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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가치와 전북서예

이은혁 (서예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실은 이로부터 자신이 처한 곳에서 언어와 경험으로 축적된 관습과 문화를 터득하며 조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른바 지행의 일치를 목표로 일생동안 배우고 실천하며 저마다의 삶을 아로새기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이 지역성을 벗어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성이란 곧 문화에 다름 아니다. 문화는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유무형의 공동가치관념으로서 지역적 특성에 따른 생활관습과 그를 통해 축적된 가치관념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개인적일 수 없으며 집단적 성향을 띤다. 우리의 삶은 축적된 전통문화를 배우고 향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문화체험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생활과 문화는 결코 둘이 아닌 것이다. 인문(人文, liberal arts)이라는 말도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인문이라는 말로 소결을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류의 문화생활이 곧 예술활동이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쉽게 예술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두드러진다. 만약 예술이 일상과 전혀 다른 하나의 창작행위로만 간주된다면 그것은 결국 현실과 괴리된 특정인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소외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인문이 단순히 인류의 문화로만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예술을 논하고자 할 때에는 인(人)과 문(文)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인은 무엇이며 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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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 인간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지역적 한계성과 삶은 곧 문화체험의 과정이라는 인문성에 대하여 수많은 성찰이 행해져왔다. 서예는 앞서 말한 인문성을 다분히 함유하고 있는 예술이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문자를 아름답게 서사하는 것이 예술일 수 있느냐는 회의가 뒤따른다. 예술이 곧 작가의 사상과 철학을 형식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볼 때 문자의 서사는 소극적인 행위로 치부될 수도 있다. 대부분 서의 예술성을 피상적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서사를 떠나 예와 도의 경지에 이르면 차원을 달리한다.

전통서예가 대부분 서사라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서사는 문(文)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때의 문은 짐짓 문자나 문학을 일컫는 것이지만 서사를 벗어나면 자유경지인 예와 도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서예를 단순히 문자를 서사한다는 기능적 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가 체험하고 있는 서의 예술적 경지는 인문학의 총결이다. 서예를 하려면 우선 언어문자에 대한 인식이 선결되어야 한다. 문자에 대한 지식이 아닌 인식인 것이다. 지역성과 관련하여 서예의 기원과 발전이 한자문화권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자에 대한 인식이란 한자에 대한 인식으로 견줄 수 있다(여기에서 최근 행해지고 있는 현대서예 및 한글서예는 논외로 한다).

한자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문화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한자에 대한 인식 없이 서예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일종의 약속부호로서 상징적인 문자에서 미를 발견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누천년을 통하여 지속되어 왔다. 서예가 인문학의 총결이라 할 때 문화의 기원이 언어문자의 생활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은 새삼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이 어떤 형식화된 가치체계라는 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모두 언어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서예는 의미전달 면에서 여타 예술과는 달리 직접적이다. 이미지보다는 상징적인 문자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서예는 성찰을 토대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문자를 빌어 표현하며 그 의미를 담은 문자에 미적 요소를 가미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예술이다.

문자의 구성을 결구(結構)라 하듯 이미 문자에는 구성미가 내포되어 있다. 흔히 선의 예술이라 일컫는 것도 선의 구성이 곧 문자라는 인식하에서 단정된 개념이다. 그러나 서예는 점과 점을 잇는 선이 아닌 고차원의 획의 예술이다. 단순히 기하학에서 일컫는 선으로만 이해한다면 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문자에 미적 요소를 가미한다 함도 선이 아닌 획을 이른다. 그렇다면 획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선에 질감이 가미되어 생명이 약동하는 질긴 근성이다. 누천년동안 수많은 서가들이 생명력 있는 획을 구사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서(書)가 동양예술의 근간이 된다함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일획이 만획을 당해낼 수 있다. 굳이 석도(石濤)의 화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제시한 육법(六法) 가운데 기운생동(氣運生動)과 골법용필(骨法用筆)이 서예의 획법에 기초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획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득의 경지이다. 자득의 경지에 이르면 서와 화가 달리 구분되지 않는다. 이른바 서화동원이며 서화일치이다. 그러므로 서가 곧 동양예술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서화라 하고, 문인화라 함도 여기에 기인한다. 별개의 서가 있고 별도의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동양예술에서 서는 항시 체(體)로서 자리하며 그 쓰임이 실로 광범위하다.

전북을 일컬어 서예의 고장이라 한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부합되어 있다. 지역성을 살펴보면 서두르지 않는 여유와 남방적 온화함 그리고 전통을 중시하는 풍조가 그렇다. 전북에도 이러한 서예의 가치를 중시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적지 않다. 시대별로 그 대략을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15세기 초 고창의 영곡 고득종이 거론되고 있으며, 16세기에 활동한 익산의 양곡 소세양(1486-1562)과 고창의 노계 김경희(1515-1575)가 있다. 이후 17세기에 활동한 인물로는 김제의 백석 유즙(1585-1651)과 창강 조속(1595-1668)이 있고, 이 두 사람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명성을 떨친 이가 송재 송일중(1632-1717)이다. 그는 한석봉에 비길만한 인물로서 최초로 전북서맥의 발원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8세기에는 창암 이삼만(1770-1847)과 호산 서홍순(1798-?) 등이 하나의 서파를 형성하며 활동하였다. 창암은 추사와 병칭될 정도로 개성적인 필치를 보였다. 그의 필법은 호산 서홍순, 기산 모수명, 해사 김성근, 노사 기정진(1798-1876)으로 이어졌고, 호산은 다시 호운(湖雲)과 우운(又雲)으로 가계 전승되었다.

이렇듯 창암을 축으로 하는 서파는 19세기 석정 이정직이 출현하기까지 전북서맥의 두 번째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19세기에는 석정 이정직(1841-1910)과 간재 전우(1841-1922)가 출현하면서 서단은 물론 학문에서도 큰 변화를 예고하였다. 석정은 해학 이기(1848-1911), 매천 황현(1855-1910)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일컬어진다. 이 중 석정은 연경을 다녀온 적이 있어 학문에 있어서도 매우 광범하다. 특히 서화를 겸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서에서는 동기창류의 유려한 행서가 주류를 이루고, 화에서는 오원 장승업과 몽인 정학교의 화풍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김제에서 활동한 석정의 학문과 예술은 조주승, 오기두, 김연호, 박규환, 조기석, 조병헌, 송기면, 나갑순, 유영완, 조승, 강동희, 최승현 등에게 전수되었다. 조주승의 서화는 다시 아들 심농 조기석을 비롯하여 효산 이광열과 유당 김희순으로 이어졌다. 또 유재 송기면은 아들 소정 송수용과 강암 송성용, 정읍에서 활동한 김정기 등에게 전승되었다. 조병헌은 아들 조승에게 전수되고, 유영완은 아들 유근상에게 전수되었다. 이외에도 송헌호, 정한조, 곽탁, 서영노, 이석종, 윤제술이 김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석정 이정직은 시서화 삼절로서 서화겸전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그들의 활동은 광대고준한 서맥을 형성하며 사상 유례 없는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세 번째이다. 20세기의 인물로는 석전 황욱(1898-1993)과 강암 송성용(1913-1999)과 남정 최정균(1924-2000) 등이 우뚝하다. 그리고 오늘날, 국내 최초로 대학에 서예과를 신설한 것과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개최, 강암서예관 및 석전기념관 등의 건립은 전북의 서예전통과 가치를 대변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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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북회화-나의여행기 / 회화지 14호(2006) 36–37쪽 · 원본 PDF 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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