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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화가 변월룡과 어머니

이승훈 (군산대성중학교)

화가 변월룡과 어머니

글 이승훈 (군산대성중학교)

변월룡, 어머니, 1985 / 캔버스에 유채 / 119×72cm
변월룡, 어머니, 1985 / 캔버스에 유채 / 119×72cm

어머니의 모습이다. 화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40년이 지나서야 어머니를 그렸다고 한다. 화가가 70이 되어서야 노모를 생각하며 그렸다고 하는 '어머니(1985, 캔버스에 유채, 119cm×72cm)'가 바로 이 그림이다. 러시아 세르게이 화실 정면에는 지금도 이 어머니 초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음에도 그토록 아끼고 그리워했던 그 어머니상을 어머니 사후인 말년에 그려야만 했던 것일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한국 근대거장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백년의 신화'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변월룡전을 준비했었다. 이 그림은 그 때 우리나라에 선보인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화가이다. 렘브란트를 좋아하던 어린 변월룡은 러시아에서 유명한 화가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뺀 봐를린' 은 그의 이름의 러시아 발음이다.

러시아 레핀미술대학의 교수가 되어 정교수가 되기까지 2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61세가 되어서였다. 승진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소수 민족의 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교수가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렘브란트의 '야경(387cm×502cm)' 보다 큰 '우리시대의 사람들(360cm×531cm)' 을 레닌그라드 미술가 지역전람회에 출품하였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이자 교육자로 살았으며 15개월 정도 북한에 머물면서 북한 인사들과 교류를 했고 평양미술대학 학장과 고문 역할까지 맡기도 하였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 냉전, 개혁과 개방을 겪는 파란만장한 시대를 관통했고, 조국에는 일제의 식민, 전쟁과 냉전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음에도 그의 이름은 남이나 북에서 조차 잊히고 말았다.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살았던 변월룡의 유언은, "내 묘비에 한글 이름을 새겨 달라"는 것이다. 끝까지 러시아 이름으로 개명하지 않고 '변월룡' 을 고수했던 진정한 우리민족의 예술가!

변월룡 화가는 1916년 9월 29일 러시아 연해주 쉬코톱스키 구역의 한 유랑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생사를 모른 채 조부모와 어머니, 두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장녀 그리고 차남은 모두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의 경제적인 면을 돌보아 주셨던 할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시고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항상 어려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강한 집념과 가족 모두의 도움으로 변월룡의 학업은 계속 이어져 1937년 스베르들롭스크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지만 얼마 안 되어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모조리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사건이 터졌다. 그 결과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인근 우쉬토베 지역,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남부,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인 버려진 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변월룡 가족도 강제 이주의 이산가족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변월룡은 고려인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로 평가도 받고 명성도 누렸다. 이방인을 허락하지 않는 내 나라의 정체성,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였던 작가 변월용, 그는 금강산 소나무를 자신의 굴곡진 삶에 투영하여 유화와 동판화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유명한 인사들의 주문을 받아 초상화 그리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37년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시절 척박한 생활을 연명하며 가족을 건사하였던 어머니의 모습은 함부로 그릴 수 없었던가 보다. 그의 '어머니' 작품은 지난 시절의 암울함을 배경으로 흰색 저고리에 검정 치마의 간결한 색채로 약간 구부정하게 서 계신 포근한 인상의 할머니 모습이다. 어머니 옆의 장독 같은 검붉은 어항에는 빨간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고 하나 자세하지는 않다. 얼굴의 주름과 슬며시 다문 입, 지그시 뜬 눈, 피부의 투명함 등은 세월의 중후함까지 느끼게 한다. 그리고 백발과 흰색의 저고리는 비장한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작가는 '어머니' 작품을 완성하고 쓰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투병생활을 견디게 하였으며 유년의 할아버지가 존재하셨던 가족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성년의 날과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있어 한번쯤은 가정을 돌아보고 자녀에 대한 나의 역할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도전과 응전'의 저자인 아놀드 J. 토인비가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져가야 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라고 말했듯이 효의 근본은 바로 어버이에게서 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법정 스님 또한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 란 그의 글에서,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채워 주어야 하는 텅 빈 물통이 아니라 밑거름이 될 하나의 씨앗, 한 개의 도토리이다. 어떤 식물학자도 그리고 정원사도 도토리에게 참나무가 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작은 씨앗이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서 수백 년을 살고 수백만 개의 도토리와 나뭇잎과 줄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 들어 있다고 가르쳐 준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씨앗이 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스승은 누가 되겠는가? 참교육의 주체가 되는 부모 같은 마음으로 우리 자신들도 후손들의 삶 속에 거룩한 씨앗을 발견했으면 한다.

변월룡의 초상화 작품 두 점 — 턱을 괸 노신사 초상, 화보를 들고 있는 안경 쓴 인물 초상
변월룡의 초상화 작품 두 점 — 턱을 괸 노신사 초상, 화보를 들고 있는 안경 쓴 인물 초상
변월룡의 풍경 동판화(소나무 숲길)와 강변 풍경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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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의 자화상풍 인물화와 모내기 하는 사람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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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수필 / 회화지 23호(2016) 28–31쪽 · 원본 PDF 28쪽 ↗

이 지면의 도판

변월룡, 어머니, 1985 / 캔버스에 유채 / 119×72cm화가 변월룡과 어머니변월룡, 어머니, 1985 / 캔버스에 유채 / 119×72cm
변월룡의 초상화 작품 두 점 — 턱을 괸 노신사 초상, 화보를 들고 있는 안경 쓴 인물 초상화가 변월룡과 어머니변월룡의 초상화 작품 두 점 — 턱을 괸 노신사 초상, 화보를 들고 있는 안경 쓴 인물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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