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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는 예술가

자기 운명과 싸우는 작.은.거.인. 로트렉

김영숙(예원예술대학교)

글 김영숙 (예원예술대학교)

본문

곱추 화가 투르즈 로트렉(1864-1901)은 프랑스 남부 알비에서 구 명문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허약하게 태어났지만, 집안의 '쁘띠 비주' (작은 보석)로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던 로트릭은 14세 되던 해에 그만 발을 헛디뎌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길가의 도랑에 빠져 오른쪽 다리마저 부러지게 된다. 이런 불운은 사촌 간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에서 연유한, 매우 희귀한 유전적 질환인 농축이골증 (뼈가 잘 부러지고, 자라지 않음)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제 로트렉은 성장이 멈추고 보통 사람의 가슴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은 사나이가 되고 마는데, 후에 그는 까마귀 부리가 달린 지팡이를 짚고 산고모를 푹 눌러 쓴 채 코걸이 안경을 한, 검은 수염의 모습을 갖게 된다.

결국 로트렉의 아버지가 즐겼고, 또 아들 로트렉에게 전수해 주고 싶었던, 승마와 사냥과 같은 귀족의 전원생활은 로트렉에게 더 이상 꿈도 꿀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리고, 로트렉은 그림 속에서 자기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고호가 자기의 상처난 영혼을 자연 속에 투영하고, 거기에서 위로를 구하려 했다면 로트렉은 인간들 속에서 자기의 내면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영혼의 안식과 평정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점은 로트렉이 비교적 초기에 자신의 엄마, 로트렉 백작부인을 그린 그림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찻잔, 혹은 책을 앞에 두고 두 눈을 내리깐 채 고요히 앉아 있는 로트렉 백작부인의 모습엔 로트렉이 일생 동안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그대로 얹혀 있는 듯하다. 그녀의 엄숙하고 차분한 표정과 자태는 한 인간으로서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심연을 가슴 깊이 담고 있으면서 이 심연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려는 침착한 의지력이 돋보인다. 아마도 로트렉은 이러한 엄마의 모습 속에서 황금빛 어린 시절과 화려한 귀족들의 삶에서 영원히 추방된 자기 운명을 지켜나가는 기본 자세와 힘을 배웠으리라.

당시 몽마르트는 원래 밭과 풍차가 있었던 파리 외곽의 시골이었는데 싼 집세 때문에 1850년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반사회적인 인사들,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860년대에 파리 시에 편입됐다.

1880년경에는 까페와 댄스홀들이 들어서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뒤섞이고 새로운 예술이 실험되는 곳이었는데, 1889년이 되자 그 거리에 물랑 루즈가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로트렉은 물랑 루즈에서 자기 삶의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숱한 사람들이 삶의 질곡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술과 춤에 위로를 구했던 물랑 루즈. 그 안에서 손님들에게 유흥을 제공했던 무희들과 창녀들에게서 이제 로트렉은 새로운 영혼의 동지들을 발견한다. 로트렉이 그린 창부들의 모습은 마네가 그린, 자기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는 모습도, 자기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하는 듯 추하고 더러운 모습도 아니다. 로트렉이 그린 창부들의 모습은 그저 밥벌이를 위해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지친 생활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또한 로트렉은 창부들끼리 애정 행각을 벌이는 침대 위에서의 모습도 그려냈는데, 더 이상 남성을 믿지 못하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처럼 로트렉이 그린 창부들의 모습은 마네처럼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켜 주기 위해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고, 사회를 비판하고 자기들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이끌어내려는 지나친 감상주의도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아마 실상이라는 게 있다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실상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 바로 로트렉이 그려낸 창부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화려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힘겹게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것은 바로 로트렉이 얼마나 냉혹한 냉철함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우리는 물랑 루즈의 실내 풍경 안에 살짝 터무니 없이 작은 키의 자기 자신을 그려 넣은 또 다른 그림들에서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절대 부탁을 받아 그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마음에 든 사람만을 그린 로트렉. 그가 자기의 내면을 가장 많이 투영하고, 이를 가장 근접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은 아마도 「젊은 아기씨의 초상」, 「숙취」, 「세탁부」, 「물랑 루즈에서 나오는 잘 아브릴」 등일 것이다. 그녀들은 각각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고뇌의 분위기, 네모난 굳센 사각턱에 앙다문 입술로 (「젊은 아가씨의 초상」, 「세탁부」), 또는 진한 압상트 술잔을 앞에 놓고, 술집에서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기르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삶의 삼중적 고통을 눈앞을 응시하는 복잡한 시선으로 (「숙취」), 또는 이곳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듯, 애환과 비애, 덤덤한 체념을 온 전신으로 퍼뜨리며 밤거리를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물랑 루즈에서 나오는 잔 아브릴」) 자기들의 힘겨운 삶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로트렉은 이들의 모습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출렁거리는 내면의 고통과 화해하기 어려운 자기의 운명을 직시하면서 이것들을 견뎌내려는 숨막히도록 힘겨운 투쟁을 읽었을 것이다.

이렇듯 자기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그녀들을 동정하고 사랑하면서 자기 운명을 견뎌온 루트렉이었지만, 그의 타고난 허약한 체질과 비정상적인 생활환경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점차 자기의 육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폭음과 알콜 중독에 빠져 들어간 로트렉은 비록 37세라는 짧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지만, 자기 연민이나 비굴함, 좌절과 자포자기에 무릎 꿇지 않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숙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작은 거인이 아닐까 한다. ▣

수록 도판

로트렉 작품 부분
로트렉 작품 부분
로트렉 백작부인의 초상
로트렉 백작부인의 초상
잔 아브릴
잔 아브릴

  • 판독 참고: '투르즈 로트렉'(툴루즈 로트렉), '농축이골증'(농축이골증/골형성부전증 계열 표기), '산고모'(중산모), '루트렉' 등은 지면 표기 그대로입니다.
  • 판독 참고: 56쪽 본문의 생몰년이 '864-1901'로 인쇄되어 있어 '1864-1901'의 오식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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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지면 3지면 4

원 게재: 탐구하는 예술가 / 회화지 20호(2013) 56–59쪽 · 원본 PDF 56쪽 ↗

이 지면의 도판

로트렉 작품 부분(지면 세로 띠)툴루즈 로트렉로트렉 작품 부분(지면 세로 띠)
로트렉 백작부인의 초상툴루즈 로트렉로트렉 백작부인의 초상
물랑 루즈에서 나오는 잔 아브릴툴루즈 로트렉물랑 루즈에서 나오는 잔 아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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