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화회→회화지 아카이브→18호→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
회화이론

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

김선태(예원예술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아시아만의 정체성이란 단지 사라지지 않는 가공의 공동체로 부활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이 시대의 헤테로피아(헤테로피아: 미셀 푸코의 개념으로, 호모토피아와 상반된 것, 즉 호모토피아가 유사성에 의거한 세계라면 헤테로피아는 서로 무관하고 무질서 해 보이는 세계이다)로 남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한 범위에서 아시아 미술은 살아있고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영위해 갈 것이다.

김선태 (예원예술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오늘의 아시아 미술은 그동안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몽골 등 아시아 주요 국가 미술의 지역적 정체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특히 현대의 복합문화주의, 다원주의의 흐름 속에서 미술 혼성, 장르 와해 현상이 보편화 되어있는 장르의 독자성, 고유성을 아시아권에서 어떻게 이어 나가고 풀어 나가고 있는지 살펴보자면 아시아 미술에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서구적인 미술흐름과는 분명히 또 아시아 미술만의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현대 아시안 예술가들은 현대 미술교육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미술을 모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겪어왔고 반대로 유럽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동양예술과 정신으로 부터 영향을 받아 왔다.

서구인들의 마음에 영원한 동경과 그들 문명의 탈출구이자 해결점으로 남아있는 동양정신의 정수는 어떻게 현대 아시안 작가의 예술에서 꽃 피울 수 있는 것일까. 현재 아시아의 미술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아시아의 전통적 개념과 충돌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면서 본연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이 경제발전과 서구화로 많은 혼동을 겪고 있으나 글로벌 현지화로 현명하게 적응해야 한다. 그것은 근대의 서세동점 이후 멀게는 인도에서부터 가깝게는 일본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제국이 다 같이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흔에 기인한다. 지배와 종속이라는 관계에서 파생된 회복하기 힘든 역사적 트라우마가 아시아인들에게는 남아있다. 오늘날 흔히 논의되는 글로벌리즘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역적 특수성이 곧 세계적 보편성으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또한 맞는 말 같지만 이처럼 문화적 불균형이 심한 상태에서는 그 실현이 의문시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문화예술의 교류는 무엇보다 균등한 호혜주의의 입장에서 실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의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중국의 약진이다. 중국현대미술이 왜 최근에 와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설은 없는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요인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수묵 작품 (아시아 현대미술)
수묵 작품 (아시아 현대미술)
인물 군상 벽화풍 작품
인물 군상 벽화풍 작품

중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미술품의 가격이 뛰어 오르는 것은 경제순환의 전형적인 패턴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중국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은 어찌 보면 중국 당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오히려 유발함으로서 서방세계의 관심을 끌지 않았나 하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기발한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서방세계에 널리 전파한 유능한 에이전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중국미술의 저력과 잠재력에는 높은 점수를 얻지만,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짧지만 독창성이 강하고, 에너지와 힘이 있다는 시각과 작품의 밀도보다 유행에 휩쓸려 터무니없는 대접을 받는 건 아닌지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대국이라 엄청난 작가 군에서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좋은 작품의 작가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동안 작품이 중국의 변화되는 사회상을 팝아트적인 요소로 담아내는 작품, 냉소적인 사실주의 작품이 주류였는데, 최근 중국의 정체성 탐구, 혹은 내면의 세계를 다루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출품된 작품 중에는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장샤오강, 웨민 준 같은 작가들의 팝 아트적이거나 냉소적인 작품보다는 (Lin Ruoxi)과 (Bai Ming)의 작품에서 중국 현대수묵화를 맞볼 수 있으며, 특히 서구 유화 인물화와 느낌이 다른 중국 유화 인물화의 참모습을 (Liu Yingwu)의 인물화를 통해 감상 할 수 있다. 근현대 중국미술은 장르를 막론하고 사실주의 중심으로서 문화대혁명과 함께 봉쇄된 죽의 장막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반영을 위한 인체위주의 소재가 주류를 이루어왔기 때문에 중국 유화 인물 화가들의 기량과 솜씨는 중국 전통기예의 솜씨와 견주어 평가되어 왔다.

불상 조각
불상 조각

중국과 같은 신흥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뜨는 이유는 자국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며 서구 중심적인 미술시장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미술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u>인도네시아의 젊은 작가들의 급성장세가 돋보이는데</u> 이들은 인도네시아 특유의 자연환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적인 색채만 강하지는 않다. 인도네시아는 섬나라로 일찍 문호를 개방했고 서양식 미술 실기교육이 일찍 이뤄졌다. 인도네시아 미술은 이러한 서양식 회화논리를 기초로 하면서 자신들만의 회화적 전통을 접목하기에 서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미술의 특징 중 하나로 강렬한 색감을 꼽을 수 있다. 본래 인도네시아가 제2의 아마존이라고 불릴 만큼 풍부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다 보니 작품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그러나 이번에 출품된 (Patra Aditia) 작가의 작품은 종이에 연필로 소묘하듯이 표현된 형태는 얼핏 보면 알아보기 어렵다. 이렇듯 여러 가지 기물이 조합된 추상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보는 이의 판타지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홍콩 반환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식민 지배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당사자인 중국의 변화는 물론 아시아 전체에 많은 파장을 가져왔다. 홍콩은 거의 150년 동안 영국과 중국 사이에서 두개의 삶을 가지고 있던 도시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과거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개인적인 역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개인적인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서 현재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열망하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만드는데 여전히 중요하다. 홍콩이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간 지 거의 수년이 흘렀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가들의 작품에서 홍콩의 불확실한 미래와 애매한 과거, 그전에 했던 약속과 지키지 못한 약속, 별로 중국적이지 못한 현실과 완벽한 중국인처럼 '가공된' 현실 사이의 모호함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미술계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엄격한 체계로 구성된 협회 중심의 미술가 회원들이 보수적 성격의 전시회를 하는 단체인데, 전통적인 일본 양식 회화와 인상주의와 야수파에 영향 받은 서양 회화의 아카데믹한 양식을 말한다. 다른 쪽은 근래의 국제적인 경향들과 유사성을 보이는 다양한 현대 미술가들이다. 이는 모더니즘 미술 제도가 이식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양상의 구조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재일교포인 이우환의 회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80년대 초에 등장한 모노화(단색화)의 전통을 유지했던 반면에 80년대 후반에 떠오르기 시작한 젊은 작가들은 미디어를 사용하여 현대 사회의 정보와 기호를 다루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품된 일본 작가들의 작업은 전통과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색채위주의 현대 일본의 혼성적이고 경계가 허물어진 문화적 현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의 미술 시류는 크게 세 개의 시대로 분류된다. 1940~50년대 인도차이나 미술학교로부터 배출된 작가들이 활동하던 현대 미술 시대, 이후 80년대까지 서구를 배척하고 민족주의를 주창했던 사회주의 현실 미술시대, 그리고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도이모이 시대가 그것이다. 사회주의 시대에는 국가에 대한 찬양이나 당의 지침에 따른 공동 작업들이 주를 이뤄, 작가의 자유로운 사상이 발현된 작품이 드물었다. 그래서 컬렉터들은 현대미술 1세대와, 작가주의가 강한 개방 이후 작품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베트남 수도 하노이 거리. 거리마다 세워진 대형 입간판은 인민의 눈높이에 걸 맞는 착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입간판만 보면 베트남은 영락없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 이곳저곳에 자리한 갤러리를 들여다보면 난해한 추상화에서부터 과감한 누드화에 이르기까지, 현대서구예술의 모든 시도를 담은 자유로운 그림들이 가득하다.

최근 들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예술이라기보다 수공예의 성격에 가까웠던 중세의 전통 나전칠기나 옻칠 동판화 등의 전통공예술이 현대 베트남 화가들의 캔버스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옻칠 공예에서 비롯된 〈썬마이 회화〉는 서양 유화에서 실현할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는 오직 베트남에서만 실험되고 있는 회화로, 이번에 출품된 (Doan Thuy Hanh)의 작품이 썬마이 회화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여기에 반하여 (Pham Huy Thong)작가의 작품은 민족주의를 주창했던 사회주의 미술에 속하는 프로파간다적인 요소가 강하다.

오랫동안 서양의 지적 전통을 유지해온 고정된 실재를 요구하는 귀납적 이론 또는 실용적 원칙은 불필요한 과제일 뿐이다. 물론 그것에 대해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또는 동양적인 정신과 서양 기술이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자기 방어의 논리를 삼으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세계화는 이 지구의 어느 부분도 지정학적 특혜를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의 압축과 함께 공간적인 장소는 의미를 잃었다.

아시아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각 나라의 전통적인 미술의 흐름 속에서 새로움과 변화를 꾀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아시아의 현대미술은 그 나라만의 특징을 지니며 발전하게 된다. 글로벌시대라고 하더라도 각 나라의 미술은 그 나라의 사회적 상황, 그 나라의 정서 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시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문학가나 미술가들이 자주 자신의 예술적 테마로 그러한 종류의 독특한 정체성을 즐기는 것만이 진실일 수 있다.

<u>아시아만의 정체성이란</u> 단지 사라지지 않는 가공의 공동체로 부활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이 시대의 헤테로피아(헤테로피아: 미셀 푸코의 개념으로, 호모토피아와 상반된 것, 즉 호모토피아가 유사성에 의거한 세계라면 헤테로피아는 서로 무관하고 무질서 해 보이는 세계이다)로 남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한 범위에서 아시아 미술은 살아있고 자신을 삶을 끊임없이 영위해 갈 것이다.◼

전투기와 수레가 결합된 초현실 회화 (서명 HUNG 2.2004)
전투기와 수레가 결합된 초현실 회화 (서명 HUNG 2.2004)
흘러내리는 물감과 문자가 있는 작품
흘러내리는 물감과 문자가 있는 작품
지면 보기 · 원본 4쪽PDF에서 열기 ↗
지면 1지면 2지면 3지면 4

원 게재: 회화이론 / 회화지 18호(2011) 48–51쪽 · 원본 PDF 48쪽 ↗

이 지면의 도판

수묵 작품 (아시아 현대미술)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수묵 작품 (아시아 현대미술)
인물 군상 벽화풍 작품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인물 군상 벽화풍 작품
불상 조각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불상 조각
전투기와 수레가 결합된 초현실 회화 (서명 HUNG 2.2004)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전투기와 수레가 결합된 초현실 회화 (서명 HUNG 2.2004)
흘러내리는 물감과 문자가 있는 작품아시아 미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그 가능성흘러내리는 물감과 문자가 있는 작품

같은 호의 글

18호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