 김윤수, 한국 현대 미술전집9, 한국일보사 1977, pp 92-93 2) 홍석창, 현대문인화를 위한 제언, (미술세계, 11월호, 1985),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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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북회화-문인화의 현대적 변용 / 회화지 14호(2006) 33–35쪽 · 원본 PDF 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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