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운"미술작품을 창작해야하는 문제를 논의하자.
- 강사 : 박 용 숙(미술평론가, 동덕여대 교수)
- 장소 : 전북예술회관 1층 2실
- 일시 : 1995. 3. 18(토) 오후 3시
[사진] 강연 중인 박용숙 교수와 청중
한국 미술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우리다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근자에 이르러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우리다움'이란 어떤 것이며 그런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기회에 그 해답의 전부를 바람직하게 제시할 수는 없으나 그 가능성을 논의해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한국적인것' '한국미술의 특수성'을 논의할 때 제기되었던 지금까지의 범위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크게 나눌수가 있다.
① 고고유물을 대상으로 한 미학적인 성찰
② 불교유물에 대한 미학적인 성찰
③ 유교문화유물에 대한 미학적인 성찰
고고유물 ①이 일반적으로 원시신앙의 범주속에 속함으로 ②항이나 ③항 보다는 훨씬 '우리다움'을 논하는데 있어서 유리한 입장일 수도 있다. 불교나 유교문화가 발상적으로 외래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사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 세개의 항목은 하나의 연결고리에 의해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매개역할을 했던 '고리'이다. '우리다움'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이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간과했던 것도 바로 이 '고리'에 대한 시각이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①항이 끝나고 ②항이 새롭게 나타나거나 ②항이 끝나고 ③항이 나타났던 것이 아니다. ①항과 ②항은 서로 맞수(Counterpart)관계의 긴장속에서 역할을 교체했으며 ②항과 ③항도 그렇다. 결국 이렇게 ①항, ②항, ③항이 통시적(通時的)으로 배열되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두개의 항을 잇는 '고리'가 있으므로해서 그 배열이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다움'은 실상 드러나 있는 그 항목에 있었던게 아니고 그것들을 잇게 만든 '고리'라는 매개체가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를 테면 선사시대의 유물을 뒤지면 거기에선 흙, 토기류 쇠붙이, 그리고 유골들이 나오며 불교유물을 뒤지면 인도문화의 냄새가 물씬거리고 유교시대의 유물을 보면 중국문화의 냄새가 물씬거릴 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다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고리'란 무엇이며 그 미학적인, 사상적인 본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이번 강연에서는 그 점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우리미술에 있어서 불교적인 것과 유교적인 것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이 제 관찰되고 또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유물의 상태가 양호하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①항에서 지적된 선사시대에 관한 것들, 예컨데 고분미술에 관한 것은 아직도 황무지나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들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암중 모색될 뿐이며 그 기록적인 자료들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실제로 ①항과, ②항, ③항간의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①항의 문제가 암중모색단계에 있기때문이다.
'고리'의 비밀은 바로 그 ①항에 파묻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미술의 '우리다움'을 발견하는 길은 ①항을 ②항이나 ③항과 대등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①항을 샤머니즘(神仙敎 혹은 風流道)으로 총칭하고자하며 그것이 ②항이나 ③항과 대등한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다음의 몇가지 작은 주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잇다.
① 사신도(四神圖)
사신도는 지금까지 이해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죽은자의 묘지를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거나 무슨 부적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미 엘리아데와같은 종교학자가 언급했듯이 우리의 '사신도'도 고대종교의 독특한 만다라(mandala)이며 이 '만다라'는 우주창조(宇宙創造)의 원리로 이해되어야 옳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신도'가 실은 중국화론의 대가인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歷代名畵)'가 말하고 있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원리를 그림으로 나타낸 經典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고분벽화
고분벽화에서 인간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은 결코 고분에 묻힌 죽인자(主人)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그곳에는 천문도(天文圖), 사신도와 같이 동물만을 그렸거나 꽃만을 그린 것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구려시대의 고분들이 주는 인상은 고대의 모든 신전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인물(神)들과 그들의 전설적인 교훈, 혹은 제의적(祭儀的)인 사건들이 다루어져 있다. 그런 뜻에서 고분벽화는 수묵양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물들은 산수화나 사찰벽화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러나 산수화양식과 사찰벽화에 나타나는 인물의 세계를 고분벽화와 구분해야 되는 것은 회화적인 양식이나 방법상으로 이 양자가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③ 풍속화
풍속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료들은 우선 고구려시대의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며 이들은 주로 인물화(貴人圖)와 귀인의 행차도를 비롯해서 무용, 격투, 씨름, 사냥, 다도(茶道)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기존학설에 따르면 이들 풍속은 무덤의 임자가 생시에 즐겨하던 놀이의 모습이고 그래서 죽은 다음에도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기거하도록 배려한 그림이다. 그러나 풍속의 뜻 "風流"에 있다고 볼 때 그것들은 모두 그 시대의 종교적인 풍속을 다룬 것이라고 보야야 한다. 무용, 씨름, 사냥, 다도는 모두 화랑육계(花郎六禮)에 속하는 것들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화는 종교적인 인물로 보아야 한다. 조선조 후기에 단원, 혜원에 의해 제기되는 풍속화가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때만이 그 시대적인 의미가 확실하게 부각됨을 보게 된다.
④ 무신도(巫神圖)
李能和가 巫敎의 본질을 귀신오행설(鬼神五行說)이나 점복술(坐史卜祝之法)로 규정했던 것도 무교의 교리가 모든 무속에 앞서 엄연히 선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양오행설이 인간만사에 적용되는 자연적인 원리가 될 뿐만 아니라, 주로 이 원리가 천문현상이나 인체(의술)에서 연유되며 적어도 기원전 7세기 이전의 세계, 예컨대 중국(周代),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시대에 널리 통용되던 문명의 기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무교의 특징을 편의상 실학적(實學的)이라는 말로 요약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실제로 무신도(巫神圖)의 여러 성격에서 드러나지만 고조선기(古朝鮮紀)에서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악(善惡)등 무릇 360여가지 일을 다스린다 했을 때 이미 그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一然은 〈삼국유사〉에서 "紀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 "紀異" 시대에 용왕, 용궁, 사녀(蛇女), 산신(山神), 도깨비, 알(卵)의 신화 등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없거나 이단시 되었던 여러 신화적인 요인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우리의 고대신화가 바빌로니아, 지중해의 신화와 동질의 것이라고 주장한 단제(丹齋)의 견해나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두드러진 종교현상이었다고 주장한 엘리아데의 학설을 근거로 하더라도 우리의 무교가 기원전 7세기 이전의 세계문명을 지배했던 문명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정신이 주로 실학적이라는 점도 확인된다. 17세기에 일어났던 실학사상도 그것이 단순히 서학(西學)의 영향에서만이 아니라 기실은 무교적인 르네상스와 관련됨에 유의해야 하며, 혜원이나 단원의 풍속화는 물론 소위 민화(民畵)도 기실은 조선조시대의 단순한 풍속이라기 보다는 고분미술 이후에 잃었던 무교미술의 재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을 문턱에 다가와 있다. 우리가 그동안 하늘처럼 떠받들어 왔던 서구미술의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거나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있다. 80년대 왁자지걸하게 떠들던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이 아직은 그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제의 것이거나 오늘의 것이지 내일의 것일수가 없으며 더욱 우리의 손에의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자신의 문제의식에 눈을 떠야 할 때다. 진정으로 서구예술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표류하고 있는 20세기 미술의 난파선에서 무언가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자리에 있다는걸 실감하리라 믿는다.
나는 이 작은 모임에서 우리가 해야할 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초보적인 일 한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화(神話)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서구미술의 뿌리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기독신화이다. 그것은 고전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전천후적인 그들의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현대미술도 신화의 패러디(parody)나 변주(modification), 재인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왜, 서구미술을 추종해야 하는가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신화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리스신화나 기독교신화 속에 엄청난 정신적인 자산이 있듯이 우리의 신화에도 엄청난 정신적인 자양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화속에서 21세기의 미술을 창조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①항과 ②항 혹은 ②항과 ③항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주로 ①항에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신화'의 문제를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즉 '고리'는 우리의 신화이다. 불교문화나 유교문화가 발상적으로 외래적인 것이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삶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나름의 미술문화를 꽃피었던 것도 바로 우리의 '신화'가 들어나 있지는 않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무어라고 하건 우리의 신화를 우리나름으로 재생하고 모든 표현기술의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새로운 우리시대의 미술작품을 창조해내야 할 것이다. 전북회화
원 게재: 전북회화회 주최 "세미나" / 회화지 3호(1995) 7–9쪽 · 원본 PDF 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