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키스와 함께한 30분
며칠 전 모악산에 갔다가 도립미술관에 들렀다.
<u>때마침 학교 여기저기에</u> 포스터가 붙어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열리고 있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 했지만 꼭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술관 외벽에 걸려있는 현수막부터 끌리더니, 전시장 내부의 수많은 그림들이 내 관심을 잡아끌었다. 인상깊었던 작품은 '왕릉 앞에 선 시골 선비'와 '민씨가의 규수', '아기 업은 여인' 이 세 가지다. 왕릉 앞에 선 시골 선비는 조상의 선산 앞에 서 있는 시골 선비의 모습을 왕릉 앞에 선 것처럼 바꿔 표현했다고 하는데, 시골 선비의 표정과 입은 옷, 배경에 보이는 기와집이 너무나 한국적인 풍경이어서 굉장히 인상깊었다. '민씨가의 규수'는 규수의 의복이나 치맛자락 밑으로 살짝 보이는 뾰족한 신발코가 아담하고 선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규수의 생김새나 표정이 진정한 '한국인' 다웠다. 가장 감동받았던 작품은 역시나 '아기 업은 여인'인데, 눈덮인 추운 날에 조바위를 쓴 엄마가 아이를 꼭 업고 있는 장면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옷이 별로 따듯해 보이지 않은데 그 추운 날에 아기를 꼭 업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란!
우리 엄마도 못 입고 못 먹으면서 날 이렇게 키우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한테 너무나 고마워졌다.
그녀가 그려낸 '한국'이 끝나고 중국과 일본을 볼 수 있었는데, 중국의 상해나 소주는 나도 가본 적이 있어서 '상해의 찻집'과 '강소성 소주의 거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분명 내가 본 적 없는 옛 풍경 같은데도 정겨웠다. 그녀가 가진 옛 시간의 풍경과 내가 가진 현재의 풍경, 두 가지 시간의 풍경이 겹쳤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중국에서 지냈던 정겨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국에 온 뒤 잊어버렸었는데…엘리자베스 키스가 고마워졌다. 나도 잊고 있던 나의 추억을 나보다 오래 전에 살았던 엘리자베스 키스가 되살려 주었다니.
일본 쪽에서는 '하가모로 극의 시기야마'가 마음에 들었는데, 머리장식과 옷 색이 화려하고 강렬한 것을 잘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그 극을 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몇 번 접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사진보다 더 그 '공연 자체'가 아닌 공연의 깊은 곳까지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쓴 가면의 표정이 너무나 익살스러워서 재미있기도 했다.
<u>전체적으로 이번 전시회</u>는 나에게 '아주 좋았던' 전시회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모든 작품에는 단지 한국의 이미지뿐 아니라 동양의 이미지가 보였다. 시간이 없어서 서둘러 본 것이 후회되었다.
그녀가 자서전에서 '나를 특별히 사랑한 한국' 이라는 표현을 했다고 하는데, 한국이 그녀를 '특별히' 사랑했다는 것은 일본과 중국 또한 '특별히' 는 아니어도 그녀를 사랑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그림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원 게재: 전북회화-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4호(2006) 46–47쪽 · 원본 PDF 4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