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산수화에 관한 연구
글 김지영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미술교육전공)

추사의 산수화 분석 (다룬 작품)
- 고림도(枯林圖)
- 소림모옥도(疏林茅屋圖)
- 운산도(雲山圖)
-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
서론
추사 김정희는 1786년(정조10)에 태어나 1856년(철종7)에 타계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서화가다. 그는 조선 회화사에서 새로운 화풍의 전개와 발전을 주도하였으며 단순한 예술가, 학자가 아닌 시대의 선각자로 평가되어 오고 있다.
그동안 추사에 관한 연구는 각 분야별로 많았지만 특히 서예와 묵란화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추사의 서예와 묵란화가 한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사는 산수화를 통해서도 천부적인 예술성과 고도의 정신예술을 나타내었다. 이처럼 추사는 산수화에서도 뛰어난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나 작품의 수가 비교적 많지 않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본 논문에서는 추사의 산수화에 대한 연구를 하였으며 산수화 작품에 추사의 정신성과 함께 나타난 특징을 찾아보고자 함에 목적을 두었다.
● 고림도(枯林圖)
추사의 〈고림도〉(도3)¹⁾는 주산(主山)과 고림을 소재로 한 점경산수이며 황공망의 화법을 담은 작품이다.
'고목사이로 인적도 없는 길, 깊은 산 종소리는 어디서 울리는가.. 당인의 시의를 빌어 이곳 집의 등불 아래서 그렸다' 라고 쓴 제발이 말하고 있듯이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전경을 화면 가득히 담았다.
화면의 상반부에 수직으로 우뚝 선 가파른 고봉의 준법은 미점준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수지법은 황공망의 북경 고관박물관소장의 〈산수도〉를 연상시킨다. 또한 가운데 구륵법으로 그려낸 나뭇가지가 눈에 띄며 그 옆의 나무들에는 점엽법을 썼다. 그리고 작품 원경의 산석을 표현할 때 사용한 피마준은 황공망의 〈부춘산거도〉(도1)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며 이것은 입체적인 바위표현을 강조할 때 쓰인다. 여기서 사용되어진 피마준은 산석이 기하학적이며 단순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이 준법은 중국의 수없이 많은 문인화가들이 황공망의 산수화를 방작(倣作)할 때 썼던 준법이다. 이는 중국 남당 때 동원(董源 907~962)으로 시작되어 원말사대가 중에서 황공망이 많이 그렸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 많은 문인화가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 소림모옥도(疏林茅屋圖)
추사의 〈소림모옥도〉(도4)²⁾는 나무 몇 그루와 집 두어 채를 근경에 배치하고 원경에 큰 산을 그렸다. 근경과 원경을 구성하는 방식이 황공망의 구성법과 유사한데 추사는 이러한 화풍을 기초하여 이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황공망의 산수는 피마준을 규칙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추사는 거친 갈필을 사용하였으며 입체감이 드러나지 않는 바위가 깎인 것 같은 산을 그렸다. 그리고 산비탈의 중간부분을 짧은 필치의 갈필로 엷게 칠하고 수목이 우거진 근경은 강한 농묵을 썼다. 이어서 중경을 지나 원경의 산에 이르면서 먹의 농담이 연해지게 그렸는데 이는 산의 멀고 가까움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림 좌측의 나무들은 추사가 산수를 그릴 때 즐겨 사용했던 선의 끝을 날카롭게 삐쳐 그리는 기법의 정두엽법을 사용하였고 나뭇잎은 점엽법으로 농담을 줬다. 그런 다음에 나뭇잎과 나뭇잎의 사이에 간격을 주기도 하고, 나뭇잎의 두께를 얇고 두껍고 다양하게 표현하여 공간감을 줬다.
이처럼 추사는 산의 구조적인 묘사는 생략하고 필의 운용에 의해 형성된 개념적인 산만 그렸지만 생략을 하더라도 표현해줄 것들은 간략하게 표현하여 사의적인 문인화풍의 산수화임을 나타내고 있다.
● 운산도(雲山圖)
〈운산도〉(도5)는 운산을 점을 여러 번 겹쳐 찍어서 형태를 표현하는 미점준(米點皴)³⁾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은 미법산수라 부르며 작품 내의 화제에서도 추사는 미법을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원나라 때의 고극공(高克恭) 이후 명, 청대의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였고 조선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성행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화가는 강세황과 신위가 있다. 하지만 추사는 그들의 작품과는 다르게 미점을 중첩시킨 적묵법을 사용하였으며 적묵법은 강세황 등의 화가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기법이다.
추사의 〈운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윤곽선을 그리지 않았으며 세세한 표현을 자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산과 구름, 안개, 나무 등을 물기가 많은 점들을 찍어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이 때 소혼점과 대혼점을 적절히 분배하여 그렸는데, 이로 인해 안개가 자욱한 표현이 완성되었으며 화면 가득히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리고 추사는 이 작품을 그릴 때 첩첩이 쌓인 산과 산세를 묘사하려고 적묵법을 사용하였는데, 먼저 담묵을 칠한 후 그 먹이 마르면 좀 더 짙은 먹을 입히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깊은 양감을 표현하였다. 그런 후에 먹을 계속 겹쳐 칠하면서 먹이 층층이 쌓이도록 하였고 그로인해 중후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이런 표현은 색이 깊어짐과 동시에 물체의 형상이 세밀하게 나타나게 하고 있다.
●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
추사는 55세인 1840년 6월에 두 번째로 중국 연경에 가려 할 때 정치적 모함에 휘말려 제주도 유배 길을 떠났고 1848년 유배에서 풀려났다. 당시에는 당쟁으로 유배를 당한 죄인의 거처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둘러 중형을 줬는데 추사의 유배거처에도 울타리가 둘려졌고 추사는 더욱더 괴로운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기에 〈영영백운도〉(도7) 작품은 추사가 9년에 걸친 제주도 유배생활의 적막함과 고뇌, 그리고 그 속에서 갈고 닦은 처절한 정신력과 예술의 경지를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아름다운 흰 구름 저 가을 나무를 둘렀네. 조촐한 곳으로 그대를 찾아오니 그 누구 때문인가 산천이 멀어서 옛날에는 나를 찾아주지 않더니 이제는 어떠한가, 아침저녁으로 만나기를 바라네.'
위의 화제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내용으로 보이며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추사의 그림에 추사의 절친한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⁴⁾이 쓴 것이다. 제목이 '황산유고..추수백운도에 붙이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추사가 제주도 유배기에 그렸다고 전하고 있지만 한양에 거할 때 제주에 유배 했던 집을 떠올려 그린 것이라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화제를 쓰거나 글씨를 썼기 때문이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의 중심부 왼쪽에 조그만 오두막 집 하나가 있고, 오두막을 둘러 싼 소나무 여러 그루가 건필법의 마른붓질로 그려졌는데 녹각화법을 사용한 나무에 개자점(介字点)⁵⁾을 찍었다. 이 작품은 필묵에 의한 농담 묘사와 선에 의한 운필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원근감이 잘 나타나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먼 산을 흐릿하게 그려 나머지 여백의 부분을 상상하게 하고 있다.
그림 속의 여백을 가장 뛰어나게 구현한 화가가 중국 원나라 때의 예찬인데 그는 화면의 대부분을 빈 공간으로 두고 나무 몇 그루와 텅 빈 정자, 그리고 넓은 강, 강 건너 산을 그리는 간단한 구성방식으로 그 이전 누구도 표현해내지 못한 강력한 정신적 자유의 경지를 나타냈다. 조선에도 예찬의 여백 구도법이 전해졌는데 추사는 예찬의 회화 정신을 중국 화가들보다 더 철저하게 이해했고 이념적으로 더욱 순수하게 순화시켰다. 이러한 추사의 〈영영백운도〉는 여백을 이용하여 시원한 공간감으로 복잡한 요소들을 그리지 않았기에 문인 산수화의 함축적인 표현이 잘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여백 인용문 (51쪽)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
각주
1) 〈고림도〉는 1996년 최순택의 『추사의 서화세계』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2) 〈소림모옥도〉는 2010년 김현권의 『김정희파의 한중회화교류와 19세기 조선의 화단』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3) 미점준(米點皴) : 미점준은 북송(北宋)의 문인화가 미불(米芾 1051~1107)과 미우인(米友仁 : 1087~1165) 부자에 의해 이룩된 산수 화풍으로 이들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4) 김유근(金逌根) 본관 안동, 자 경선(景先)호 황산(黃山)시호 문정(文貞), 1810년순조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서 · 검상이 되었다. 1822년 이조참판, 1825년 대사헌 등을 지냈다. 182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 도중, 면회를 거절당한 전직관원에 의해 일행이 살상을 당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돈령부판사에 이르렀다. 5) 개자점(介字点) : 수묵산수화 점법의 일종이다. 세개의 작은 필촉(筆觸)을 한 단위로 하여 개(介) 자와 같은 모양으로 보이게 한다. 개(介)자점에 가깝다
수록 도판





- 판독 참고: 각주 4)의 '서서 · 검상', '친자관원' 등은 활자가 흐려 판독이 불확실합니다.
- 판독 참고: 여백 인용문의 '본격도에 진입시킴으로써'는 지면 표기 그대로이며 활자가 흐려 판독이 불확실합니다.
원 게재: 회화이론(석사학위논문) / 회화지 20호(2013) 48–51쪽 · 원본 PDF 48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