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화회→회화지 아카이브→18호→지난 여름은 행복했었네 — 스페인 남부와 에딘버러를 다녀와서…
나의 여행기

지난 여름은 행복했었네 — 스페인 남부와 에딘버러를 다녀와서…

이진숙 (전북회화회 회원)

한달 여만에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꿈을 꾼 것 같아….'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그러게 나도 이게 꿈인 것 같아….'라고 그가 대꾸한다.

13시간여만에 도착한 에딘버러 공항에서 만난 아들녀석 첫마디가 '엄마 왜 이렇게 폭삭 늙었버렸어?' 한다. 나도 4년 여만에 보는 아들내외가 낯설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에서 만난 피카소. 유럽의 발코니가 있는 해변휴양지 네르하. 알함브라궁에서 무어인들이 잠에서 막 깬 듯 걸어 나올 것 만 같은 그라나다.

협곡에 40여년에 걸쳐 완공되었다는 누에보다리를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있는 론다.

게르니카에 넋을 뺏긴 소피아왕립미술관이 있는 마드리드.

소코트랜이라는 꼬마기차를 타고 돌아본 아주 예쁜 도시 톨레도.

이번에 다녀온 스페인 남부 지방들이다.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한 달 여의 여행을 위해 잠을 청했다.

글라스고 공항에서 말라가 행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여 만에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에 도착하였다.

피카소생가와 피카소박물관을 보고 '외팔이성당'을 관람했다. 종탑을 두 개 세우려 했는데 헌금이 모자라 한 개 만 세워서 붙여진 별명이란다.

금강산도 식후경, 천정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하몽이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먹어본 하몽 맛을 잊을 수 가 없었는데 또 다시 내 입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도 연신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하몽 맛에 빠져있다. 이 날부터 스페인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저녁에는 꼭 하몽과 와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유럽의 발코니가 있다는 네르하는 바닷물 빛이 비취가 녹아있는 듯이 맑고 투명하여 황홀하다. 뜨거운 태양아래 해변에 자유분방하게 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마냥 부러운 시선만 보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해 오후 6시쯤 '프리힐리아나' 라고 불리는 하얀 마을에 갔다. 오후 6시라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한낮 같은 태양이 내리쬔다.

백여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마을은 가파른 언덕에 온통 하얀색으로 만들어졌다. 백여 호 정도되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단다. 내려오는 길에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진 탁자와 의자가 있는 바에 들려 시원한 상그리아로 목을 축였다.

다음 목적지는 이번 스페인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고 설레이는 곳 그라나다이다. 스페인 도로는 사거리대신 로터리가 있어 차를 타면 심하게 흔들거리며 도는 바람에 이곳에 도착 할 때까지 차멀미에 시달렸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탔는데 수다스런 택시기사가 숙소까지 오는 내내 그라나다축제, 알함브라맥주, 축구, 투우에 대하여 열 번을 토한다. 정열의 나라답게 그곳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매우 친절하다. 이곳 그라나다도 여느 유럽도시와 마찬가지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있다. 그리고 좁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골목, 그런 곳을 요리저리 잘도 빠져 나가는 택시들, 이런 것들이 내가 다녀 본 몇 안되는 유럽 도시들의 공통점 인 것 같다.

이곳 스페인은 아직도 '씨에스타' 가 있다. 오후 2시~5시까지는 가게도 대부분 문을 닫고 거리에는 관광객들만 돌아 다닐 뿐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무슨 원시적인 일인가하고 생각했었다. 몇 년 전 스페인 북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살인적인 더위는 지금도 이곳에 씨에스타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우리도 오후 2시에는 숙소에 들어가 낮잠을 한잠씩 자고 나오곤 했다. 이날도 낮잠을 즐기고 늦은 오후에 플라맹고 공연을 보기위해 나섰다.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사람들 모두가 길거리로 나온 것처럼 모든 거리가 인산인해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오후 9시30분에 시작된다던 공연은 10시가 되어도 감감 무소식, 듣던대로 시간은 그냥 형식이다. 어기기가 일쑤란다. 목이 빠지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기타리스트의 애잔하고도 강렬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수가 나와 마치 우리네 창과 같은 노래를부른다. 알아듣진 못해도 그 목소리와 선율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한참후에 드디어 무용수가 등장, 앗뿔싸! 남자무용수….우린 흔히 플라맹고하면 여자무용수를 생각하는데, 빨강위 아래 바지슈트에 검정와이셔츠를 입고 춤 추는데 격렬하고 정렬적이며, 우렁차고 색시하며.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춤사위는 시간이 갈 수록 더욱빨라지고 더 정열적이고….관객들도 모두 '올~레' 하면 추임새를 하고…..플라맹고는 연주자, 가수, 무용수, 모두를 플라맹고라고 한단다. 무용수의 발놀림에 맞추어 연주가 계속된다. 관객의 박수가 나오면 공연은 더 이어지고 완전혼연일체가 된, 흥분된, 그리고 아주 색다른 경혐이었다. 숙소로 걸어오는 내내 공연의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드디어 알함브라궁에 가는 날이다.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행했다. 구도심은 도로가 좁아 모두가 일방통행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요리조리 잘도 달린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몇 년전 루브르박물관에서 길고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책으로만 보고 음악으로만 듣던 알함브라궁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들어가는 초입부터 가슴은 쿵쾅거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나무들, 곳곳에서 뿜어대는 분수와 연못, 형형색색의 꽃들, 어느화가가 그린들 이렇게 아름다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13세기 전반에 9세기에 있었던 알카사바(성채)를 확장하면서 착수한 알함브라 궁전의 조경은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성채에는 24개의 탑과 군인들의 숙사, 창고, 터널. 목욕탕 등이 있다.

벨라탑에서는 알바이신지구, 샤크로몬테언덕, 그라나다 중심부, 시에라 에바다 산맥까지 볼 수가 있어 시야가 확 트인다. 거대한 연못과 그라나다 왕국 이슬람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일대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져있다. 안타깝게도 가장 아름다운 '사자의 중정' 은 복원 중이어서 완벽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곳에 옮겨놓은 12개의 사자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알함브라궁은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라는 소설이 발표되면서 카톨릭스페인 부부왕에 의해 패배한 이슬람왕국의 문화가 복원되게 되었다. 이 궁전은 지상으로부터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놀랍게도 사방에 연못과 수로가 잘 되어있다. 인도의 타지마할을 연상하게 하는 건물도 있었다. 무굴제국의 부귀와 영화를 뒤로 하고 알함브라궁을 나왔다.

알함브라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그리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 아라베스크 문양등이 내내 눈앞에 아른 아른 하다.

늦은 오후에 다시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노을이 아름답다는 '성 니콜라스광장' 에 올라갔다. 노을에 비친 환상적인 알함브라를 마음에 넣고 하몽과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 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협곡위에 세워진 도시 론다에 갔다.

인구가 3만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도시인데 많은 관광객이 '누에보 다리' 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란다.

다리 위에서 본 협곡은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다. 협곡 위에 세워진 도시 답게 어디를 가나 절경이다.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도 있다. 투우는 스페인의 오래 된 문화이니 이방인인 내가 탓 할 바는 아니지만 투우장에 끌려온 소가 수많은 관중의 함성에 얼마나 기가 질렸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우리는 또 한번의 플라맹고 공연을 보기 위해 세비아행 버스를 탔다. 가는 내내 도로변에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밭, 밀밭, 해바라기 밭등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보며 세비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숨도 쉴 수가 없는 더위가 엄습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세비아는 한 여름에는 섭씨54도까지 오른단다. 그 날은 섭씨 39도였다. 스페인 광장에 갔으나 더위 때문에 사진 몇 장 찍고 이내 숙소로 돌아와 씨에스타를 즐겼다. 아마 이곳 사람들은 씨에스타가 없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늦은 밤에 시작되는 플라맹고를 보기위해 바에 갔다. 그라나다의 대공연장과는 달리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5~6명의 무용수가 번갈아 가며 나와 그들의 숨소리, 발소리까지 들으며 공연을 보니 나도 덩달아 흥분이 된다. 한 시간 이상 되는 시간 내내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아름답고 격정적이며 애잔하기까지 했다.

공연이 끝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도 길거리카페들은 발들여 놓을 틈도 없을 만큼 만원이다. 한 낮의 더위에 비하면 이곳의 밤은 무척 시원하고 활기가 있다.

<u>다음날 우리는 마드리드행 초고속 열차를 탔다.</u>

나는 듯이 마드리드 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탔는데 드디어 스페인의 진가를 맛보게 되었다. 분명 숙소가 역 근처라고 했는데 택시기사는 우리를 태우고 돌고, 돌고, 또 돌고는 길이 막혀 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내려 저기, 저기로 걸어가란다. 그것도 한낮에…..숙소에 도착하여 주인에게 말하니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숙소가 있단다.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바가지 택시요금에 우리가 걸린 것이다. 그 동안 스페인에서 받았던 친절함,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오는 내내 마드리드의 사기꾼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했었다. 떨떠름한 기분을 푸는데는 역시 먹는 것이 최고, 마드리드에 있는 시장을 찾아 전철을 탔다. 도착한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곳도 씨에스타를 즐기고 오후 5시에 다시 문을 열어 오후 8시면 시장이 문을 닫는단다. 이것저것 사고 한국인 가게에 들려 고추장도 사서 그날 저녁 맛있는 성찬을 즐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프라도미술관' 에 갔다. 소장품이 무려 8,000점이라는 말에 기가 질렸다. 중요한 작품들을 골라 보는데도 족히 6시간은 걸린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고야, 라파엘, 루벤스. 벨라스케스등의 작품들을 보고나니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저녁에는 '소피아왕립미술관' 에 갔다.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관람이라니 이곳 사람들은 참 복도 많다. 그곳은 소장품이 10,000점이 넘는단다. 나는 딱 '게르니카' 한 점만 보기로 마음먹었다. '게르니카' 앞에 족히 한 시간은 있었던 것 같다.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이곳은 개인 콜렉터들도 7~800점 정도는 소장하고 있다니 예술의 보고가 아닌가 싶다. 스페인은…….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톨레도' 라는 작고 예쁜 도시를 갔다. 소코트랜(꼬마기차)을 타고 약 40여분간 시가 전체를 둘러보고 파라도르에 갔다. (파라도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전지역에 있는 전망 좋은 높은 곳에 예쁜 호텔을 지어 그곳에서 커피와 술을 마시고 숙식도 하는 곳이란다.)톨레도 전체를 관망하면서 맛있는 커피와 시원한 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이곳 톨레도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 유산에 등재되어있는 곳이다. '엘그레코' 의 생가에 들려 그의 그림과 제자들의 그림도 감 상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스페인을 떠나기 전 우리는 레알마드리드 축구장에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이 있는 곳답게 많은 관광버스가 그곳 운동장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관광상품 아닌 것이 없다. 우리도 이렇게 유명한 축구팀, 야구팀, 농구팀이 있어 세계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맛있는 빠에야, 타파스, 그리고 그라나다맥주, 하몽과 와인 플라맹고, 프라도, 소피아미술관등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에딘버러에 도착하니 스페인의 더위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도……이곳 에딘버러는 맑은 날보다는 비오고 흐린날이, 더운 날보다는 춥고 습한 날이 많은 곳이란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내내 날씨에 따른 불편함이 없었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슬픈 역사를 지닌 스코틀랜드, 지금도 영연방에 속해있는 나라이다. 에딘버러는 인구 5~60만의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구시가지가 잘 보존 되어있고 해마다 8월이면 세계적인 '에딘버러축제' 가 한달 간 열리기도 한다.

아들내외는 오랫 만에 집에 도착하였다며 무척 좋아한다. 우리내외도 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라면과 밥, 그리고 단무지를 곁들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들내외의 그간의 활동내용을 듣고 작품사진도 보고 그간의 노력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깊은 잠을 잤다. 늦은 아침을 먹고 일요일마다 열린다는 중고 장터에 갔다. 'car boots sale' 이라고 한단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차이를 느꼈다. 우리가 흔히 쓰는 'car trunk'를 영국식으로는 ' car boots'라고 한단다. 어마어마하게 큰 지하주차장에 갖가지 중고품들이 가득하다. 보는 재미, 흥정하는 재미, 아주 싼 값에 옛날 귀한 물건까지 살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그런 다음 높은 언덕에 위치한 '에딘버러 성' 에 갔다. 스코틀랜드의 슬픈역사가 숨쉬고 있고 전쟁기념관이 있어 이곳 사람들도 많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집에 오는 길에 Bag-pipe 연주하는 것을 보고 PUB에 들어 맥주와 fish&chips와 하기스(양내장요리)를 먹었다. 이곳의 음식은 전통요리랄 것도 없고 맛도 별로다. 특히 하기스라는 음식은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질 않았다.

다음 날 우리는 스코틀랜드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하이랜드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골프의 발상지라는 세인트앤드류시에 들러 골프의 올드코스를 구경하고 '잭 니클라우스' 가 대회에 우승하고 나서 사진을 찍어 유명해진 다리에서 멋진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로 이곳의 수사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막대기로 공을 치기 시작한 것이 오늘 날의 골프가 되었단다.

하이랜드는 아주 척박한 땅으로 나무도 자라지 않고 오로지 이끼 식물 밖에 없는 땅이다. 땔감이 없어 이끼같은 풀들이 쌓여 퇴적한 피트라는 석탄재료를 1m깊이로 파서 운반하여 말려 사용하고 사냥한 짐승의 고기와 털로 옷을 해 입고 살아갔단다. 가난하고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 온 그곳이 오늘날에는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다 한곳에 차를 멈추었다. 천지가 고사리 밭, 우리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먹을거리가 이곳 사람에게는 양이 먹는 한갓 풀이라니……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햇살이 쨍쨍하더니 이내 소나기가 퍼붓는다. 다행히 춥진 않았다. 괴물이 나왔다는 '네스호' 이곳의 물은 진한 간장 색이다. 풀뿌리가 수 십년에 걸쳐 썩어 흘러내린 물이라고 한다. 이 지방 대부분의 하천물색은 모두 진한 간장 색을 띠고 있다.

오는 길에 '다빈치코드' 라는 영화에 등장한 'Rosslyn chapel'에 들렀다. 작고 아담한 성당인데 내부에 들어가니 기기묘묘한 부조들로 가득 차 있다. 부조들에 얽힌 사연들을 읽으며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참 좋았다. 점심 식사를 위해 주차장에 나왔다.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먹는데 눈 앞에 빨간 양귀비꽃이 가득 핀 들판이 보인다. 마치 모네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한 무리의 멋쟁이 할머니들이 보인다. 이곳 영국은 오전, 오후 두 차례 'tea time'이 있단다. 직장도 예외는 아니고, 이 할머니들도 ' tea time'를 즐기기 위해 근처 찻집에 가는 것이란다. 같은 시간 할아버지들은 PUB에 모여 맥주 한 잔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가시간을 보낸다니 부럽기도 하다.

에딘버러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 중 옛날에 죄인들을 공개 처형했다는 광장을 보았다. 그 곁에 'The last drop'이라는 술집이 있는데 그곳은 죄수들이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였던 곳이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 사자밥'을 주던 곳인 모양이다. 지금도 그 간판 그대로 사용하며 그곳에서 맥주와 간단한 식사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니 기분이 참 묘했다.

아들 내외가 살고있는 집 뒤쪽에는 아주 커다란 잔디밭이 있고 그 주변에는 어느 곳에서도 다 보이는 동산이 있어 주말이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산책 겸 picnic을 즐긴단다. 며칠 전부터 잔디밭에 철책이 세워지고 의자가 놓이더니 스코틀랜드식 군복을 입은 많은 군인들이 정렬을 하고 무엇인가 행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군대의 군기교체식이란다. 별궁에는 여왕깃발이 걸려 있고, (여왕이 이곳에 오는 날에는 여왕기가 걸린단다.) 혹 여왕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해봤는데. 행사가 막 시작되자 검정색 차량이 들어 오는데 핑크빛 모자에 핑크색으로 성장을 한 여인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조금 있으니 마이크에서 맑고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핑크빛 의상이 보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행사가 끝나고 다시 검정색 차가 우리 곁을 지나가는데 열린 창문으로 여왕이 손을 흔드는 것이다 . 바로 내 앞에서….이곳 사람들의 여왕에 대한 사랑은 대단 하다. 어떤 이는 16년을 살아도 그 날 처음으로 여왕을 보았다는데 우리는 일주일간 머물면서 여왕을 보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아마도 80은 족히 넘은 나이 일텐데 정말 곱고 귀티가 난다. (이곳 여인들은 특별한 날 여왕의 패션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을 즐겨 한단다.)

길게만 느껴질 것 같던 한 달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6년 여만에 아들내외에게 감격의 생일상을 받아 본 남편, 그리고 부자간에 한달 동안 같은 장소, 같은 음식점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서먹할 것만 같았던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가 더없이 다정해지고,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고,,,출국하려고 공항에 도착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또 언제 아들내외를 만날까. 즐거웠던 여행이었지만 타국에 남겨놓고 떠나와야 되는 애틋함이 더 크다.

이번 여행이 그래서 더욱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에딘버러 공항에서 헤어지고 암스텔담 공항에서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입고 왔던 옷이 불볕더위에 부담스러워졌다.

<u>이제 또 다른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u>

지면 보기 · 원본 6쪽PDF에서 열기 ↗
지면 1지면 2지면 3지면 4지면 5지면 6

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18호(2011) 68–73쪽 · 원본 PDF 68쪽 ↗

같은 호의 글

18호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