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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지역의 고인돌 군락지

이기화(고창향토문화연구소장)

[사진] 소나무 숲 속 고인돌 군락지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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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과 지석묘는 같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지석묘라는 용어는 그 한자의 뜻에서 추론되는 바와 같이 고인돌이 있는 무덤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고인돌은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한 요소로 파악되고 있는데 거석문화란 거석을 이용한 구조물을 가진 문화를 의미하며 우리인류가 처음으로 시작한 공동생활의 상징물로서 대체적으로 이집트나 아메리카 대륙의 피라미드, 오베리스크, 중동지방의 각종 석조물, 영국의 스튼헤지, 프랑스의 열석(列石) 등이 이 거석문화의 산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도 고인돌 외에 선돌(立石)이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인돌은 그 지칭도 다양하여 지석묘, 괸돌, 탱석(撑石)또는 호남지방에서는 굄바우라고도 불리우며,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서양에서는 돌멘(Dolmen)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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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변천이나 편년에 대해서 아직 확실한 정설은 없으나 우리나라의 고인돌 기원으로는 시베리아의 카라스크 돌널무덤(石箱墳)계통의 거석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북방설, 세골장과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보는 남방설 그리고 한반도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는 자생설등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형식으로 보편화 되고 있는 고인돌은 한반도 북부에서 북방식 고인돌이 먼저 나타나서 그것이 점차 남쪽으로 퍼지고 이어 개석식 고인돌이 파생하였고 또 남부에만 있는 남방식 고인돌은 말기적 형식으로 보는 설이 있다. 그러나 한편 개석식 고인돌을 원초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기반으로하여 북부에서는 북방식 고인돌로 남부에서는 남방식 고인돌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설도있다. 여하튼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 개석식으로 크게 세가지 구조형식으로 나누어 지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고 또한 북방식을 전형식으로 남방식을 변형식으로도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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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식 고인돌은 그 형태로 보아 탁자식이라고도 한다. 장방형 판석 4개를 세워 돌방(石室)을 짓고 그위를 덮을 수 있는 이 보다 훨씬 큰 장방형 판석을 얹어 그 돌방이 곧 묘실이 되어 지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돌방의 양 측면에 세운 두개의 받침돌은 거대한 뚜껑돌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어 여간 두꺼운 판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땅속에 깊이 묻힌 하부는 돌방 내부 바닥보다 훨씬 그 뿌리가 깊다. 돌방의 짧은 벽에 세운 받침돌은 긴 변 받침돌 내부에 들어와 ㅁ자 모양으로 세워지지만 뚜껑돌의 하중을 직접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입구 여닫이 역할을 하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북에 분포하고 있으며 평안남도와 황해도지역의 대동강, 재령강 황주천일대에 집중되어 있고 평안북도와 함경도에는 그 분포가 드물다. 강원도 산악지대에는 한강유역을 한계로 북방식 고인돌의 분포가 끝난다. 서해안지대에는 전라북도 고창까지 이르고 있으나 수원-용인을 연결하는선 이남에는 거의 없다.

남방식 고인돌은 그 형태로 보아 바둑판식이라고도 한다, 매장시설의 주요부분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어 지상에 설치된 북방식 고인돌과 형태상으로 구분된다. 판석(板石), 할석(割石)이나 벗돌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뚜껑돌(蓋石)을 올려 놓은 것으로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철기 시대에 걸쳐 유행했던 거석분묘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다시 크게 받침돌(支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앞의 것은 남방식이라 하고 뒤의 것은 꺼석식(무지석식, 변형고인돌)으로 재분류하며 주로 전라도, 경상도 등 한강 이남지역에 밀집분포되어 있으나 한반도 전역에도 산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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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주로 해안이나 강을 따라 그 옆 기슭이나 높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가장 밀집지역인 전라도 지방의 경우 대체로 해안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그 분포의 중심지역은 고창군이다. 고창군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조밀한 고인돌 분포지역으로서 약2천여기가 해안가와 내륙하천유역에 밀집분포되고 있다. 고창읍 도산리, 죽림리, 월암리, 월곡리, 고수면의 환산리, 조산리 은사리 아산면의 상갑리, 하갑리 학권리 용계리, 문곡리, 해리면, 평지리, 안산리, 심원면 하권리 월산리 주산리 신림면 무림리, 가평리 부안면 용산리 수동리 공음면 구암리 상하면 하장리 성송면 암치리 학천리 사내리, 대산면 상금리, 지석리, 성남리등 지역에 주로 밀집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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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91호로 지정(1994, 12, 19)된 고창 죽림리 지석묘 군락지는 고창읍에서 서쪽으로 약4Km떨어진 매산(梅山)마을 주변으로서, 화시봉(火矢峰 400m)으로 부터 서남향으로 활 처럼 뻗어 내린 서산(西山)과 성틀봉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비탈진 기슭을 이루고 있는 곳인데 그 끝에 인천강(仁川江)상류인 고창천이 동서로 평행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다.

[사진] 고인돌 앞에서 답사 및 조사 활동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 지석묘군은 매산마을을 기점하여 동서로 약1800m범위에 걸쳐 산 줄기의 남쪽 기슭을 따라 대체적으로 15m~50m의 표고 범위안에서 수십무더기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북방식 2기 지상석곽식 44기 남방식247기 기타 불명식 149기등 442기가 널려 있는데 지석묘 뚜껑돌의 크기를 보면 길이 1m미만이 2기, 1m이상이 183기, 2m이상이 172기, 3m이상이 66기, 4m 이상이 15기, 5m 이상 6기등이 집중적으로 분포되고 있다. 이곳 죽림리 지석묘 군락지는 선사유적인 고인돌의 자연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고인돌의 편년을 따라 달라져 가고 있는 고인돌의 모두를 이 곳에서는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방식, 남방식, 개석식외에도 북방식에서 남방식으로 옮아가는 과정의 변형으로써 북방식 지석에다 점차 덮개돌의 그 중량이 더해지면서 이를 보다 튼튼하게 받쳐주기 위해 네귀 바깥쪽에 보조지석이 괴어지는 지상석곽식 그리고 뼈만 묻는 2차장(二次葬)형식, 덮꺼돌 밑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구덩식(土壙式), 지반이 약한것을 극복하기 위해 굄돌을 세우지 않고 눕힌 형식등 다양한 형식을 고루 갖춘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된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묘제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 및 성격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며 동양의 거석문화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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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

원 게재: 체험활동 / 회화지 8호(2000) 25–26쪽 · 원본 PDF 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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