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과 여유를 찾는 생활
【수필】 고요함과 여유를 찾는 생활
고요함과 여유를 찾.는.생.활
글 이승훈 (전북회화회 회원)
겨울 초입, 나뭇잎 한 장이 더욱 햇빛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더위를 이겨낸 지난 여름날의 위대함을 생각합니다.
지난여름 어느 산골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열렸다.
넓은 밭을 정원처럼 가꾸고 여름 꽃을 피워서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 곳 이었다.
지역 특산품으로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았다. 한 마을이 공동으로 주최한 자리인 만큼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으면 그만한 축제장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삼수령 근처 구와우 마을 축제장 가는 길가엔 진 노란색 루드베키아와 개망초 꽃, 유혹적인 향기를 지닌 족두리 꽃, 가을 전령사인 코스모스도 이미 피었다. 길 건너엔 하얀 다리를 가진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산등성이엔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그곳이 매봉산 바람의 언덕이다. 산언덕이 배추밭인데 구름과 안개가 변화하면서 신비함을 준다. 해발 1,303m 산꼭대기와 1,250m에 배추밭 40만평 넓은 고랭지 농사지이다. 관광객은 농사짓는 분을 생각하면 고생이 아니다. 물 조절 못하면 말라버리거나 배추무름병이 생기고 판매 시기도 잘 맞추어야 한다. 겨울엔 집 앞만 눈 치우는데 3시간, 영하 20도에 물을 구하기도 힘든 데라고 한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객이 많아도 서로들 불편함을 견디면서 주차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고 담소도 나누는 것은 멋진 풍경 중 하나이다.
태백산을 오르는 산길에서도 여름 꽃을 만났다. 동자 꽃을 중심으로 연분홍 작은 얼굴의 이질풀, 엉겅퀴 비슷한 산비장이, 나비를 모으는 나리꽃, 풍경이 매달린 잔대 꽃, 노랑 고명을 뿌린 마타리 꽃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등산을 위주로 했었다면 작은 꽃들의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넉넉한 시간과 관찰 할 수 있는 마음이 움직였기에 가능하였다. 야생화도 수목원이나 화원 하는 곳에 가면 만날 수 있겠지만 저절로 피고 지는 꽃은 바람과 햇빛이 적당한 기온을 내주어서 좋은 환경을 이룬다.
봉숭아와 눈 꽃 같은 설악초, 고적한 맨드라미 몇 개가 울타리 옆에 피어 있으니 더욱 정겹고 한가로워 보인다.
바삐 돌아다니다가 길모퉁이에서 만나는 과꽃을 보거나 백일홍 꽃을 보면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난다. 집안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려서 음식을 장만하고 가을걷이를 하는 부모님 생각이 나고 함께 어울렸던 형제들도 생각이 난다. 그래서 기억이 아니고 추억인 것이다. 언젠가 모네가 살았던 지베르니에 간적이 있다. 여름이었는데 꽃도 다양하였으며 인파가 굉장했다. 파리에서 노르망디 쪽 80km 정도 위치하고 농장을 구입하여 정원으로 가꾼 곳이다. 화가는 자기 집에 강물을 끌어 들여서 인공 연못을 만들고 물의 정원과 꽃의 정원을 가꾸었다. 1883년 모네는 푸아시를 떠나 베르농 농가를 찾아 살았으며 1890년 지베르니에 농장을 구입하고 1893년에는 정원 앞 철도 건편 에프트 강가 토지를 사들이는 동안 43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버드나무가 휘늘어지게 심고 대나무와 등나무를 심었으며 수련을 심고 동양식 무지개다리를 놓고 배를 띄워 놓았다. 나무와 각종 꽃을 심어서 가꾼 것이다. 그리고 휴식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이곳에서 그린 그림이 250여 점이 된다하니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모네는 "나의 정원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라고 했다. 이 모네의 정원은 세계 10대 정원으로 불린다. 나이가 들어서는 백내장이 악화되어 시력을 잃게 되었으며 이 때 그린 그림은 미완성처럼 보인다. 그는 86세까지 장수하였으며 빛과 싸워서 그린 그림이 인상파라는 양식을 남겼다. 이 화가의 정원에서는 머무르면서 천천히 다가가는 게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무 많아 번잡하고 여기 저기 사진 찍고 소란스러워 도저히 화단을 돌아다닐 곳이 못되었다. 사실 모네 생전에도 모네는 지베르니에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찾아오는 시간에 그림을 하나 더 그리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도 후미진 나무 그늘 밑이 조용하고 한적하였다. 여행 작가인 드상티스는 "지베르니는 한입에 몽땅 털어 넣는 장소가 아니라 천천히 홀짝이며 음미하는 곳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고요함과 여유를 찾는 여행이 요즘 경향인 것 같다. 우리 여행이나 생활은 쉼이 있는 조용하고 안정이 있는 곳이 좋겠다. 자연이 살아서 새소리와 물소리가 있는 곳이면 좋겠다. 바람이 불어오면 좋고 낙엽 길을 걷고, 눈이 적당히 내려서 눈을 밟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때마침 친구가 찾아와 음악을 들려주고, 음식을 서로 나눌 수 있고 좋은 책을 권해도 좋겠다. 작은 마을에 살면서 새로 집을 지을 요 없이 있는 그대로 가꾸면서 자연과 함께 조우하는 것이야말로 내 마음을 고요하게 선물해주는 것이 아닐까?
(p47 사진 설명: ▲ 지베르니 연못)
원 게재: 수필 / 회화지 25호(2018) 46–47쪽 · 원본 PDF 4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