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글 이진숙 (전북회화회 회원)

표제면 발췌 (82쪽)
'국제 인라인 마라톤 대회' 로 인해 교통통제가 된다는 현수막이 오래 전부터 걸려 있었다. 그 시간이 하필 여행을 가기 위해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과 딱 맞물려있었다.
본문
버스 출발 두 시간 전에 집에서 나왔다. 큰 거리에 나와 보니 인라언 마라톤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당연히 차는 볼 수가 없었다. 30여분을 커다란 가방을 끌고 차가 다니는 큰 길까지 걸었다. 길은 온통 자동차로 꽉 막혀있다. 마치 주차장에 온 것 같았다. 평소에 이용하던 콜 택시회사에 전화를 했다. 잠시 후 택시 기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래도 그곳까지 갈 수가 없겠노라고……오랜 기다림 끝에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와 보니 그 곳 역시 차량들로 대만원. 버스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있는 곳까지 간신히 도착했다. 이렇게 어렵게 공항버스를 타고 힘들게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은 시작 되었다.
여행은 항상 사람을 설레게 하고 어린아이가 되게 하는 것 같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기대가 되는 곳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관광지와 휴양지로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란다.
여행 첫 날 체험한 고끼리 트래킹은 물론 새로운 경험이라서 재미도 있었지만 한편 측은한 마음이 더 컸다. 야생에서 살았으면 이렇게 매 맞아 가면서 자기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또한 고끼리 쇼에 나오는 많은 코끼리들을 보면서도 그림을 그리거나 사람이 하는 것처럼 공을 차거나, 인사를 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생각하니 즐거움 보단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이런 생각들도 나이 탓일까? 코끼리 체험을 끝내고 목이 긴 카렌족여인들이 있는 마을에 갔다. 카렌족은 약150만 명 정도라는데 그 중 일부는 여인들의 목에 금속제 링을 둘러 목을 길게 느리는 풍습이 지금까지 남아있단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인권단체에서 여성인권을 침해 한다는 이유로 그러한 폐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단다. 그래서 지금은 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민속마을처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아주 많은 입장료를 받고 관람을 시키고 있다. 그곳에 가보니 신기할 정도로 목에 링을 둘러 기다란 목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우리들 눈에 측은하게 보일뿐 그들은 그런 우리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목을 길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이 사냥터에 나가 사냥하는 동안 맹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란다. 맹수는 사람이나 다른 짐승을 공격할 때 목을 물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치앙마이 구 시가지를 구경했다. 이곳도 다른 나라 구 시가지처럼 시 전체를 해자를 만들어 적의 침입에 대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해자의 곳곳에 분수를 설치하여 밤에는 멋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태국 국경과 인접한 미얀마의 메사이라는 도시를 갔다. 국경을 걸어서 통과하니 아주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라트비아에서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버스로 이동 하는데 국경수비대원 한사람이 차에 올라와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피더니 남편에게 동행을 요구하며 차에서 내렸다. 옆에 앉아있던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편이 돌아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남편이 'I'm from KOREA'라고 하니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자기들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생긴 중국인을 찾는다며 버스까지 정중하게 모셔왔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여행 중 이렇게 국경을 넘는 일이 있으면 항상 그때의 일을 떠 올리며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당신 조심해요, 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미얀마 국경도시에서 미얀마의 양곤에 있다는 황금 탑을 모방하여 똑 같이 만든 높이 70m의 '츠이다껑 탑' 을 보았다. 이곳 사람들의 불심은 가히 상상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국경지역인 치앙센 지역으로 이동하여 동남아시아의 젖줄이라는 메콩 강을 보트를 타고 관광 하였다. 메콩 강은 우리의 역 전 앞 이라는 말과 같단다. 이곳 말로 메는 강(江)을 뜻한다는데 월남 전 때 미군들이 메콩을 메콩 강이라 부르고 지금도 세계의 모든 지도에 메콩을 메콩 강으로 표기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곳은 골든트라이앵글(黃金三角)로 오래 전 마약의 왕이라 불리는 쿤사가 마약거래를 할 때 현금대신 금을 받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귀비는 전체생산량의 60%가 나온다니……사실 양귀비에서 만들어지는 아편은 의약품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재료라고 한다. 필요악(必要惡)이라고나 할까……메콩 강을 보트를 타고 구경하면서 우리도 압록강, 두만강을 보트를 타고 유람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기도 했다.
치앙마이로 돌아오는 도중 치앙라이라는 인구수로는 태국 제2의 도시에 있는 '랑쿤 사원' 을 구경했다. 이곳으로 여행 오기 전 인터넷에 올라온 '랑쿤 사원' 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다. 이 사원은 태국최고의 회화가인 슬림차이 교수가 만든 개인 사원이라고 한다. 그가 꿈에 돌아가신 모친이 지옥에서 힘들어하며 '시주를 하여 구해 달라' 는 하소연을 하는 모습을 보았단다. 그래서 사찰을 지을 결심을 하고 이 도시 시청에 들어가 사원을 지을 땅을 달라는 청원을 하고 전 재산을 털어 지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온통 하얀색으로 만들어진 이 사원은 일명 '백색사원' 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건물 벽에 시멘트를 바른 다음 거울조각을 붙이고 하얗게 칠해서 그 칠이 마르기 전에 닦아 거울이 보이게 마든 사원인데 그래서인지 햇빛이 비치니 여기저기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한 사람의 효심으로 시작된 이 사원은 이제는 불심이 있는 사람들의 시주와 수없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더욱 더 아름다운 사원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숙소로 오는 내내 그 사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태국에서 가장 높다는 도이(山)인타논(2,565m)의 숲 속 산책에 나섰다. 이곳 치앙마이는 자연환경이 아주 좋아서 붐비는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공기가 맑고 여유로운 관광이라서 좋았다. 숲이 깊어서인지 그리고 수량(水量)이 풍부해서인지 많은 나무들이 이끼가 많이 끼어있고 서로서로 기대면서 등걸에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도록 품을 내주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산책 길 도중에 태국왕국중 하나인 란나 왕국의 마지막왕인 인타논 왕의 무덤을 보았다. 지금도 많이 사람들이 그 무덤에 참배를 하고 또 무덤에 낀 이끼를 닦아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왕을 기리기 위해 산 이름도 인타논 산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산에 현 태국 왕 부부의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장수 탑이 서로 마주보며 두 개가 세워져있는 모습에서 태국국민들의 왕부부에 대한 존경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에 본 왓 프랏타 도이 수텝은 1383년에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산(해발1060m)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원으로 태국 불교사원 중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란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황금 탑이 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모노레일을 혼합해서 만들었다는 가이드의 설명대로 우리는 승강기를 타고 그 높은 곳을 단숨에 올라갔다. 태국에서 기도를 가장 잘 들어준다는 가이드의 믿을 수 없는 설명을 듣고 나도 그곳 탑에 20바트를 내고 연꽃과 양초를 손에 들고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었다. 이 사원이 이렇게 높은 산에 위치해 있어서 신도들이 기도를 하기위해 힘들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약 70여 년 전에 시위차이라는 이 사원의 스님이 도로를 만들었다. 처음 사원에서부터 호미를 들고 땅을 파서 도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많은 불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도로를 만들었다니 이 도로도 불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된 도로로 바뀌었지만……이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걸작들이 종교의 힘으로 만들어졌듯이 이곳의 많은 사원들도 종교의 힘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종교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밤 비행기를 탔다. 잠은 오지 않고 그 간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여행 내내 묵었던 호수와 야경이 아주 예쁜 그린레이크 리조트, 그 곳에서 먹었던 많은 음식들, 순박한 표정으로 항상 합장인사를 하며 우리를 반겼던 태국현지 가이드 Miss파, 'goodmorning'하며 인사를 건네면 쑥스러운 미소를 띄우 던 운전기사, 그리고 자기 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며 헤어지는 인사말을 할 때 안경너머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던 한국인 가이드 등,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행이 가장 즐거운 것은 매 끼니마다 밥걱정, 설거지 걱정을 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은 아마 나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오늘 점심은 여행한다고 냉장고를 모두 비웠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어이가 없었다.
집에 오니 그 새 가을이 더 깊어져 마당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래! 이제 일상을 돌아가 가방 속에 소중하게(?) 간직한 빨랫감을 꺼내 세탁기를 돌리자. 그리고 빨리 점심밥 준비를 하자. (2013.11.9) ▣
수록 도판




- 판독 참고: 탑 이름이 본문에서는 '츠이다껑 탑', 도판 캡션에서는 '츠위다껑 탑'으로 달리 표기되어 있어 지면 표기 그대로 옮겼습니다.
- 판독 참고: '인라언', '고끼리', '태국왕중중', '마든 사원', '빌겋게' 등은 지면 표기 그대로입니다.
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20호(2013) 82–87쪽 · 원본 PDF 8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