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여행-라싸! 햇빛가득한 도시
[사진] (좌) 바위산 / (중) 포탈라궁 / (우) 대조사(조캉사원) 앞의 필자
서안에서 란조우, 자위관, 투루판, 우루부치, 쿠차, 카스, 둔황에 이르는 약 25일의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티벳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여행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했지만 문명의 때가 아직은 덜 묻은 곳, 평균해발이 4000m가 되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고원이 있는 곳,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곳! 티벳 – 그 곳을 직접 살펴 볼 요량이었다. 특히 이번 티벳여행은 개인적으로 오지여행이라는 남다른 동경심의 발로도 있었지만, TV와 책으로 만난 독특한 장례 풍습에 한껏 매료되어 있었기도 했다.
\*티벳은 중국에서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졌다 한다. 당·송대 때는 토번(吐蕃), 원과 명나라 때는 오사장(烏斯藏), 청나라 때는 당구트(唐口特)와 투벳트(圖伯特), 현재의 서장(西藏)은 청나라 강희제 때부터 사용해 온 명칭이다.
우리 일행(3명)은 꺼얼무에서 육로를 통해 티벳의 수도 인 라싸로 넘어가기로 했다. 외국인이 티벳을 들어갈 때는 한화로 일인당 약 12만원 정도의 입장료와 허가서를 내야하는데 이를 아끼기 위해 중국인 처럼 가장해서 불법으로 짚차를 빌려 넘어가기로 했다. 라싸로 가는 길은 두군데의 검문소가 있는데 이 곳만 통과하면 티벳에서 여행할 때나 다시 나올 때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했다. 꺼얼무에서 티벳으로 넘어가는 외국인은 전부 불법이라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이곳 꺼얼무 버스정류장에는 유럽인, 일본인등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꺼얼무에서 라싸까지는 무려 1,100km 대장정이다. 쉬지 않고 가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이다.
나무 하나 없는 바위로 만들어진 곤륜산맥 줄기를 따라 짚차는 고도를 높혀간다. 해가지면서 나타나는 풍경 – 끝없는 초원지대가 형성되면서 양떼와 야크(일종의 들소)들이 보인다..탕그라 산맥(해발 5,200여m)을 숨가쁘게 넘어 가면서 머리가 부서질 정도 두통이 밀려 온다. 이것이 고산증인 모양이다. 저녁으로 먹었던 라면을 다 토해 버렸다. 화물차 운전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휴게소에서 잠을 청해 보지만 두통으로 인해 거의 뜬 눈으로 날을 새야만 했다. 아침에 차는 다시 티벳의 초원을 달린다. 좌우로 멀리 보이는 눈덮힌 고원과 양, 야크떼들이 노니는 초원, 끝없는 풍경이다. 탕그라 산맥을 넘어 내리막 길로 라싸에 가까워지면서 두통이 한결 나아졌다. 이렇게 차로 넘어가는 것이 고산증에 적응하는 데 빠르다 했다. 점심도 대충 떼우고 다시 출발하였다. 어느새 짚차는 초원지대를 지나 얄룽창포 강 협곡을 따라 만들어 놓은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고 있다. 운전사가 이제 한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하였다. 갑자가 이게 웬일! 차가 바로 눈앞 100여미터 전방부터 차들이 꽉 막혀 있는 것이다. 산 사태가 난 것이었다. 지금 티벳은 우기(7월-9월)라 했다. 하루종일 비가 오는 우기가 아닌 저녁에 비가오며 낮에는 비가 그치는 그런 날씨가 반복되는 우기라 했다. 티벳이라는 곳이 우기 동안에는 곳곳이 비로 인해 산사태가 잦은 곳이기에 언제 길이 막힐줄 모른다 하였다. 이렇게 2시간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갑자기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듬성 듬성 마을이 보이고 유채꽃밭들이 너브러지게 널려 있었다. 이런 풍경은 라싸까지 계속되었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라싸에 도착하였다. 장장 26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이었다. 일단 숙소는 전형적인 티벳식 호텔인 인 야크호텔이나 키리호텔로 잡기로 하였지만 휴가철 인지 빈방이 없었다. 할 수없이 비싸지만 키리호텔 옆 중국호텔로 가야만 했다. 저녁은 키리호텔에서 티벳식 식사를 하였다. 야크고기가 일품이었다. 내일은 티벳의 상징이자 티벳민족의 위대한 창조물! 역대 달라이라마가 살았던 포탈라궁을 가기로 하였다.
[사진] 세라사원 스님들의 불경토론 광경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티벳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3-4일을 고생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우리 일행은 다행히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넘어 와서인지 고산증이 덜한 편이었다.
라싸시는 인구가 40만 정도 된다 하였다. 아침인데 제법 인파 들이 나와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티벳인들이 주로 사는 舊 도시이며, 구도시 주의로 중국 본토인들이 新도시를 만들어 둘러 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어제 라싸시를 들어 올때 군(중국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는데 , 이런 부대가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마 티벳의 계속되는 독립운동 때문인 것 같았다.
라싸는 聖地, 또는 일광성(日光城)의 뜻을 내포하고있으며 1,4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고도이다. 서기 633년 토번의 송첸캄포가 티베트 고원의 부족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산난야룽 지역에 있던 왕조의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토번 왕조가 무너진 9세기 후반부터 명나라 초까지 여러 지방세력들이 라싸를 통치 하였다 한다. 이후 명말에 티베트 불교 겔룩파(교도에게 엄격한 계율을 준수와 경전공부에 대한 엄격한 제도를 추구하는 密宗을 배우는 종파로 황색 모자를 계율을 존중하는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에 黃敎라고도 한다.) 라싸 3대 사찰(감단사甘丹寺,색랍사色拉寺, 철방사哲蚌寺)을 연이어 건립함에 따라 17세기 이후 청나라의 책봉정책으로 인해 달라이 라마의 세습체제가 티베트의 정치 종교상의 최고 지위를 얻어 티베트의 권력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포탈라궁(布達拉宮)까지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않았다. 10분 정도 걸어가자 눈앞에 하얀 성이 우뚝 서있다.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라싸 평원 위에 우뚝 서있는 라싸의 상징 다웠다. 홍산(紅山)이라는 가파른 산세에 의지해서 궁전을 지었기에 그 비범한 기세와 장엄한 자태는 압권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 중의 하나라 하였다. 포탈라궁은 7세기 경에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송첸캄포 왕이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아내로 맞아 후세에 과시하기 한 목적이었다 하니 문성공주의 위세를 알만 하다. 현재의 모습의 포탈라궁은 17세기 중엽에 달라이라마 5세가 청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아 증축되었다 한다. 그 규모는 13층 건물로서 110미터가 넘는다. 궁전은 크게 백궁과 홍궁 두개로 나누어지며 5개의 금빛 기와 지붕이 있는데 그 금빛이 휘황찬란하다. 또한 포탈라궁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보고로서 티벳의 수많은 문물과 불상, 보물들이 가득 차 있다한다.
포탈라궁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이다 보니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입장료도 한화로 15,000원이나 하였다. 궁으로 오르는 오르막 길은 힘이 들었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가빠왔다. 포탈라궁 내부는 어두운 편이었다. 방 곳곳은 촛불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으며 수많은 불상과 달라이라마의 상(전의 달라이라마 모습을 불상처럼 제작하였다)들을 모셔 놓았다. 그 양옆으로는 수많은 불경들이 상자에 넣어 진열해 놓았다. 손바닥만 한 불상에서 5미터에 이르는 불상 까지 그 크기가 제각각이었으며 실제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화려하게 입혀 놓았다. 한가지 생소한 것은 방마다 고양이가 있었다는 것인데 바로 쥐를 잡기 위한 용도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라싸의 어느 사원에 가더라도 항상 쥐를 –그것도 상당히 많은– 볼 수 있었다. 포탈라궁의 홍궁은 불신을 모시고 종요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역대 달라이라마의 영혼탑과 각종 불당이 있는 곳이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영혼탑은 14.85미터나 되며 5대 달라이라마의 유체가 모셔져있다 한다. 특히 영혼탑은 아래부터 위까지 11만량의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통치자로서의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활불윤회(活佛輪廻)로 통치자를 정해왔는데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전 티벳과 후 티벳을 나누어 통치하였다. 1대 달라이라마와 1대 판첸라마 때부터 그들은 그들의 지위를 활불윤회로 계승하고있다. 지금까지 14대 달라이라마와 10대 판첸라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모두 티벳승려들에 의해 부처의 화신(化神)처럼 되었고, 그들은 죽은 후에 다시 영동(靈童) 즉 영적인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활불윤회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점심을 한 후 드레퐁 사원으로 향하였다. 드레퐁 사원은 라싸에서 버스로 1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드레퐁 사원은 티벳 최대 규모의 사원이자 역대 달라이라마들의 母寺인 사원이다. 철방(哲蚌,드레퐁)은 '쌀더미' 라는 뜻으로 멀리서 사원을 보면 산 중턱에 흰쌀을 쌓아 놓은 것 같아서 지었다 한다.
우리 일행은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순례자들이 통행하는 길로 가기로 하였다. 대개 순례자 길은 사원을 돌아가는 길이기에 입장료를 내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보다는 상당히 멀었다. 오르막 길을 20여분 걸은 뒤에야 드레퐁 사원에 도착하였다. 고산지대에서 20여분 걷는 다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사원 내부는 마치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 비슷 비슷한 티벳식 건물들이 빼곡하였다. 곳곳에 우리 절로 말하면 대웅전 같은 건물들이 수도 없었다. 대개 사원 내부는 비슷비슷하였다. 다양한 불상들과 역대 달라이라마들의 모습을 불상형태로 만들어 비단으로 된 옷을 입힌 뒤 모셔 놓았다. 특히 이 드레퐁 사원은 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사원이며, 포탈라궁이 완공되기 전까지 이전 달라이라마가 거주 하던 사찰로 유명하였다. 사원에서 나오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티벳에서의 모든 사찰은 순례자 길로 가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미리 정보를 입수 하였음) 저녁에 라싸 시내로 나가 보았다. 지금 라싸는 현대식으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옷차림 부터가 서구식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세계 유명 메이커 매장(가전,의류,신발,패스트푸드등등)들이 곳곳에 입점해 있었다. 또한 호텔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전용실이 있었으며, 호텔 가까이에는 PC방까지 있었다.
저녁에 야크호텔에서 한국인 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혼자 여행온 한국 여대생의 소개로 좀 더 싼 호텔로 방을 옮기기로 하였다. 스노우 랜드(雪域飯店)라는 호텔인데 외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티벳식 게스트하우스로 대조사(조캉사원)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서자 마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중국에 교환교수로 온 부산대교수님, 두사람의 젊은 여행객– 한사람은 세계일주 중이며 한사람은 일주일 째 묵고 있다 하였다. 라싸에 대한 살아있는 많은 정보를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새벽까지 내린 비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개는 그런 날씨의 연속이다. 오늘은 오전에 라마교도의 순례성지인 대조사를 오후에는 세라사원을 둘러 보기로 하였다. 대조사는 호텔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다. 대조사 주위로는 팔각거리(八角街,바코르 Barkhor)가 형성되어 있는데 일종의 라마교도들의 순례길이면서 가장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수 많은 순례객들이 시계방향으로 대조사 주위를 돌고있는 모습을 보면 티벳불교에 대한 티벳인들의 믿음이 어느정도 인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대조사 입구에는 많은 순례객들이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있었다. 대조사 안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수많은 마니륜(瑪尼輪)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례객들은 마니륜을 돌리면서 사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대조사 지붕은 포탈라궁 같이 화려한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파란 하늘과 맞닿아있는 황금색깔의 지붕은 보색대비로 인해 더욱 더 화려함을 더해준다.
버스로 세라사원으로 출발하였다. 라싸시에서 북쪽으로 3km정도 에 위치한 사원으로 일종의 불경학원이다. 라싸 3대사찰 중 가장 나중에 지어진 사원으로 산기슭에 자라는 '세랴' 라는 야생장미의 이름을 따 세라사원이라 명명하였다한다. 역시 우리는 입장료를 절약하기위해 순례자길을 택했다. 어제 호텔에서 세계일주 중인 젊은 여행객이 알려준 순례자길은 정확하였다. 드레퐁 사원의 순례자길보다 훨씬 짧은 거리여서 한결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사원안의 건물은 절도있게 배치된 드레퐁사원과는 달리 조금은 무절제하게 배치되어있었다. 대전과 벽화를 구경하고 있는 중 갑자기 사람들의 야단법석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바로 그 유명한 세라사원 스님들의 불경토론하는 광경이었다. 한분 앉아있고 한분은 서서 앉아있는 스님에게 마치 혼을 내듯 큰소리로 불경을 토론하는 광경인데 마치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으로 착각이 될 정도였다. 세라사원은 대전에 모셔논 미륵불과 벽화로 유명한 사원인데 각종 벽화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후 사뮈에사원과 약왕산 등 라싸 주변의 사원들을 둘러 보았다.
이번 티벳에서의 일정이 짧았던 관계로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 양파첸(지열지대),아리지구, 남초호수, 천장대(天葬臺, 조장하는 곳)등을 가볼 수 없었지만 티벳에 대한 설레임을 어느정도는 풀어주는 알찬 여행이었다.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벌써 마음은 티벳으로 달려가고 있다.(2004.10.)
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12호(2004) 36–39쪽 · 원본 PDF 3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