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신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고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전시회를 보고
+ 이승훈 (전북회화회 회원, 군산대성중학교)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로댕이 작품 113점의 조각과 42점의 드로잉 수채화 그림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되었다. 파리까지 가지 않고서도 가까이서 만난다는 것에 기다림이 싹트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고온에 여름은 더한층 뜨거웠다. 그래도 '로댕' 을 생각하면서 보낸다는 것이 즐거웠다. 10시 10분쯤 도착 했는데 입장하는 줄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10시 20분 즈음 입장하자 곧 도슨트의 설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초등생 위주로 설명이 있었다. 청동시대, 지옥문, 칼레의 시민, 사랑으로 빚은 조각, 로댕 작업실 엿보기, 춤-생동하는 인체, 까미유 끌로델, 알마관 개인전, 공공기념물(발자크와 빅토르 위고) 순으로 전시되었다.
처음 들어서 가장 눈에 강하게 온 것은 청동시대 작품이다. 청년의 모습이 기가 막히게 청년답다는 것이다. 그 전처럼 매끈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힘과 움직이는 근육질을 잘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화보집에서 보는 거랑 다른 점이 이 느낌이다. 거의 같은 크기로 서있는 미남자, 요즘 말로 아이돌이다. 시골뜨기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신의 손' 은 이번 전시의 가장 걸작이다.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험가로 가장 비싼 조각품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외부로 처음 반출된 작품이기도 했다. 그 외출, 처음 간 곳이 서울이다. 이번 전시 제목도 '신의 손-로댕' 전임을 알 수 있다. 중의적인 발상으로 보면 재미있다. 로댕이 신의 손이라는 것이다. 나의 손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나니(성경 이사야 66:2) 이 글귀와 함께 다가온 한 손의 투명함, 그 속에 아담과 이브가 엉키어 태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있다. 로댕의 '성당' 이라는 작품은 볼 수 없다. 기도하는 인간의 손이 모아 성당을 세운 것 같은 모습의 작품도 이번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해본다. 명성을 얻기 전 로댕은 고독했다. 명성을 얻은 후 그는 더욱 고독해졌다. 릴케가 한 말이다.
그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 만큼이나 고독하다. 이번 한국에 온 작품은 점토를 석고로 뜬 유일한 원작이다. 이 기본 틀로 주조공들이 12개까지 에디션을 하여 진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한국의 로댕 미술관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소장 하고 있다. 지옥문, 칼레의 시민 등도 여러 곳에서 소장한다.
복제 할 땐 기준 점과 숫자를 기록한다. '입맞춤' 에는 수없이 많은 십자문의 점이 찍혀있다. 숫자는 로댕 박물관에서 매긴 작품 고유의 번호이다. 숫자 앞에 s는 조각, d는 데생, ph는 사진을 의미한다고 한다.
로댕은 1840년 파리 경시청 하급관리였던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로댕은 소설가 에밀 졸라,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소설가 토마스 하디, 미술가 끌로드 모네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리고 로댕은 77번째 생일을 지낸 1917년 11월 17일 고통 없이 영원히 잠들었다.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방도 준비 되었다. 직접 클로델이 조각한 로댕의 초상은 인상 깊었다. 클로델이 자기의 작품을 부숴버릴 때도 살아 남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 클로델의 초상화가 보인다.
그들은 다시 현세에 태어나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애원하는 여인' 조각상은 영원성을 상징해 주는 걸까?
로댕은 인생의 반려자 로즈 뵈레와 24살에 만나지만 로댕의 곁에서 모델 혹은 조력자로, 연인으로 자신의 열정을 바쳤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과 함께 지냈다. 까미유가 19살, 로댕이 43살이었던 1883년 그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당시의 로댕은 유명한 조각가였고, 그 즈음 '지옥의 문' 을 창작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자 마자 까미유의 내면에 숨겨진 열정을 한 눈에 알아 봤고 로댕은 그녀에게 몇몇 지옥의 여인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도 하고, 몇몇 사람들의 손과 발 등을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한때는 클로델이 로댕을 잊으려고 작곡가인 드뷔시를 만났었는데 곧 헤어졌다. 드뷔시는 인상파음악을 열었다. 드뷔시는 섬세한 음악을 작곡하지만 여성을 멍들게 한 사람이기도 했다. 로댕도 여인에게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이지만 드뷔시도 애인을 두고도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아내를 두고 애인과 여행가는 등 무책임하여 두 명이나 여인이 자살하기도 하는 '나쁜 남자' 들이었다.
우리 미술교과서에서 자주 보는 작품 '꽃 장식 모자를 쓴 소녀' (로댕미술관, 1865)는 오지 안했다. 그 작품은 화려한 꽃 장식에 비하여 얼굴은 수척하고 슬퍼 보이는 소녀얼굴이 안보였다. 사실 그 작품이 로댕의 부인인 '마리 로즈 뵈레' 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 소녀가 첫사랑인 것이다. 까미유 끌로델을 만나기전 소녀, 그가 로댕의 아이를 낳아주었고 클로델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로댕 주변에서 로댕을 지켰으며 56년 만에 혼인을 하고 유일한 법적 여자가 된 셈이다.
로댕이 클로델에게 보낸 편지는 무어란 말인가? "내 사랑하는 까미유, 미의 여신이여, 속삭이는 꽃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매일 그대를 볼 수 없다면 난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야"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면 곤란한 관계입니다.
그들은 차가운 돌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입맞춤, 영원한 우상, 탐욕과 욕정 등…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이 있어서 세기적인 작품을 잉태했고, 그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회고전을 찾는 것이리라.
드로잉 수채그림은 1만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그는 "생명이란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고 신성함이며 꼭 붙잡아야 할 순간"이라고 할 만큼 역동적인 인체모습에 공을 들였다. 애로틱 하면서 역동성은 조각에 잘 나타나 있다. '니진스키' 와 '이사도라 던컨' 등의 무용수 춤동작을 그대로 잘 나타내고 있다. '신들의 전령, 아이리스' 나 '춤동작' 의 청동 조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전통 춤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관능미와 역동성에 심취한 결과인 듯하다. 1906년 캄보디아 무용단의 이국적인 손놀림과 율동미는 그를 매혹해 했다. 캄보디아 무용수를 따라 마르세유까지 가서 그림을 그렸고 그 작품 등은 팔지 않고 간직 했다고 한다. 입맞춤의 모티브는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불륜이었다나. 그런데 시대의 역작이 되었다.
이번 전시된 '지옥문' 과 '칼레의 시민' 은 완성품을 만들기 전의 축소 작품이다. 로댕의 작업과정이 석고로 뜨고 주조공들이 작업을 하는 것인데, 지옥문은 원형은 완성하고 주조로 만드는 것만을 다 못보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6m가 넘는 작품이라 전시가 되기도 어렵다. 대형 작품은 15점인데, 아담, 이브, 웅크린 여인, 생각하는 사람, 기둥 위의 걷는 사람, 청동시대, 세례자 요한, 영원한 우상 등이다.
1900년 파리에서 국제 박람회가 열리자 인근에 있는 알마 광장에 별도의 전시장을 짓고 168점의 조각, 데생, 사진을 공개했다. 건축 구조, 구성, 배치, 조명, 작품 진열까지 연출했다. 그 곳에 있던 작품인 '기둥위의 걷는 사람' 을 이번 전시에서 만난 것이다. 3m에 이르는 기둥위에 올려 진 작품이다. 그 당시 1900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시립미술관 정원에 피어 있는 라벤더 향기를 즐기면서 광화문으로 향했다.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7호(2010) 62–65쪽 · 원본 PDF 6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