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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그 곳에도 내 동포들이...

이 진 숙

[사진] (캡션 없음 — 북한 현지의 도로와 관광버스)

가슴 속 깊숙이 그리고 머릿속 모든 세포들에 각인된 것은 금강산의 절경도 교예단의 묘기도 온천욕의 매끄러움도 온정리 휴게소의 맛있는 음식도 아니다. 지금보다도 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날까지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하자. 서로 사랑하자.

등판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듯이 색 바랜 윗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한 떼 지나간다. 넓은 자갈밭에 간간이 심어 놓은 채소를 돌보기 위해 고랑고랑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번 수해가 심한 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서로의 등에 물난리에 내려온 듯한 돌들을 짊어지고 바삐 오고 간다.

나이 어려 보이는 군인들이 커다란 나무를 베어 무엇엔가 쓸 듯이 손질을 하고 있다 길고 널따란 배 과수원에 배는 하나도 달려있지 않고 아니 아예 열리지 않은 듯이 풀만 무성하다.

깡마른 체격에 키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얼굴은 자연 그대로 새카맣게 그을려 있다. 철망 너머보이는 학교는 텅 비어 있는 듯하다. 금강산 방문 3일째 되는 날 삼일포 가는 길에 내 눈에 비친 모습이다. 전날 있는 힘을 다해 올라가 본 팔상암의 전경이 순간 꿈인 듯 오늘 본 그들의 모습에 오버랩이 되면서 무엇인지 모를 것이 가슴 한 가운데를 두드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 물 기가 고이고 콧잔등이 가려온다. 물론 이런 감정은 순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치에 맞춘 나만의 감정이다. 그들 표정 어디에서도 어두운 구석은 찾을 길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환히 웃으면서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북한 체험은 연수를 위해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면서 새벽 3시에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자다 깨다 정말 비몽사몽간에 도착한 속초 항, 떨리는 마음으로 금강산 관광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주의사항을 수십 번 듣고 나서야 설봉호에 올랐다. 처음 본 룸메이트들과 대면 인사, 여자들끼리 모이면 으레 하게되는 수다를 떨고 망망한 바다를 보고 4시간여 지나니 인공기를 단 배가 한 척 다가와 한참 후 장전항에 정박허가를 내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금강산 관광증을 목에 걸고 개미도 질서를 어기면 잡아 갈 듯 조용한 장전항에 내리니 커다랗게 틀어 놓은 '반갑습니다' 가 우리를 반긴다. 까다로운 세관을 통과하여 그곳 직원들의 상냥한 인사를 받으며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눈앞에 펼쳐지는 기암괴석들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간간히 무심하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호기심어리게 바라보며 온정리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여기가 정말 북한 땅인가 의심할 정도로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여 적잖이 실망을 했다.

다음날 새벽에는 구룡폭포를 보기 위해 새벽같이 서둘렀다. 계곡마다 흐르는 빨려들 듯이 맑은 물, 명경지수가 무엇인지 50여 년만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팔상암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어떠한 단어도 떠오르질 않는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달려 내려와서 본 구룡폭포는 내 숨이 곧 멈추어도 후회할 것이 없다는 감동에 쌓여 있기에 충분했다. 턱에 닿아 있는 숨을 고르면서 내려오는 길에 한 모금 마신 삼록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새로운 힘을 솟게 하는 명약이었다. 가지고 간 초콜릿을 그곳 아리따운 아가씨와 나눠 먹으면서 서로 웃음으로 나눈 이야기는 오랜 여운을 남겼다.

모란봉 교예단의 신기에 가까운 묘기는 탄성과 눈물을 아울러 불러냈다. 곁에 같이 관람하던 어떤 이는 그들이 실수 할 때마다 불려가서 매를 맞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피부병도 치료했다는 온정리의 온천욕은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감은 머리를 사흘정도 감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한숨이 곳곳에서 나올 듯한 고려려관의 초라한 모습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삼일 내내 먹었던 맵지도 짜지도 않아서 내 입맛에 딱 맞았던 온정리 휴게소의 음식맛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가슴 속 깊숙이 그리고 머릿속 모든 세포들에 각인된 것은 금강산의 절경도 교예단의 묘기도 온천욕의 매끄러움도 온정리 휴게소의 맛있는 음식도 아니다. 삼일포 가는 길에서 보았던 내 동포들의 모습이다. 그곳에도 나와 똑같은 내 동포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 무작정 주자,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날까지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하자.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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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10호(2002) 43–44쪽 · 원본 PDF 4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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