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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나의 존재가 이세상의 조그마한 알이기를

조현동

작품

[도판] 念(전설), 한지에 혼합재료, 140×70. 1993

작업노트

나의 화실에는 다른 화실처럼 그동안 그린 그림들과, 화구, 책등이 있다. 다른점이 있다면, 마른명태가 건어물 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줄줄이 꿰어 걸려 있기도 하고 여러마리가 한데 놓여있기도하다. 처음에는 명태의 비릿한 냄새가 화실안을 채우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한 식구처럼 아무런 냄새도 느낌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나의 화실에 명태가 많이 있는 이유는 가끔씩 벗들과 기울이는 술자리의 술안주로 삼기위함이 아니라, 몇해전부터 작품의 소재로 많이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소재로 명태가 이용되기 시작한것은 친한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처럼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나의 집에서 화실로 가는 중간에는 시장이 있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 더욱이 내가살고 있는 남원에는 5일장이 열리는 관계로 재미있는 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나태해져가는 나 자신을 추스리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인가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무엇인가가 나의 시선을 고정시켜 놓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건어물전의 명태들이었다. 꼬챙이에 꿰어 엮어져 있기도 하고, 줄줄이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자세히 보지않으면 다같은 모습같지만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명태를 보고 재미있기도 하였지만 엮어져있는 명태를 보면서 우리 인간이 보이지 않는 삶의 굴레에 엮어져 살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고, 한결같이 입을 벌리고있는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항하며 절규를 하는듯한 환상을 일으키게 하였으며 고향바다를 그리며 노래하는 듯 했다. 이 명태들이 이름모를 어부의 손에 잡히지 않았던들 넓고 푸른 바다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자유로이 살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화실에 도착하여서도 명태에 대한 생각은 한참동안 나의 뇌리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작품에는 명태가 그려지기 시작하였고, 명태의 또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기존에 있었던 것을 새로이 인식 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명태하면 먼저 술안주, 밑반찬으로, 술먹고 해장 할 때의 북어국이 연상되기 쉽다. 그러나 명태는 먹거리에서 부터 우리의 생활풍습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집을 지으며 행당을 올릴때도 북어를 매달아 복을 기원하고,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도 북어는 빠질수가 없으며, 많은 고사를 지낼때도 북어는 빠질 수가 없는 제물이다. 하물며 술을 먹고 속을 풀때도 북어는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명태는 우리민족의 정신과 습성에 큰 자리를 하고 있으며 우리의 곁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인이 명태의 예찬론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연고로 나의 작품에는 명태와, 五色(赤, 靑, 黃, 墨, 白)과 알의 形態, 단청(丹靑)무늬, 색동, 민화(民畫)가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五色은 陰陽 五行說에서 나온 색채를 나타내고 있으며, 알의 형태는 깨이지 않고 우리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전설(傳說), 전통(傳統), 역사(歷史), 이상(理想) 등을 내포시키려 하였으며, 또한 작품에 소재로 자주 나타나는 나비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켜 주는 역할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살아있는 생명체의 의미를 내포하려 하였다. 민화, 단청, 색동이 작품에 자주 나타나고 있음은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려보자는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부터 나의 작품에는 토분(흙)이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흙은 어릴적부터 가장 많이 접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고향을 연상하게 되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정서를 느끼게한다. 흙은 장난감이 제대로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 다른 자연물과 더불어 유일한 놀이감이었고 안식처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흙을 자연스럽게 한지와 더불어 재료로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명태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의 모습도 명태를 닮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명태처럼 '나'라는 존재가 이세상에 긴요히 자리하고 있다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한점의 작품을 위해 내자신을 말려가는 아픔도 희열로 느낄 수 있어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깨인 알의 봉황이기 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마한 알이기를 기원해본다. ■전북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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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

원 게재: 작업노트 / 회화지 1호(1993) 14–15쪽 · 원본 PDF 1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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