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영원한 꿈을 간직한 산수화는 있는가?
[도판] (산수 이미지 / 크기·재료·연도 미상)
찬비가 후루룩 내리고 나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호들갑스럽다. 지금은 영하는 아니지만 첫서리가 영동 쪽에 내렸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옷깃을 여미고 화구를 챙겨서 스케치를 하기에 적당할 때이다. 나뭇가지에 잎사귀는 달랑거릴 것이고, 한 잎 두 잎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가 보이면서 여백의 미가 살아날 것이다. 이 때쯤이면 화가는 시인이 된다. 모든 화가는 본질적으로 〈시인〉이다. 시적인 것의 드러남이 과중한 화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화가도 있다. 전자의 사람은 몽상과 시가 혼동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와 몽상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고 발레리가 보았다. 김윤식의 '문학과 미술 사이' 라는 책에도 있지만, 감동에 바탕을 둔 예술 창작 상태를 두고 한 말인 것으로 본다. 예술 창작은 흥분, 춤, 몸짓 등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서로 등가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회화에서는 몽롱한 몽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꿈을 그림에 옮겨 본다는 것이다. 이에 너무도 구태의연하게 그림을 표현하다 보니 관념이라는 말이 생겨 나온 것이고 진경 산수화를 이제는 더 높이 처 둘려는 곡해가 생겼다. 조선 후기 실경을 그리기 위해 겸재 정선은 한강과 금강산 등을 걸어서 두루두루 섭렵하였다는 것이다. 과거 국전과 도전의 동양화부분에 나오는 표현은 진경도 아니고 실경도 아니며 이상향을 그린 그림도 아니었다. 관념적인 산수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은 어디서 왔는지 좀더 생각해 볼 것이지만, 이 그림양상은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그림과 다르다는 점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관념산수의 원조로 보면 안 된다.
몽유도원도를 처음 마주한 안평대군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표현한 그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림의 발문을 쓴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의 왼쪽에서 시작되는 봄은 안평과 박팽년이 함께 거닐면서 시작된다. 산이 점점 깊어지고 계곡도 깊어져 도원이 나오고 주변에 바위가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펼쳐져 신비롭기까지 한다. 이 도원에서 감탄하며 詩會에 나온 최항과 신숙주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이 우연인가는 몰라도 못 만날 것도 없지 않은가? 이 아까운 순간을 3일만에 안견에 의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어이 기뻐하지 않을 것인가. 안견의 화풍에 대한 당대의 안목은 엄청 났을 것이다. 정4품 벼슬자리였던 화사(畵師)였다. 안견은 나중에 안평대군을 배반하고 세조의 시퍼런 독으로부터 목숨을 연명하지만 그 당시 처세는 그렇게 어려움도 있지 않았는가 싶다. 차후의 일이긴 하지만 몽유도원도가 상상에 너무 빠져 허무에 가깝다고 하고 곽희의 산수화 이념에 경도 된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곽희풍의 관념산수에 가깝다는 점이다. 자연이란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산수 이념이다. 또한 정치적 이념이 도사린 욕망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저의로만 그림을 볼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적 화풍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안견 독창적인 점이 발견되고 있다. 화폭의 전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현실 세계를 재현한 왼쪽과 도원을 표현한 오른쪽, 현실과 낙원, 실제와 상상으로 병립시키고 있다. 음양기법이라고 할까 싶다. 후에 겸재의 금강전도를 흙으로 된 산과 바위로 된 산을 표현한 기법과 비슷하지 않은가? 현실은 정면으로, 도원 쪽은 부감법적으로, 도원이 감추어져 인간이 감히 엿볼 수 없는 것처럼 살짝 드러내고 있으며 광활하게 폭을 잡고 있다. 多視點은 동시적인 피카소 그림 같다고 할 수 있다. 황금빛으로 채색된 복숭아꽃의 무리는 신기에 가까운 듯한 붓놀림은 고흐의 붓 터치의 손놀림과 손색이 없지요. 세기를 넘어서 그 전율을 느끼게 하는 명화는 자주 볼 수는 없다. 이 그림은 지금 현해탄 너머에 있다.
꿈이 서린 그림을 현대 한국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실경 산수라는 명목으로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다. 초가 옆 오솔길, 숲 길, 개울가, 들녘이 보이는 구릉, 마을 몇 채 보이는 계류, 외 딴 섬 마을 등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 같은 곳을 그리면 최고라고 본다. 고향마을 최고의 이상향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 이상의 상상을 가지고 인류의 영원한 꿈을 표현하는 역작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날이 또 오길 바란다.
원 게재: 전북회화회를 바라보며 / 회화지 12호(2004) 25쪽 · 원본 PDF 25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