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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탐방

이아연 작업실을 찾아서

이경태

[사진] 작업실에서 작품을 살펴보고 있는 이아연 작가

  • 이경태 -

태양의 열기가 뼈속까지 파고드는 지난 여름 한낮에 화실을 방문해 달라는 이아연님의 전화는 더위를 잊게 했다. "봉동"이라는 이름의 동네, 정직한 신작로(?), 신록으로 끝이 없어 보였던 낮은 산능선과 가로수의 싱그러움 또한 더위를 식혀 주었다.

포도 저장 창고가 "신화의 섬"으로 개조 되었을까? 아니면 평상시 이아연님의 표전적인 분위기와 그곳에 깔린 묘한 향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곳에서 "섬"을 보았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몇 백년은 됫음직한 고목도 보았다. 이아연님의 화실은 "섬"으로 비쳐졌고 화실 앞에 신화처럼 견고한 모습으로 서있는 정자나무는 마치 신목(神木)으로 느껴졌다. 중국인들은 해가 뜨는 바다를 부상(扶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가 뜨는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의 이름도 부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열 개의 태양을 품에 안고사는 부상나무와 아연님의 섬과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이런 풍경에 내재된 의미는 무엇 이었을까? 어쩌면 아연님의"섬"과 부상(扶桑)의 뿌리는 보이지 않게 영감으로 교류 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침묵으로 이어지는 소리는 넓게 퍼져 나간다. 긴장된 얼굴들이 침묵의 울림으로 꽃을 피운다. 거슬러 올라간 세월의 벼랑 너머에 우리가 좀체 알수 없는 축척된 사슬들이 싱징과 문양의 바탕을 이루며 현재의 우리들을 비웃고 있는 듯 그렇게 춤을 춘다. (그때 나는 바람 한점없는 태양아래 푸른 잎을 흔들며 춤을 추는 아연님의 고목을 보았다.)

멀리로 떠나 보냈던 언어의 저편 너머에서 시나브로 넘실대던 신화의 그림자들, 파편들.... 이렇게 이아연님은 조심스러이 잃어버린 전설을 잉태하고 생산해 내는 것 같다. 아연님의 노래는 암흙의 공간에서 빛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 색이 아닌 색으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얼굴로 향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연님은 시간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만들어 간다고 해야 될까? 질문과 답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영혼의 방, 진하게 베어있는 고독의 방.

멀리에서 들을수록 더욱 선명히 들리는 "콘트라 베이스"의 특성처럼 아연님의 작업실에서 만났던 작품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의식속에서 선명하게, 저음으로 울리고 있었다고 뒤늦게 고백한다. 작은 "나"를 잃어버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나", 충만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의 빛나는 신화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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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작업실 탐방 / 회화지 8호(2000) 19쪽 · 원본 PDF 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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