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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늙어 외롭지 않으려거든

南谿 김경희(수필가)

글 南谿 김경희(수필가)

생명이란 본래 외롭고 쓸쓸한 거다.

밀림 속 호랑이의 어슬렁거리는 걸음에도, 혼자 앉아 있는 눈빛에도 외롭고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펭귄 떼 속에서 알을 지키고 서 있는 그 한 놈의 모습도 외롭고 쓸쓸했다. 십조 원이 넘는 재산을 소유한 재벌 총수가 두 딸 부축을 받고 서 있는 그 눈동자에도 깊고 무거운 고독감의 독성을 읽을 수 있었다. 차라리 평범한 서민의 자리에서 늘 배고픈 부자요 슬픔으로 배부른 삶을 살지라도 덜 외롭고 덜 쓸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이유도 그 어디에 있다.

내 어머니도 나도 외로움의 평균 수위를 넘는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열여섯 나이에 시집와 나 하나로 단산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순수 혈통으로써 못 박힌 무녀독남이 되었다. 형제가 없다고 다 외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제가 없는 사람의 홀로 성장은 사람끼리 어울리는 데 있어 기회의 결핍이 주어질 수 있다. 공생하는 철리(哲理)에 둔해지기도 쉽다. 그러므로 어려서 정서의 뜰이 빈약할 수 있다. '나는 네가 있을 때' 더 실감나게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과 우리 속에서 나의 가치를 나타낼 수도 있고 분발의식을 길러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웃 없는 성장은 키 큰 나무처럼 하늘로만 솟는 빈약한 아쉬움을 운명처럼 살아낼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읽는다. 새 학기 개강 때도 읽어주고 싶은 시 중의 하나이다. 평생 중이염을 앓아온 어머니. 가세가 기울어 어쩔 수 없이 이모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 그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귀에서 고름이 나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데, 아들을 위해 설렁탕을 시킨다. 그리고 주인아저씨를 불러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한다. 이어서 주인아저씨 안 볼 때 자기 국그릇 국물을 아들에게 부어준다. 아들 함민복은 그만 따르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투가리와 부딪히고, 그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아들은 울컥 치받는 감정을 깍두기를 씹으며 달랜다.

내 어렸을 때 한국의 시골마을은 폐허 위의 재건이요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 몫이었다. 교육도 인간성도 문화도 사치스런 단어요 바다 건너 사람들 이야기 같았다. 삶에 지쳐 마지못해 사는 사람의 가슴 속 정서는 황폐함 그대로였다. 그 이후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도 한동안 우리 어린이들은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너는 자식이 아니라 웬수다. 쓸데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널 낳고 미역국을 먹은 내가 미쳤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엄마에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니? 제발 네 아버지 같은 사람만 되지 마라."는 등등의 언어폭력 속에 자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칭찬으로 키워야 할 자식들을 말과 눈치로 계속 기죽이면서 키우는 부모가 의외로 많았다는 반성어린 추억이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잘사는 만큼 돈으로 키우는 것 같다. 돈이 있어 좋은 학구로 보내고 유명한 학원을 찾아다닌다. 족집게 과외 선생을 만나고, 성형수술까지 해준다. 그리고 고급 옷으로 신분을 과시한다. 어린이들은 잠이 부족할 정도로 이곳저곳 배우러 다닌다. 아버지 얼굴 보기가 힘들고 어머니는 매니저가 된다. 우리 시대 어머니의 치마폭에서는 짜고 비릿한 반찬 냄새가 났다. 그래도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늙어가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싫지 않았다. 밉다고 욕을 해도 밉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당신의 희생으로 나를 길렀지 돈이나 권세로 해결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난해도 못 배웠어도 어머니가 부끄럽지 않았다.

어머니가 지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이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과정에서 요양병원도 다녀보았다.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자식들이 부모를 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함께 살지 않는 것은 법적 권장 사항 같이 된 분위기라고 했다. 요양원이나 병원에 있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늙을수록 화폐를 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가볍지 않은 탓일까. 내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몇 시간이나 함께 놀아주었던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던가? 과연 내가 길렀다고 할 수 있는가.

아이를 안고 함께 울어본 적이 있는가. 진정한 칭찬을 몇 번이나 해주었는가? - 더 늙어 외롭지 않으려거든 지금 당장 아들딸과 대화 할 일이다. 그리고 따뜻한 정을 주어 친해져야 한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워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정이 들어야 한다. 늙어 외롭지 않게 살고 싶거든.

南谿 김경희(수필가)
南谿 김경희(수필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필집: 『내 생명의 무늬』 외 •시집: 『시목詩木』 외 •칼럼집: 매화 눈트는 이아침에 •교재도서: 『문학의 이해와 수필의 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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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수필 / 회화지 21호(2014) 28–29쪽 · 원본 PDF 2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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