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시.대 전시를 다녀와서 — '피카소에서 천경자까지'
글 송태정(전북회화회 회원)

전북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세계미술거장전 '열정의 시대 : 피카소부터 천경자까지'가 10월 24일부터 2015년 2월 22일까지 미술관 본관에서 진행 중이다. 모더니즘의 출발인 인상파의 모네, 피사로, 입체파의 피카소, 브라크 등의 거장과 막스 리버만을 비롯한 독일작가들과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 작품 100여점을 통해 유럽과 한국의 모더니즘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자 꽃을 든 화사한 귀부인이 나를 반겼다. 에두아르도 레온 가리도의 '귀부인' 작품을 포토존으로 하여 실제 작품의 귀부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설레임과 앞으로 내가 보게 될 전시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게 해주었다. 이 전시는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모더니즘 이전의 유럽미술, 모더니즘의 출발인 인상주의, 모더니즘의 정점인 입체주의, 한국의 모더니즘, 베를린 분리파 순으로 전시되었다.
제1전시장은 비디오를 보는 곳으로 작가 특히 천경자작가의 삶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곳으로 되어 있어서 나는 모든 전시를 본 후 마지막에 관람을 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관람 시작, 제2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목욕하는 여인이 나를 유혹하였다. 인상파 이전 서양미술 전통을 보여주는 고전작이자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인 프랑스 오라스 드 카이아스 작 〈목욕하는 여인〉이었다. 책으로만 보았던 하얀 피부가 유난히 눈에 띠는 사실적인 유럽풍의 고전작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적 인물을 비롯한 누드와 초상을 다룬 인물화, 일상을 담은 풍속화, 자연을 노래한 풍경화,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린 정물화 등 로코코 시대로 추정되는 인상주의 이전의 유럽전통 회화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제3전시장에서는 모더니즘작품들이 등장한다. 모더니즘의 출발선상인 '인상주의'는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물의 색을 표현한 미술운동이다. 대표작가 모네는 하나의 소재를 빛의 변화에 따라 그리는 등 고유색이 아니라 보이는 색을 표현하였다. 이 전시장에 들어서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다. 뿌연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강물위에 놓여있는 다리가 나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나는 안개속의 빛에 쏙 빠져 들어갔다. 모네의 '워털루 다리'는 붓질 하나하나마다 섞임 없이 원색들이 빛나고 있었다. 강물 위의 반짝이는 아침 햇살 즉 빛의 인상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노신사는 자신은 그림을 잘 모르지만 이 100여점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맘에 든다고 한참을 서 계셨다.
발걸음을 옮겨보니 브라크, 피카소 등 입체주의 작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정점인 '입체주의'는 형태를 분할, 재조립하면서 19세기 이전 회화의 원근법에 의한 공간성을 해체하는 것으로 작가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번 전시를 통해서 모더니즘의 대표화가인 피카소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었다. 피카소의 '모자 쓴 여인'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도드라지는 붓질, 어둡고 단조로운 색,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의 얼굴을 합성시켜 어찌 보면 괴물 같은 얼굴로 독특한 여인들의 얼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새로운 장르로 여인과 사물들을 독특하게 묘사했다. 피카소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아마도 전쟁의 참화를 겪고 예술가로서 고뇌와 번민의 결과일 것이다. '모자 쓴 여인'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근대 모더니즘의 정점에 이르는 작품이다. 피카소는 많은 작품에서 여자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무엇이 피카소로 하여금 여인을 작품의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피카소로 하여금 사람의 얼굴을 괴기스럽게 조각조각 붙여 놓은 듯하게 그리게 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제4전시장에서는 한국미술의 모더니즘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 근 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 국내 거장의 작품과 전북 출신 작가 진환, 박래현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유럽 모더니즘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한국미술의 모더니즘'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암울한 역사에서 출발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암울한 역사에서도 꽃피운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다간 이들 예술가들과 운명의 퍼즐을 맞추듯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혹독한 환경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작지만 커다란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가족' 작품은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떨어져 살면서 종이살 돈이 없어 담배 갑의 은지에 그림을 그렸다.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그림이었다. 빛의 화가 오지호·김주경 등의 작품은 서구의 인상주의를 확실히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경험하게 하기 충분해 보였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진 환과 박래현의 작품을 만나면서 두 작가에 대한 깊은 매력을 느꼈다. 진 환작가의 '복숭아와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자연의 모습이 꿈속 동화처럼 보였다. 또한 현대 한국화의 개척자중의 한분인 박래현작가의 '영광'은 은은한 수묵 담채와 강한 채색의 만남으로 한국전통적 미감에 바탕을 둔 조형성과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제목으로 '열정의 시대 -피카소에서 천경자까지'라고 나왔기에 천경자 작가의 전통수묵을 근대화시킨 그녀만의 독특한 채색 작품을 한 점이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왔는데 드로잉작품만 있어서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제 1전시장에서 천경자작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비디오를 통해 그녀의 열정적인 삶과 작품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제5전시장에서는 독일 미술의 인상주의 작가 막스 리버만의 작품과 베를린 분리파의 그림들에서 독일의 인상주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독일의 인상주의의 거장 막스 리버만의 작품은 다소 생소하였지만 독일의 유명한 작가로 꼽힌다고 한다. 그의 햇빛이 담긴 '자화상'이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도립미술관의 붉게 물든 가을 단풍잎을 주으며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온 피카소, 모네, 이중섭, 천경자 등 여러 작가와 또한 그들의 귀중한 작품들과 호흡하고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21호(2014) 36–39쪽 · 원본 PDF 3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