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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회화-작업실탐방

평범한 작가의 특별한 그림이야기

구혜경 (기획전시, 자유기고가)

작가 조병철씨 작업실에서...

11월의 중순 어느 날.

이맘 때 쯤 이면 가을의 끄트머리인지 겨울의 초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달리는 차창 너머의 들녘을 보면서 듬성듬성 쌓여진 짚더미들이 겨울이 가까이 왔음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올해는 유난히 가을이 짧아 단풍놀이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작업실 탐방을 핑계로 시원스럽게 시외를 달리니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설레는 마음이 조금 일렁거렸다. 이런 마음을 붙잡고 달려간 곳은 지평선이 넓게 펼쳐지는 김제 마포마을.

이곳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조병철 작가가 새로이 작업실을 마련하여 이제 막 터를 닦고 있는 곳이다. 작업실은 멀리서 보아서 한 눈에 들어오는 하얀색 단층 건물로 멋스럽게 이국적이면서도 주변 환경과 동떨어지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김제가 가지고 있는 넓은 지평선의 편안함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주인의 배려된 마음인 듯하다. 작업실을 설명하는 작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띠고, 아침과 저녁이 멋진 동네라는 첫 얘기에 마냥 즐거워만 보인다. 아마도 김제라는 동네와 감성이 잘 맞는 모양이다. 작가의 이런 모습을 보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감성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작품도 그렇게 보여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서양화작가로서 고흐의 그림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오랫동안 인상주의적 화법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전혀 다른 표현법을 선보이며 작가로서의 변화를 엿볼 수가 있다. 그렇다고 그의 감성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체성과 한국적인 감성을 표현하는데 서양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서양화적 시각에서 동양화적 시각으로 전환한 것이다. 물론 서양화적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모두 모순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조병철 작가에게는 감성이 한국적이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내면과 맞지 않기에 전환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감성은 작업에 대한 열정과 맞물려 김제 벌판 가운데 작업실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고, 새로운 작업세계로의 도전도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요즘 이 작가의 최대 관심사는 犢緯에 있다. 산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가지고 전국의 유명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 벌써 2,3년째라고 한다. 수없이 오르내리는 과정 속에서 산은 알수록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여지는 산이 아니라 그 속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확인하기 위해 이러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산은 사람과 교감하고 깨우치게 하는 것이요, 동양적 감성을 표현하는 기본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 된다. 이러한 생각으로 그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고 대중과 소통하는 통로로서 선택하고 있다. 이렇듯 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겸손하면서도 진솔하지만 산의 진정성을 표현하기 위한 열정과 자긍심은 크게만 보인다.

작업실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의 작업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 동네의 한적한 가을 풍경이며 어릴 적 추억을 연상케 하는 자연을 벗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뒷산의 익숙한 풍경 등 지금 작가가 머물고 있는 작업실 주변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감성은 여전히 자연을 가까이 두고 진솔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대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각은 이제 시야를 넓혀서 犢緯이라고 하는 거대한 모태로 향해 있다. 그래서 산의 원리를 찾게 되고,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감흥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 감흥은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확장된 풍경을 畵面 속에서도 그대로 읽어지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넓은 시야를 담기 위해 큰 그림으로 그리게 되고, 또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당연히 큰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으로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橫山範水'를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내면에서 그대로 묻어나와 여러 산중에서 먼저 내장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작가의 확장된 시각은 내장산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서해, 정읍 등 주변 풍경까지도 함께 읽어내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림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여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내년 개인전에서는 여러 곳의 산을 통해 진정한 깊이와 자신의 정체성, 나아가서는 한국화의 정체성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저마다 다르듯이 산도 그 느낌과 모양새가 다른데 작가들이 그려내는 수없이 많은 산을 표현한 그림 중에서 이 작가가 그려내는 산을 향한 새로운 시각은 어떻게 전달될지 기대가 된다.

작가 조병철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산에 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소박한 사람이다. 그도 스스로를 소시민적이고 일상적이며 평범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평범함 이면에 있는 예술에 대한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열정과 자긍심과 사물을 대하는 넓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만을 위한 예술을 하기보다는 예술인으로서 사회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도 함께 찾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처럼 이 작가는 오늘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작가' 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조병철 작업실에 놓인 작품들
조병철 작업실에 놓인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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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북회화-작업실탐방 / 회화지 14호(2006) 38–39쪽 · 원본 PDF 3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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