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다녀와서....
[사진] (캡션 없음 — 백두산 산림 풍경)
-이철규-
작년 금강산 스케치전에 이어 올해에도 우석대학교 개교 21주년 기념 사업 일환으로 이루어진 백두산 스케치 여행에 -행운이랄까?-또 다시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분단 이후 그 누구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던 북한의 두 명산을 연거푸 가게되니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랴! 백두산 ! 말로 만 들었던 민족의 영산이자 기상!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때 김좌진, 이범석 장군등이 북로군을 이끌고 일제에 대항하였던 항일 독립 투쟁의 거점이며, 풍광으로 말하자면 화산 폭발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아스라한 절벽과 계곡들, 백두대간의 시작점으로서의 당당한 산의 형상, 만주벌판 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산림들, 유럽에서는 백두산 일대를 조선의 알프스라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백두산 만한 명산도 없지만, 백두산 만큼 매몰 된 산도 없는 것 같다. 10여년 전에 중국과의 여행 자유화로 인해 부각되기는 했지만 백두산의 국토적 성질 ,민족적 관계, 자연, 인문 실제적 사정들을 정확히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도 일반적으로 백두산이 한 민족을 상징하는 산이며 천지가 있고 온천, 울창한 산림, 장백폭포 등의 정도만 알지 거의 관심을 갖을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출발하기 전 백두산이 주는 민족의 역사적 가치와 그 기상이 어떻게 분출 될 수 있었는지 최대한 살펴보고 알아 볼 요량이었다. 단순히 스케치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 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이며 겨례의 역사, 한 민족의 정기를 고스란히 안고있는 백두산을 직접 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백두산! 이에 관한 글중 우리 민족정기에 연계하여 그 기상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 1926년 백두산을 다녀온 후 그 소감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던 글) 서두를 살펴보면 백두산을
"동방 원리의 화유(化)입니다.
동방 민물(民物)의 최대사요.
동방문화의 최고의 학식이요.
동방의식의 최고 연원(淵源)입니다.
.......
민족의 영산(靈山)일 뿐 만 아니라 동방 민족의 시원(始原) 입니다."라 하였다.
이는 무엇 인가? 백두산을 한 민족의 발상지요. 개국의 터전으로써 숭배의 대상으로, 민족정신의 근원으로 단언코 간주 하였기 때문 인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山으로 스케치 여행을 가게 됐으니 어찌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 있으랴! 스케치 보다는 민족의 기상을 느끼고 기를 흠뻑 받고 오리라는 마음이 더 하였으리라!
여름이 시작되는 7월 초,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 스케치단 일행은 김포공항에서 장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시간여의 비행 끝에 장춘(옛 만주국의 수도)에 도착하여 간단한 관광 후 저녁에 연길행 비행기로 갈아 탔다. 비행기 창으로 보이는 칡흑 같은 어둠 속에 간간히 보이는 불빛, 이 밑은 틀림없이 만주벌판 이리라! 연길에 도착한 후 오후 12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연길에서 출발한 관광 버스는 6시간여에 걸쳐 백두산에 도착하였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장춘까지 비행기로, 다시 연길까지 비행기로, 연길에서 하루를 숙박 한 후 버스로 백두산까지 가는 데 꼬박 1박 2일이 소요 되었다. 통일이 되어 북쪽으로 간 다면 넉넉잡고 반나절이면 충분한 길을 이었다. '이게 무슨 낭비여!'는 자조 섞인 푸념이 절로 나왔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의 풍경은 한국의 어느 농촌 풍경과 거의 흡사 하였다. 드문 드문 보이는 똑 같은 형태의 줄지어 있는 가옥을 보게되면 중국인 것을 실감나게 하였다.
[사진] (캡션 없음 — 천지를 배경으로 선 필자)
백두산 입구에 도착 하자 장백산이라 써 있는 큰 대문이 나타났다. 백두산이 아니고 장백산(長白山) 이라니..... 중국에서는 장백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2000여년전 중국 역사서에는 불함산(不咸山), 개마대산(蓋馬大山), 도태산(徒太山), 장백산등으로 불리워 왔다고 한다. 개마라는 이름의 어원은 여진족의 언어에서 온 것으로 長白이란 뜻이다. 大山이란 큰 산이란 뜻이기 때문에 장백산으로 불리워 왔다고 한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에서 사용된 명칭인 데 용비어천가에서 "장백산은 곧 백두산이다. (長白山名白頭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여러차례 이름이 변하기는 했지만 기후가 한랭하기 때문에 쌓이게 된 눈의 색깔 때문에 의하여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확인 된다고 한다.
장백산이라 써있는 대문을 지나 버스는 드디어 백두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완만하게 상승 곡선을 그으며 올라가는 버스 창 옆으로 침엽림대(교목층)가 형성 되어 있었다. 30여미터나 될 것 같은 전나무들이 숲을 형성 하면서 양 도로 옆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원시림을 지나는 것 같았다. 버스는 더디게 올라가고 있었다. 도로 포장공사 때문에 한 쪽 차선을 차단하여 통행하다보니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천지로 올라 갈수록 쭉쭉 뻗은 원시림은 점점 작아지면서 왕사스레 나무군과 전나무 등이 혼합된 숲이 계속되었다. 그 숲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호텔, 온천 등 숙박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시간에 걸쳐 이런 울창한 숲을 지나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올라가는 초입 길 부터 여느 산과는 다른 백두산 다운 웅장하고 대범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버스 곧 천지 대문에 도착 하였다. 여기서 부터는 짚차로 갈아타고 가야 했다. 이때 가이드의 말이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천지까지는 짚차로 갈아타고 가야합니다. 천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0분 만 허용이 되니 시간을 지켜 주세요. 천지의 기후는 변화 무쌍하여 맑은 날씨 속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천지를 볼 수 있는지는 올라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하는 내용이었다. 아니! 겨우 30분이라니.. 스케치하고 천지를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부족해도 좋다! 그러나 제발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햇볕은 있지만 서쪽에서 심상찮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짚차에 몸을 실었다. 10여분 걸린다고 했다. 출발하기 전 날씨는 그래도 쾌청한 편이었다. 그래! 우리는 천지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들었다. 짚차는 완만한 경사각을 이룬 S자형 길을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뒷 유리창으로 보이는 백두산 자락은 장관이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산 능성이들! 결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고도를 높이 할수록 어느새 나무 숲은 사라지고 초지로 변해 있었다. 듬성 듬성 피어있는 노란, 하얀색의 야생화들이 시선을 자극한다. 차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겨우 차 한대 비켜갈 수 있는 길을 곡예 운전 하듯 아주 숙련된 솜씨로 운전하고있었다. 좀 천천히 달리면 어디 덧나! 관광객들을 위해서 백두산 정상 주위 경관을 천천히 살펴 볼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었으면... 아쉬운 순간 이었다. 정상 바로 옆의 기상 관측소를 지나자 드디어 천지 형상이 보이기 시작 하였다. 3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때문에 차에서 내리자 마자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기 시작 하였다. 가이드 말로는 천지비 왼쪽은 천문봉(2670m), 오른편은 화개봉(2640m)이라 하였다. 바로 앞에 천문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보인다. 가슴이 뛴다. 바닥은 온통 부석(浮石: 화산이 폭발 될 때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공중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구멍이 생기면서 굳어진 화산분출물의 일종)으로 뒤덮혀 있었다. 조그마한 능선을 지나자 천지비(天地碑)라는 비석이 보였다. 곧 바로 눈앞이 환해지면서 나타나는 호수! 지름4Km, 둘레 14,5Km.에 달하는 천지! 그 모습은 너무나 당당하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이 동방원리의 化라고 했던가! 동방 民物의 최대사라고 했던가! 실제 천지의 모습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으로 접했을 때 보다 그 규모는 훨씬 더 대단하였다.
[사진] (캡션 없음 — '장백산' 대문 앞의 필자)
운이 좋았다. 약한 햇볕 이었지만 천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반대편 끝까지..아니 저편 북녘 땅까지.. 30분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서서 그 경관을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오른편 화개봉으로 오르자 천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르고 내려 갈 때마다 그 모습은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다. 이 약한 햇볕도 잠시! 갑자기 오른편에서 강한 먹구름이 다가 오더니 천지 오른쪽부터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화개봉에서 내려와 천문봉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 하였다. 먹구름이 천지를 다 뒤덮기 전에 또 다른 위치에서 더 많이 보고 싶은 욕망이 앞서 있었다. 그 순간 이게 웬일!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거의 1cm에 가까운 우박이 쏟아지는게 아닌가! 스케치도 해야 하는데.. 얼굴을 들지 못 할 정도였다. 살갗에 떨어지는 우박은 상당히 따가웠다. 우박은 갑자기 강한 소나기로 변하여 온 몸을 적시기 시작 하였다. 정신이 없었다. 상황이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10여분 사이로 햇볕과 우박, 소나기를 경험하게 된 것은 난생처음 이었다. 이러한 자연의 오묘한 조화, 위력은 그 무얼로도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경험도 행운인가? 하는 자조어린 생각도 해봤다. 온몸이 비로 적셔지자 체감온도가 떨어져 추위가 엄습하였다. 내려오는 도중 부석 몇 개를 주워 담으며, 이것으로 라도 이 서운함을 대신하리라... 하산하는 차 안에서 천지물이라도 만져보고 가야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천지를 뒤로 한 채 짚차로 천지대문에 도착하여 버스로 장백폭포로 향하였다. 날씨는 어느새 흐려지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백 폭포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자 마자 내리던 비는 멈추고 잔뜩 흐려 있었다. 폭포까지는 20여분이 소요 된다고 했다. 도로 옆에는 관광 상품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한켠에는 뜨거운 온천 물로 계란을 익혀 파는 노점도 있었다.
장백폭포로 향하는 등산로 양 옆은 왕사스레 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계속되고 있었다. 왼편에는 천지에서 흘러나와 장백 폭포를 거쳐 내려온 물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개울을 만들고 다시 하나로 합쳐져 계곡을 만들고 있었다. 백두산이 주는 또 하나의 장관 이었다. 이 물은 결국 만주벌판을 가로 지르는 송화강을 만든다고 한다. 주변은 왕사스레 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화산 폭발 때문인지 검정빛을 띤 온통 크고 작은 바위와 자갈로 뒤덮혀 흙으로 된 곳을 좀처럼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조그마한 숲을 지나자 눈 앞에 한 줄기 흰 빛! 장백폭포가 나타났다. 거대한 폭음이 몇리 밖에 까지 울리며 흰 물보라를 흩날려 일곱색 무지개와 백룡이 날아 내리는 듯한 절경을 이룬다는 폭포! 한눈에도 그 위용은 대단하였다. 낙차가 68미터나 달하니 그 떨어지는 물 줄기는 빠르다 못해 비단결에 가까웠다. -북방의 모든 폭포는 겨울이면 물이 얼어 자취를 감추지만 장백폭포만은 한 겨울에도 얼지않고 계속 흐른다 한다.- 이런 자연이 주는 위대한 현상, 모습 때문에 '백두산은 민족의 기상이자 얼이다.'하는 그 이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이 감정을 빨리 화면에 펼쳐 보여야 속이 시원 할 것 같았다. 힘껏 움켜쥔 붓으로 스케치를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은 천지에서 기후악화로 스케치를 못했던 아쉬움 때문인 지 약속이나 한 듯 군데 군데 흩어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백두산에 올라 장백폭포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나에게는 어떤 의미, 그 이상의 것이었다.
스케치도 잠시, 화면 위로 툭툭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스케치 북을 접어야만 했다. 백두산은 우리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끔 허락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베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본대로 느낀대로 그 감정만을 가져가라는 깊은 뜻 인지...
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8호(2000) 32–35쪽 · 원본 PDF 33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