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水墨)의 창(窓) 정미현 개인전
수묵(水墨)의 창(窓)
정미현 개인전
2011. 6. 7~6. 12 ● 교동아트스튜디오



기(氣)와 행위의 회화
정미현의 회화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재료가 주는 특유의 한국적 질감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검은 먹을 사용하여 한지 위에 붓 가는 대로 그려낸 듯 한, 그림들은 전통적 개념의 수묵화보다는 현대적 개념의 순수추상과 물파(物波)양식의 서체추상에 가깝다.

동양고유의 필묵양식의 하나인 문인화의 세 가지 핵심적 요소에 해당하는 간·결·운(簡潔韻)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여백이 많은 화폭은 공명 현상과도 같은 에너지의 강한 울림을 느끼게 한다.
작품에서 필묵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직관적 일회성에 의한 다양성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과 점획과 획선에 발묵법과 파묵법이 겹쳐 있다는 점이다.
천의 거친 표면에 먹을 주조로 배어든, 거의 반 추상에 가까운 다양한 형상들을 격렬한 붓놀림과 수묵의 무게감, 대담하고 현대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교착된 갈등 지점들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그녀의 화면이 극도의 긴장 속에서 평온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일회적 판화라 할 모노 타입과도 관계가 있다. 먹이 천에 스며드는 것은 자연과 세월의 무게가 화면에 거울처럼 배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자연과 세월 속에 녹아 있는 방증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그토록 자연스럽다. 이러한 직관적 표현수단에 담은 작업 내용은 형상의 유비를 통한 인생 태도, 심미적 경계, 감정의 기복 등을 전달하는 것이다. 대상의 모습이 무엇을 닮았거나 무엇을 연상시키거나 무엇을 유추하게 하는 형상사유는 인류의 가장 기초적인 감정 교류 수단이기 때문이다.
필획의 리듬은 점과 선이 만들어내는 조화 속에서 때로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자유분방한 필치로 먹의 흐름을 꾸며낸다. 어떤 때는 사람이나 바위 혹은 새, 해 같은 이미지들과 어울려 흐름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모두 완벽한 형태를 갖추거나 구체적 이미지들을 불러 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풍경 모습들은 외적 시선이 아니라 내적 시선이라 불릴 만하다.
근작들에서는 대상의 이미지를 떠올린 직후에 즉발 적으로 화면에 옮기는 이미지 연상과 추적에 의한 이미지 회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따라서 사물의 골격이 중시되고 매재 자체의 재질 및 성격과 묵과 천 사이의 반응 효과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회화는 기(氣)의 회화이자 행위의 회화이다.
선(仙)적인 몽환의 세계와 선(禪)적인 고고한 정신세계를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동양화의 세계가 구축해 온 미의 세계를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운필을 사용하여 작가의 고유한 미감을 드러내며 동향화의 미덕이 전통의 계승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라는 작가의 활동 배경이 주는 독특한 미적 감각과 사고, 그리고 작가 특유의 은유의 미학을 동양화라는 틀에 접목시킨 결과이다.
그리려는 궁극적인 대상은 결과적으로 그 대상의 외피적 모습이 아닌 대상을 통해 그려내는 정미현 가슴에 담긴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무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원리로 드러나는 세계이다. ■
김선태(미술평론가)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18호(2011) 32–33쪽 · 원본 PDF 3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