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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회화-나의여행기

금강산 기행

이승훈

겨울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휴전선 이북에 있는 금강산이었다.

겨울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휴전선 이북에 있는 금강산이었다. 날씨는 좋았다. 봄 날씨 같다. 병술년 2월 12일 당일 전주에서 강원도 설악동까지 7시간 이동해야하고 점심식사 후, 통일전망대 출입사무소와 군사분계선 넘어 출입사무소에서 수속을 하고 금강산 호텔까지 2시간 정도 더 걸린다. 하루를 길에서 보낸 셈이다. 출입사무실 등을 넘나들 땐 긴장감을 갖게 되었었다. 군인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서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니 왠지 경계심도 갖게 되고 어색하기만 하였다. 가슴에 패용한 관광증도 어색했지만 같은 민족이 분단되어 긴 시간 동안 수속 절차를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숙소는 온정리에 있는 금강산 호텔에서 2박을 하게 되었다. 옛날 명칭은 금강산여관인데 그쪽 수준이 좋은 편이라고도 한다. 호텔은 간부급이 이용하고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여 남녀데이트 코스이기도 했다. 근처에 김정숙 별장도 있었다. 호텔 운영은 현대아산에서 임대하여 리모델링하고 종업원은 북한(북측) 사람들이었다. 포장마차라는 술집과 나이트클럽, 카페 등이 있고 면세품도 나와 있었다. 함께 온 다른 분은 비치호텔이라는 곳에 머물기도 했다.

술은 북한산이 여럿이고 하이트 맥주, 하이네켄 등 외국 산도 있었다. 맛은 좋은 줄 몰랐고 안주꺼리도 비싸다는 생각만 들었다. 안주는 10불짜리가 많았고, 술은 생맥주가 4불, 북한산 맥주는 10달러이다.

저녁은 온정리에서 북한산 비빔밥, 다음날 저녁은 온밥을 먹었는데 보통수준이었다. 온밥은 국물에 밥을 말아 준 것이다. 아침은 호텔 뷔페인데 고기류는 고등어 튀김이 전부고 육류는 없었다. 거의 초식이었다. 죽은 한 가지이고 국도 한 가지이다. 점심은 목란관과 옥류관에서 식사를 했는데 북한식 비빔밥이 저녁보다는 좋았고, 다음날 옥류관에서 꿩탕을 먹었는데 맛이 담백하기는 했어도 입에 맞지는 않았다. 다른 접대원보다 미인들로 구성 되었다고 보는데 말 붙이고 시중드는 것은 편해 보이지는 안았다.

밥값은 거의 10달러나 12달러, 15달러를 지급하면 더 고급스럽다고 한다. 꿩탕이 15달러인데 북한 현지식이니 맛이나 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었다. 맑은 물에 꿩 조각을 썰어 넣어 만든 요리이다. 꿩 만두와 김치조각 등이 나왔다.

아침을 호텔식으로 하고 구룡연으로 향하였다. 매서운 바람이 앞을 막고 산길은 빙판으로 쭉쭉 미끄러졌다. 잘못 디디면 눈 속으로 발이 깊게 빠진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달고 계속 산행이 되었다. 차로 이동하는 구간은 미인송이라는 소나무가 쭉쭉 뻗어 있어 아름답고 매끄러운 암석이 산에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요기만 했다. 산길 옆에는 군인들이 오고 가고 무기들도 보였다. 그들은 손을 흔들거나 반가운 표정을 짓는 일이 없었다. 자기 할 일만 하는 듯싶었다.

산에 오르면서 빙판을 제거하는 북한 측 인부와 현대아산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도 무표정 이었다. 눈이 길을 막아 구룡연만 갔다 왔다. 폭포수며 계곡물은 모두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어쩌면 북측의 마음을 보는 듯싶다.

이제 봄이 오면 그들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음날 가본 만물상이 좋았다. 오르기는 힘들어도 구룡연 쪽 보다 노선이 짧았다. 구룡연은 왕복 4시간정도, 만물상은 3시간정도로 산행이 되었다. 첫날이 더욱 힘들었다.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금강내기라 하였다. 바람세기를 내기 시험을 했는데 금강산 바람이 제일 세어서 그리 이름이 붙였다는 것이다. 얼음 조각과 나뭇잎들을 밀어다 붙이고 차갑기 때문에 힘들었다. 다음날 산행은 구름비는 왔지만 사람이 많아서 밀리어 천천히 올라갔다. 정상에 올랐을 땐 더욱 안개비에 산이 쌓여 눈에 형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 설명해주는 안내원들의 음성도 듣던 음성이 아니라 잘 들리지 않았다.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이런 말이 있다. 잇큐선사를 으슥한 숲길에서 만난 떠돌이중이 불법이 진짜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가슴속에 있다고 하자 단도를 꺼내 들고 정말 가슴을 열어 보려고 하였다. 그때 잇큐선사는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벚꽃 / 벚꽃나무 쪼개 봐라 벚꽃 있는 가"라고 했단다. 김정일 위원장 마음 어찌 알아 통일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만 칼로 열어 볼수 없지 않은가. 단지 현재 나타나는 백성들의 형편을 보면 짐작이 안 가겠나. 그래 통일은 되어야지, 그러나 통일방법이 숙제인 듯싶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정도 만만찮은 사업이다. 고비용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외적인 변수에 대처를 잘해야 하자면 쉽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다 안다. 인권 문제도 그렇고 복지 문제는 말하기도 어렵다.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비용과 인식의 차이도 그렇고 언어의 이질성도 있다. 다만 교예를 보면서 생각한 것이지만 좋은 점을 서로 인식하고 개방하고 나쁜 점은 나중으로 미루어 보면 뭔가 쉽게 나타날 것 같다. 금강산 등 자연환경과 문화재, 인적자원 등을 교류하면 어떨까. 지금도 하고 있지만(공동선언문) 양측 공통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빨리 진행하면 서로 신뢰를 할 수 있어 잘 될 것 같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북한은 핵으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뭘 할말이 있겠는가. 폭력을 쓰는 사람한텐 무엇으로 대해야 할 까. 이게 이 민족의 과제이다. 다음은 산행을 하면서 적은 글이다. ■

금강산 산행

눈밭에 묻힌 온순한 흙과 돌 긴 행렬이 무딘 심정으로 밟고 밟아 저 천길 낭떠러지로 미끄러질 듯 숨은 길 되어 산이 다시 험하다.

전설을 한 몸에 두른 바위와 소나무 빗발치는 콘서트의 괴성에 쌓인 시선 만대를 두고 흉한 분단 저미고도 아름다운 생각을 맑디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다시 부끄러운 빛이다.

흐린 날에도 발을 디디어 맑은 계곡인 듯싶어 꿈에들 빠져보고 적셔보건만 시큰한 결림으로 침대에 눕는 산행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연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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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북회화-나의여행기 / 회화지 14호(2006) 54–55쪽 · 원본 PDF 5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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