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감정의 진실한 표현이 주는 신뢰'
[도판] 소, 수묵담채, 91×61.4. 1993
한 두해 전 쯤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주말쯤이면 매번 들르게 되는 전시실을 돌아보는 중이었는데 전북예술회관에서는 그때 마침 전북회화회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수묵의 새로운 해석, 자유로운 표현과 신선한 실험의식으로 이지역 한국화 발전에 가능성을 안겨주고 있는 단체의 전시회였던 만큼 또다른 기대감으로 전시실을 둘러보게 되었다. 여전히 한국화의 전통기법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젊은(?) 그림에 익숙해져가는 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 눈에 띄었다. 크레용과 연필을 이용해 소묘한 듯한 크지 않은 그림이었는데 둥글고 푸근한 느낌의 젖가슴위에 아이가 엄마품에 안겨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리고 초생달 등등 그런 소재들을 담은 것이었다. 특별히 표현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선한 작가 의식이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닌데 까닭없이 그냥 반가운 그 그림을 보면서 아마도 여성 작가의 그림일 것이라는 느낌을 기억해 두었었다. 그리고나서 이 그림의 주인이 문순이란 주부화가였다는 사실을 안것은 그이의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었던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그이가 작업실 대신 공개한 아파트 거실에는 짧지 않은 동안 아이들을(그는 연년생 딸아이와 이제 돐도 되지 않은 사내아이까지 셋을 두었다)돌보느라 밀쳐 두었던 그림 그리는 일을 다시 시작한 91년 부터의 작품들이 놓여있었다. 그중에 현관과 거실 사이에 걸린 그 '달밤'이란 제목의 그림을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저 그림요?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하고나서도 한참동안 어려웠어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으로 고통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우리 큰 아이가 '난 엄마가 책 읽어줄 때가 가장 행복해'하는 말을 듣고, 문득 내가 무엇을 그려야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딸애 덕분에 숨통이 틔인 셈이예요. 그 첫 작품이 저그림이구요.
문순은 이즈음 그림 그리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가슴이 뛸 정도로 물색의 변화에 감동스러웠다는 '대아리 情' 그리고 '마이산'과 '農舞' '세월' '線舞'를 비롯한 10여점 그이의 작품들마다에 그는 친절하고 섬세한 설명을 붙여주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예사롭게 그려진 것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그려낸 '소' 역시 그이의 가장 진실한 감정과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많지 않은 작품 중에는 '소'를 주제로 한 그림이 두개 있는데 이들이 서로 다른 이미지와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저쪽 '소'는 지난 2월엔가 그린 것인데 그때가 한참 농산물과 쇠고기 수입 개방문제로 농민들의 시위가 치열했던 때일거예요 글씨를 쓴 띠를 맨 소를 데리고 나온 여의도 시위농민들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감당하지 못할 분노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어요. 그때 그린 것이어서인지 분노한 소의 모습이 강하지요."
그리고 두번째 그려낸 그림이 바로 여기 실린 '소'다. 이전의 그림에서는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던 자유로운 표현, 그러면서도 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섬세하게 담아낸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문순이 갖고 있는 미술에의 인식을 한귀퉁이나마 들여다보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그림을 다시 시작한 이후 2년여동안 얽매여 있던 일상생활의 한부분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들과 감동을 공유하고 자연과 현실을 함께 인식해가는, 미술의 역할과 힘을 드러내는 그림을 만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확신이기도 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5년여동안의 공백기를 훌훌 털고 나선 문순의 그림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 한국적 정서를 윤기있게 담고 있는 이 '소'에 응집되어 있다면 그이가 앞으로 전개하게 될 진정한 미술세계는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짐작케 되는 든든한 신뢰의 연상에 놓여 있다. 그것은 곧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그치 지 않고 또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늘상 골몰하고 있는 문순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기도 하다.
원 게재: 작품단상 : 문 순의 작품을 만나고 / 회화지 1호(1993) 12–13쪽 · 원본 PDF 1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