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회화회를 바라보며
새/롭/게/시/작/하/자
새롭게 출발하려 신발 끝을 메는 젊은 후배들의 돌팔매는 가혹한 매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10여 년의 성과를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이 철 량 (전북대 예술대 교수)
전북회화회가 지난 90년 "중앙시장 사람들"이라는 내용으로 주제 전을 가진 이래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갔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시간이 참 빠르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북회화회가 이번에 두툼한 책자를 편집하며 원고를 부탁하였는데, 아마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뭔가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10년이면 시쳇말로 강산이 변한다고들 한다. 물론 강산이야 어디 가겠는가 마는 인심은 수시로 바뀌는 것 이여서 10여 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필자는 전북회화회와는 남다른 인연이 깊어 그간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봐왔던터라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 이제 전북회화회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지역 화단을 지켜오면서 그들 자신들도 많이 성장하였지만 어느면 이제 그들이 또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 것인가 새삼 확인해야하는 시간이 온 것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는 사실 전북의 지역화단은 요동의 시기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보수적이고 전통에 대한 집념과 자부심이 강했던 지역의 전통회화는 더욱 심한 것 이였다. 이 시기는 물론 미술에 있어서 만은 아니였을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던 가치관의 변화에서 기인되는 새로운 시대의 준비에 다름아니였다고 생각된다. 어떻든 전북지역의 전통회화는 그 수용의 갈등이 한층 깊어 혼란의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이였다. 이럴 경우 대개는 젊은 새로운 새대들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기 마련이였다. 이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먼저 전북회화회 회원들에게서 생겨났다. 그리고 시작한 전시가 "중앙시장 사람들"이었다. 중앙시장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함축된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 것 이였다. 그들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인 것 이였다. 중앙시장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자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역미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 그 이후 수없이 되뇌었던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의 깊은 의미는, 기실은 자신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는 자각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전북회화회가 제일 먼저 이러한 자각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 그들은 "전북의 산하" "교동의 표정" 그리고 " 전북의 인물", " 광복50주년"전 등 테마전을 꾸준히 열어왔다.
이러한 테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북의 문화유적 기행"전을 열었고 한편으로는 우리미술에 대한 탐구를 위해 세미나를 갖거나 토론회 등을 꾸준히 열어왔다. 지역에서의 그들의 활동은 결코 작지 않다. 전북회화회 회원들의 회화적 성과는 차치하고 그들이 꾸준히 벌인 우리미술에 대한 확인울 위한 일련의 활동은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런 글에서는 의례 칭찬이나 자화자찬이 먼저 앞서는 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들의 그간의 노력이 결코 칭찬만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일 것이다. 당시 그들 원들의 나이가 결코 많지 않은 20대 후반이거나 30을 넘긴 작가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그림으로는 이제 막 사회에 첫 출발을 시작하는 젊은 나이의 작가들에게서 새로운 변화와 힘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면 이러한 젊고 패기 있는 신세대들이 아니면 새로운 변화와 준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 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렇게 시작한 이 지역 젊은 신세대들은 그들 스스로의 출발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의욕적이고 왕성하게 활동을 지속시켰다. 아마 어느 지역에서도 이러한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형식의 틀에 맞추지 않고 각자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삶터와 이웃을 되돌아보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이러한 작업이 결국 내일의 새로운 발견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과 자각이 있었던 곳은 정말 흔치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노력을 자신들이 작업으로만 보여주지 않고 주변에 더욱 확인시키기 위해 작으나마 회화지를 만들어 배포하며 설득해 왔다는 노력 또한 값진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러기를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성과만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작품 속에서 읽혀져야 하는 숙제가 남는 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회원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작품전을 가져왔고 작품에 대한 토론회도 있었다. 그간 그들의 이러한 작업은 그들 선배들에게 그들의 주장을 강요했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는 작업이였다. 그들 젊은 패기에 의한 시대의 변화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선배들에게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전북의 전통미술이 그들의 시대적 욕구대로 변화되기를 바라왔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때로는 선배나 변화를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했을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질타와 외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발길질에도 10여 년을 버텨오면서 이제 그들은 나이에서도 이미 중진의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어느새 말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를 먹고 말았다. 내가 느끼고있는 것을 아마 전북회화회 회원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새 밀려오는 후배들에게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르는 사이에 벌 때처럼 달려드는 후배들이 있었다. 때로는 존경의 눈총으로 어떤 때는 허탈과 좌절을 느끼는 많은 후배들을 의식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회원들이 처음 출발할 때 선배들에게서 좌절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그때처럼 이제 한 때의 젊은 후배들이 자신들을 향해 돌을 들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창작의 세계가 무척 지난한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만약 10여 년 전의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적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돌이다. 어떤 때는 변화만이 능사냐고 위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 위안은 될지언정 벌 때처럼 달려드는 후배들의 돌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외출할 때 수시로 가라 입는 겉옷처럼 외양만 바꾸었다고 변화라 할 수는 없을 터이므로 아마도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작품을 크게 전시하고 회화지를 두껍게 만들었다는 것은 변화의 계기를 노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으로 칭찬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80년대가 요동치는 시대였다고 해서 90년대가 안정된 시기였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활동해왔던 지난 10여 년도 따지고 보면 내외적으로 소란한 시기였다. 물론 앞으로 10년도 지난 시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시대는 항상 극복해야하고 도전해야하는 대상이지 편안하고 안락한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북회화회가 앞으로 10여 년을 또 새롭게 준비하는 도전의 신발을 신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주장이 작품을 통해 설명되기를 소망한다. 전북회화회 회원들이 선배인 나를 평가하고 비판해 왔듯이 나 또한 완곡한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코 이 정도에서 안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려 신발 끈을 메는 젊은 후배들의 돌팔매는 가혹한 매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어떻든 이제 글을 끝내야 하므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 같다. 그간 10여 년의 성과를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이건 내가 회원들과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진심 어린 인사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원 게재: 새/롭/게/시/작/하/자 / 회화지 10호(2002) 8–9쪽 · 원본 PDF 8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