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야, 복순아 집 잘 봐!
똘이야, 복순아 집 잘 봐!
하남성 낙양, 정주여행을 다녀와서.....
이진숙 (전북회화회 회원)
'이곳 정주는 주방이 없는 아파트가 가장 인기가 높답니다' 가이드의 이 한마디에 버스속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은 '와야'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우리의 3박4일 여행이 시작 되었다.
새벽 1시부터 준비를 하고 복순이와 똘이에게 집 잘 보라는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섰다.
공항에 오면 항상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이런 설레임과 기대를 뒤로 한 채 비행기를 탔는데 어느새 정주 공항이란다. 중국의 중심이라는 하남성 정주, 이곳 하남성 박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많은 유적에게 눈 도장만 찍고 '성주풀이' 의 가사에 나오는 낙양으로 향했다.
중국의 3대 석굴 대동운강석굴, 돈황의 막고굴석굴, 낙양의 용문석굴이 있다는데 그중 하나인 용문석굴을 본다는 일정표를 받았을 때부터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과연 대단했다.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땅 덩어리도 작고 사람 수도 적고 어느 것 하나 중국에 비교할 수가 없는 나라에 그래도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데.......가이드가 한국관광을 다녀왔는데 전남 담양에서 먹은 음식 밖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말에 화가 났었다. 용문 석굴 앞에서 왜 자꾸만 석굴암이 눈앞에 아른 거릴까.
석굴에 있는 부처님상만 15만 종류가 있고, 크기는 17.14m에서 2㎝까지 그리고 그중 장관인 '노사나대불' 앞에서는 감동 그 자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크기도 물론이려니와 섬세한 솜씨 또한 대단했다. 우리의 석굴암에서 신비감을 느꼈다면, 이곳 용문 석굴에서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마력을 느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지는 불상들, 손가락하나보다 작은 수많은 부조 앞에 옛사람들의 불심과 권력자의 권세를 보는 듯했다.
또한 한 위정자의 잘못된 생각이 후대인들을 얼마나 가슴 아프게 할 수 있는지도 느꼈다. 중국 문화 혁명 때 대부분의 문화유적들이 파괴된 흔적을 이곳 용문석굴에서도 목격 할 수가 있었다. 손가락 크기의 불상 마져도 파괴한 그들의 심리는 어떤 상태였을까. 하긴 우리네 현실도 그에 못지않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마구 파헤쳐지고 파괴되고 있으니.....
그런 분노의 마음을 뒤로하고 그 앞에 흐르는 황하의 줄기라는 이하강 다리를 건너서 중국이 유명한 시인 백거이의 묘가 있는 향산사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서 다시 한번 용문석굴의 웅장함에 머리를 숙이고 향산사의 높은 계단을 올랐다. 중국의 절 어디를 가든 향불의 매캐한 냄새와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그들의 숙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백거이와 아홉 사람의 부조가 새겨진 사당을 뒤로하고 편백나무가 좌우로 늘어선 길을 따라 여유있게 산책을 하는 사이사이에 그의 시와 제자들의 시가 새겨진 돌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싱가포르 백씨와 한국의 백씨들이 만든 기념비도 있다.
영화로도 유명한 '용문객잔' 에서 정신없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아직도 여행문화가 선진화 되지 않은 우리나라 여행의 전형인 버스오래타기를 하고 소림사로 향했다. 그래도 영화로만 보아 온 소림사가 사뭇 궁금했었는데 기대가 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도 버스는 좀처럼 속도를 내질 않는다. 가이드 왈 이곳은 500m마다 무인속도계가 달려 있단다. 그러니 어느 간 큰 기사가 과속을 하겠는가.
소림사에 도착하여 그 유명한 소림무술 쇼를 관람하기위한 줄서기와 입장하기는 가히 지옥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서도 중국인들의 상업적인 기질은 여지없이 발휘된다. 공연 시작전과 끝난 후의 사진촬영으로 또 다시 짭잘한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영화 속 소림무술을 직접 보니 또 다른 재미도 있었다. 불에 탄 소림사를 영화를 찍기 위한 셋트 장으로 만든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설명을 뒤로 한 채 숭산케이블카를 타러 가는데 탑림이라는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탑이 보인다. 우리네 사리탑과는 또 다른 양식인 모전탑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특이 했다.
숭산 케이블카를 타고 그 높디높은 숭산의 기암절벽을 산책(?)하러 올라갔다. 몇 해 전 구경 갔던 장가계가 생각난다. 중국에는 문화유산도 물론 많지만 천혜의 자연자원도 많아서 무궁무진한 관광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러웠다. 오는 길에 비구니스님들이 운영한다는 음식점에 들려 모처럼 내 취향에 맞는 음식을 실컷 먹고 평소 갖고 싶었던 염주를 사서 남편의 손목과 내 손목에 하나씩 나누어 걸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행의 백미는 역시 발 맛사지, 우리 일행도 어김없이 발 맛사지shop에 들려 꽃같이 예쁜 처녀 총각들의 서비스를 받고 숙소에 왔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또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그들이 '그랜드캐년' 의 동생 격이라고 자랑하는 초락시에 있는 운대산을 보기위해서....가는 도중 황하다리를 건넌다는 말에 잔뜩 기대를 했다. 세계에서 네 번째 긴강이라는데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카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에게게 이것이 황하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실인 즉 몇 년 전에 황하에 댐을 건설했단다. 그래서 강뚝이 줄어 그들 말로는 실개천이 되어버렸단다. 물은 여전히 황톳물이다. 물론 필요에 의한 개발이었겠지만 참으로 섭섭했다.
여행 내내 그곳 운전자들의 운전 솜씨에 경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앙선 침범도 역주행하는 오토바이를 보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한번도 접촉사고를 보지 못했다는 것과 교통경찰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친다는 것이다. 구경을 잘 하고싶다는 욕심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것을 후회하곤 했었다. 아슬아슬한 운전 끝에 드디어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곳 사람들은 모두 겨울 외투를 입었다. 미쳐 겨울 옷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 일행은 가지고 온 옷들을 모두 껴입고 입장권을 받아 입장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오른손 인지의 지문을 찍는다. 셔틀버스를 타고 '홍석협' 이라는 바위가 붉은 색으로 되어있는 협곡에 입장하는데 또 다시 지문을 찍는다. 깎아 지른 듯한 계단을 내려서 떠밀리다시피 내려간 곳에는 가는곳마다 붉은 바위사이에 쪽빛 물이 흐르고 또 다시 폭포가 되고 여기저기 안개사이사이에 바위산이 보인다. 좁은 길 군데군데 휴지통과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맑고 깨끗한 비경을 즐겁게 감상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담배를 피우는 중국인 덕(?)에 이맛살이 구겨지기도 했다.
족히 6km는 됨직한 그곳을 둘러보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와 점심을 먹은 후 그곳 식당에서 후식으로 주는 홍시 맛에 잠시 집에 있는 감나무에 잘 익어가고 있을 감 생각이 났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셔틀버스에 올라타서 '담폭협' 이라는 곳에 내렸다. 이곳에서도 입장하는데 예외 없이 지문을 찍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지문을 찍는지.....
이곳은 세 번 걸음에 천(泉)이 하나, 다섯 번 걸음에 瀑布(폭포)가 하나, 열 번 걸음에 담(潭)이 하나있다고 소개가 되어 있다.
중국인들의 높은 자존심은 간판과 안내 책자에도 나타나 있다.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안내책에 오로지 그들의 글만 써 있고 어디에도 영문 소개 조차 없었다. 몇 년 전에 다녀온 루브르 박물관에 한글 안내 책자가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었는데..... 그러나 만폭협에 와보니 한글 안내문이 있는 것이다. 놀라서 보니 出口(출구) 入口(입구) 이렇게 써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경치를 감상하는 내내 부러움과 시샘을 가지면서도 아기자기한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했을까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 했다.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들른 쇼핑센터에서 그가 나를 부르더니 지갑과 작은핸드백을 보이며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다. 당황스런 마음이 들었는데 생각 해보니 어제가 우리가 결혼 한지 만 3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행들의 부러움 속에 그에게 빨강색 장지갑을 선물로 받았다. 여행 중에 선물을 받으니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1923년 2월7일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기리기 위해 새워 놓은 2.7기념탑을 보았다. 중국 전통양식으로 새운 쌍둥이 탑이다. 그곳에서 5만여 노동자들이 죽어다니 어느 시대에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드디어 정주공항에 도착했다. 가지온 짐들을 부치고 면세구역에 들어왔다. 여행지마다 찻잔을 모으는 나는 여기에서도 예쁜 찻주전자와 찻잔을 골라 값을 흥정(?)하였다. 공항 면세점에서도 흥정이 통하는 것이 놀랍다. 마음에 드는 값에 또 하나의 찻잔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비행기에 올라 지나온 여정을 잠시 생각하는 사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시간 보다 더 많은 시간 버스를 타고 전주에 내려와 오랜만에 뚝배기에 먹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일행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집에 오니 똘이와 복순이가 납작 업드려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한다. 전주에 오는 버스 속에서 다른 일행들은 집에 있는 자녀들에게 마중 나오라는 전화에 서운하고 부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집에 오니 이녀석들이 반긴다.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고 챙기면서 다녀온 이번 여행,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하며 건강하게 더 많은 곳을 다녔으면 좋겠다.
원 게재: 나의여행기 / 회화지 17호(2010) 72–75쪽 · 원본 PDF 7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