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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비엔날레 유감

김지영(전주 MBC 구성작가)

낡고 부서진 간이의자, 정성을 들였으나 어딘지 촌스러운 버스 시간표, 여느 터미널과 다를게 없지만 그 허름한 터미널 입구에 있는 가판에는 처참한 사진과 비디오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것이 광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어쩌면 한참 예민한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대학 1학년의 어설픈 앞지르기 였는지도 모른다.

그뒤 몇번을 더 광주에 가는 동안 어느날 그 허름한 터미널과 5.18 비디오를 팔던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말끔하게 단장한 종합터미널이 들어서 있었다.

그후 망월동으로 향하던 걸음이 뜸해지면서 시간과 함께 나도 변해갔고 다시 광주를 찾았을 땐 망월동이 아닌 비엔날레를 가기 위해서였다.

깔끔하게 단장된 비엔날레 행사장에 도착했을땐 어디서도 과거 광주를 떠올릴 수 없었다. 광주 비엔날레는 미술의 대백과 사전을 보는 듯 했다. 보통사람들에게 친숙한 사각틀의 평면 예술로부터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이미 붓과 캔버스를 떠났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을 보며 현대 미술의 한가운데 서있음을 느꼈고 고전에 충실한 평면작품들도 나라마다 이렇게 다를수가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 스쳐지나가는 작품이 아니라 한 자리에 몇분이고 머무르며 시간 주기를 가지고 돌아가는 작품 하나하나를 대할때마다 나의 미술에 대한 한계는 하나씩 깨져갔다.

그러나 평소 가까이 하지 않았던 탓에 미술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난, 작가의 표현의 도를 미처 헤아려보지도 못한채 전시돼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버거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이런 수준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같다.

한 안내원이 어느 작품앞에서 이 그림이 바로 이번에 타계한 대만 작가 관집중의 작품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자 한 아주머니 曰

"그럼 그림값 엄청 뛰었겠네……"

대한민국에서 혼자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다던가. 그러니 비엔날레를 찾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술이 낯선 사람들이 었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야 없으랴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가 일반인들에게 미술의 문턱을 낮춰주는 계기가 됐음은 가장 큰 성과로 보고싶다. 그러나 아직까지 풀어야 할 많은 과제를 앉고 있는 광주에서 비엔날레의 출발이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가 포함돼 있음또한 그냥 넘길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를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망월동에서 통일미술축전이 열렸다는걸……

그리고 왜 1등이 잊어버리기 위하여가 됐는지 과연 얼마나 알고 돌아갔을까 다시 헤아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술이 정치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예술은 어느것으로부터든 자유로워야 한다. 화려한 비엔날레 행사장을 빠져나오는데 행사장 후문 입구에서 5.18비디오를 팔던 아주머니를 만날수 있었다. 그 가판엔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서명용지만 하나 더 있을뿐 달라진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엔 절대 잊을 수 없는 광주의 상처가 있었다. 진정한 미술 축제의 한마당이 되기위해 광주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도 남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전북회화

김지영/전주 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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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문화칼럼 / 회화지 3호(1995) 11쪽 · 원본 PDF 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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