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현대미술전을 다녀와서

아.시.아. 현대 미술전을 다녀와서
글 송태정(전북회화회 회원)
감수성이 짙어지는 계절 가을에 전주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시아 현대미술전이 시행되고 있다. 아시아현대미술전은 지난 9월 11일에서 12월 31일까지 3개월간 이뤄지는 대규모 미술행사로서 아시아권 15개국 약 50명의 작품 70여 점을 도립미술관 전관과 전북예술회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 중 도립미술관의 작품을 구경하고 왔다.
모악산을 등에 업고 있는 도립미술관건물을 보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PARADISE〉 '어? 저런 간판이 예전부터 있었나?' 하는 의심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PARADISE〉라고 크게 쓰여진 간판같은 글자도 하나의 작품이었다. 〈PARADISE〉는 자아나 실존보다는 풍경 속에 개념으로 놓인 작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파란색의 LED간판은 마치 역이나 모텔촌의 한 모텔처럼 읽히면서 주변의 견고한 질서들을 녹이고 있었다.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또한 작가의 의도된 작품이 있었다. 계단위에 대나무를 엮어서 표현하였는데 작가가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궁금했다. 가까이에서는 잘 몰랐는데 전체사진을 찍은 후 살펴보니 가로의 계단과 세로의 대나무가 잘 어우러지는 작품으로 보였다.
제1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번잡한 일상의 피로와 공허가 내려 놓여지는 안식처 같았다. 박경식 작가의 나무로 만든 작품으로 전시장 하나를 가득 채웠는데 대나무 숲길에 나무를 줄지어 놓아 전시실이 숲 같았고 나무로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뼈대와 기질이 있는 나뭇가지는 고상한 운치가 있고, 비어있는 나무집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제2전시장에서는 가장 눈에 띠는 큰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전북청년작가로 뽑혔던 이주리작가는 길이 9m 크기의 야심작 '살다'로 삶 안에서의 절망과 희망, 소통과 소외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긴 길이를 전시한 작품으로 그 속에서도 끈끈히 지속되는 모습, 힘들어도 인내하고 견디는 역동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또한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일본작가인 이시다 테츠야 작가의 '이유'에 대한 작품의 설명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나는 거의 온종일을 침대에서 보냈다. 나는 일어나기 싫어서 거기 그냥 누워서 나를 지금의 상황으로 이끌었던 사건들과의 연결성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또한 나에게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기 시작했던 그 정확한 순간들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이 글을 읽고 작품을 보니 작품엔 작가의 자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인물이 아기 기구에 들어가 있어 완전히 어린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갈구와 슬픔이 애처롭게 드러났다. 왠지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안해졌다.
제3전시장에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폐기물을 가득 실은 커다란 배는 흡사 우리의 비극인 세월호를 연상시켰다. 인도의 유명작가 스보드 굽타의 설치 작품 '보트(무제)'는 작은 보트에 TV, 주전자, 냄비 등 각종의 폐기물들이 끈으로 묶인 채로 매달려 있었다. 굽타는 2000년부터 대규모의 조각품을 만들고 전형적인 인도의 접시와 도시락통, 오토바이와 택시를 모티브로 하여 도시화와 소비주의 같은 인도사회의 급격한 현대화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또한 3전시장에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써서 병에 넣어 바다로 북을 향해 띄우는 김기라작가의 영상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에 점 하나를 찍은 듯한 명상적 동양 미학을 잘 드러내는 이우환작가의 '다이얼로그'는 점 하나를 찍고 이어지는 점을 보여주며 연결된 느낌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한국인 얼굴을 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김아타작가의 'ON-AIR project 043' 사진작품은 15명의 남자 모델을 각각 반가사유상 포즈로 촬영한 후 중첩시켜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제4전시장에서 현대와 전통 옛 시대를 넘나드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도 있었다. '알프스를 넘는 관우'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페러디한 작품으로 사진을 여러 장 붙이거나 그려서 만든 작품이다. 작품 속에 레고도 그려 건장한 관우의 모습 속에서도 레고로서 귀여움과 현대적인 느낌을 엿볼 수 있었다.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관우의 얼굴은 작가 자신의 얼굴을 관우 얼굴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꾸며서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김남오작가의 나무상자 같은 작품은 전통을 현대식으로 바꾸어 새로운 시각적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다. 자연사물을 빌어 자유를 얻고 전통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내심 세계를 어두컴컴한 상자에 비유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계속 째깍째깍 소리가 나서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궁금증을 자아내던 작품이었다.
제5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엔 꽝 소리가 날 수 있다는 팻말을 보았다. 조용하던 전시관에서 갑자기 한 번씩 쾅 쾅 소리가 여러 번 났었다. 그 작품의 정체는 타이페이 예술대학 교수인 위앤광밍의 설치 작품 '계시'이었다. 흰색 테이블 위에 오른 백색 자기 그릇들과 촛불이 놓여있어 평화로움과 편안한 상차림 전경을 가지고 있지만, 갑자기 꽝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그릇끼리 부딪치고 덜컥이는 소리까지 연달아 들렸다. 행복한 상황에서도 갑작스러운 불행이 찾아오는 평온과 당혹감을 교차해 보여주었다.
페리얼 아피프라는 작가는 자신의 몸을 초콜릿으로 캐스팅하여 관객이 먹을 수 있게 하였다. 관객들이 전시를 보다가 초콜렛을 잘라서 먹는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전시시작한지 2달이나 지나서인지 커다란 몸통은 사라지고 작은 머리부분만 남았었다. 또한 방글라데시 작가 나즐리 라일라 만수르는 호랑이를 잡아먹으려 하는 사슴, 악어를 공격하는 황소, 뱀을 잡아먹는 개구리 작품들로 사회적으로 강자가 항상 약자를 억압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발을 표현했다.
창문밖에 설치되어 있는 사자나조쉬작가의 작품은 짐승의 털로 덮어있었다. 동물의 가죽으로 대상을 장식함으로써 친숙한 대상에서 또 다른 살아있는 대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친숙한 아기의 모습, 갓 태어난 아기에게 털가죽으로 연출하면서 기괴하고 강력한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이번 아시아현대 미술전은 다양하고 특이한 현대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아시아가 담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현대미술로 들추어내며 아시아미술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과 담론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회화, 입체, 설치, 미디어 등 1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각 작가별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아시아 문제와 관련된 특정 이미지들이 담겨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투영된 각 작가들의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사상과 생각을 나만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22호(2015) 38–43쪽 · 원본 PDF 38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