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미술 문화의 이해와 새로운 창조


세상이 점점 빨라져가고 있다. 그만큼 생각도 피상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지나간 과거를 쉽게 잃는 경향이 있다. 모든 예술에는 창의성에 대한 고민이 따른다. 연암 박지원의 유명한 법고창신론 즉 "옛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말이 해답이 될 수 있다. 고(古)란 단지 지나간 죽은 옛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고(古)란 단지 복원이나 찬탄의 대상이 아니고, '오래된 미래'를 찾기위한 필수과정인 것이다.
사상과 철학이 뿌리라면, 문화는 줄기이고, 꽃이나 열매는 미술을 포함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은 그 시대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창이 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좌표가 되기도 한다.
1400여살이나 되는 금산사는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우리의 역사를 겪어 온 살아있는 미술관이다. 금산사에 내재된 백제의 미감을 통해 전북 미술 문화의 폭과 깊이를 이해하고, 그 바탕위에 새로운 현재적 조형의 방향을 찾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1. 금산사의 시각적 조형성에 대한 이해
1) 수직적 이미지 – 미륵전

금산사는 백제가 망한지 100여년 뒤인 762년, 진표율사가 백제유민의 구원을 위한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중창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중심지이다. 금산사는 백제사람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미륵불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부처다.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현실의 변혁을 원하는 민중들에게 미륵은 구원의 메시아이다. 미륵의 범어 표기인 마이트레야(Maitreya)는 메시아(Messiah)와 어근(語根)이 같다고 한다. 즉, 불교의 미륵은 기독교의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륵은 인도의 바라나국 겁바리촌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때 석가 입멸, 56억 7천만년 후에 용화수(龍華樹)아래 내려와 3번의 설법을 통해 이 땅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라는 수기를 받았다. 그는 죽은 뒤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이 되었고, 잠시도 쉬지 않고 깊은 선정에 들어있다. 이 과정을 미륵상생(彌勒上生)이라 하고, 도솔천 미륵의 시각적 조형이 미륵반가 사유상이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지상의 미륵불로 내려오는 과정을 미륵하생(彌勒下生)이라 하고, 미륵이 용화수아래에서 행하는 3번의 설법을 '용화삼회(龍華三會)' 라 부른다.
미륵신앙 사찰은 용화삼회의 "3"이 상징수가 된다. 그래서 탑이 3개 이거나 3층의 건물을 짓는다. 금산사 미륵전이 3층인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조형이다. 미륵전에는 현판도 3개나 걸려있다. 즉 '미륵전', '용화지회', '대자보전' 이다.
석가모니는 40여년동안 중생을 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제 받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단 3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구제한다는 미륵불의 시각적 조형은 어떠해야할까?
모든 중생이 고개를 들고 우러러 보는 수직적 이미지여야 할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상이 동양최대로 키가 큰 조각이라는 말은 당연한 얘기이다. 또 미륵전은 건물이 3층이면서 기단이 매우 낮다. 그래서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수직으로 우뚝 서있다. 보통 미륵상은 키가 아주 커서, 법당 안에 모시기보다는 야외에 입상으로 세우는 것이 자연스럽다. 논산의 관촉사 '은진미륵'은 야외 입상 조각의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2) 수평적 이미지 – 대적광전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 '는 말이 있다. 바로 모든 예술이 음악의 harmony 즉 조화를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시각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건축조형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주변과의 조화이다.
옛날 백제땅이었던 호남지방은 평야가 많다. 상대적으로 옛 신라였던 영남지역은 높고 험한 산들이 많다. 산이 많은 영남에는 수직적인 조형이, 평야가 많은 호남은 수평적 구조가 잘 어울린다. 영남지역의 옛 건물은 기둥과 기둥사이의 칸살이 좁고 기둥이 높아 수직적이고, 호남지역은 칸살이 넓고 기둥이 짧고 굵어 옆으로 기다란 수평적인 조형이 특징이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다섯부처와 여섯보살을 모셔 건물이 7칸이나 된다. 이렇게 긴 건물이, 기단은 높고 기둥이 짧고 굵어, 더욱더 옆으로 기다란 수평적인 이미지로 느껴진다. 김제 금산사, 익산의 미륵사, 그리고 고창 선운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연못을 메워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이는 결국 넓은 평지를 확보해서 수평적 구조의 가람을 조성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지역의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이나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개암사 대웅보전은 공예적이고 정교한 옛 백제문화인 수평적 조형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미술문화이다.
3) 수직·수평의 통합 – 방등계단
금산사는 미륵전과 대적광전이 가람의 중심이다. 미륵전은 모악산 정상과 어울리는 수직적 조형이고, 대적광전은 건물 뒤 평평한 능선과 일치되는 수평적 구조이다. 그래서 금산사는 수직적 미륵전과 수평적 대적광전이 직교한다.
미륵전은 15m에 달하는 3층의 높은 건물이다. 넓은 평지의 수평속에서 우뚝 서있는 미륵전은 미륵신앙의 대상으로 최상의 이미지이다. 반면 대적광전은 길이가 26.6m나되고 7칸의 기다란 건물이다. 수직의 미륵전은 동쪽에서, 수평의 대적광전은 서쪽에서 중심을 이루며 직교하고 있다.
이 두개의 중심을 통합하고 수직-수평이 직접 부딪히는 갈등을 완충해주는 것이 5층석탑이 있는 방등계단이다. 대적광전과 미륵전 사이 송대라고 하는 방등계단이 있다. 모악산 정상에서 길게 뻗어나온 능선의 끝에 있는 이 방등계단은 두 건물에서 뻗어나오는 힘을 중화시키면서 하늘로 상승케 하는 절묘한 조형을 이룬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 중심은 미륵전과 대적광전 두건물이지만, 감추어진 실질적인 중심은 바로 5층석탑이 있는 송대의 방등계단이다. 방등계단 앞의 5층석탑은 멀리서 눈에 잘 띄게 하는 랜드마크의 역할이다. 방등계단이 수평적 조형이어서 입구나 위치가 낮은 절 마당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방등계단은 수평적 조형이고, 그 앞의 5층석탑은 수직적 이미지이다. 방등계단 역시 수직 – 수평의 대조적 조형이다.
2. 법고창신의 정신
우리조상들은 사상적 교리를 시각적 조형으로 구현해 내면서, 주변의 산능선이나 봉우리 그리고 들판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그러면서도 수직과 수평의 극단적 조형을 이처럼 절묘하게 대비시켜 내었다. 그 시대 문화를 종합적으로 디자인해내는 품격높은 감각에 숙연할 뿐이다.
우리 전통 미술문화의 현대화 작업은 무엇보다도 정신성의 현대화이다. 역사의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불교문화, 유교문화 그리고 고유한 우리 전통미술문화에 대한 깊고 애정어린 이해없이 전통의 현대화 작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겉모습이나 단순한 문양의 변형이나 응용이 전통의 현대화는 아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산이나 들의 형상을 씨줄로, 우리 지역의 미술문화를 날줄로 엮어 지구촌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해내야 한다.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7호(2010) 54–57쪽 · 원본 PDF 5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