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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전북회화회 뉴욕전』 뉴욕전시를 다녀와서

이철규 (회원,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이 철 규 (회원,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개인적으로 이번 뉴욕여행은 두 번째 이다. 2002년 9월 휴스턴에서 열렸던 개인전 때문에 일주일간 여정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이틀 동안 뉴욕을 들렸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퀸즈에 머물면서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둘러 본 뉴욕은 수박 겉 핥기라 할까? 뉴욕이라는 대 도시의 겉모습만 보고 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는 이러한 아쉬움을 한 번에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 이었다.

단순히 여행목적이 아닌 갤러리 밀집 지역이자 미국미술 나아가 세계미술을 이끌어 가는 – 첼시지역에 위치한 화랑(월드파인아트갤러리)에서 전북회화회 전시가 열릴 뿐만 아니라 게다가 숙소도 맨하탄(Manhattan) 렉싱턴가(Lexington street)에 위치한 Radisson 호텔에서 10일 여정으로 머무르니 뉴욕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보고 느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또한 미국 미술계의 동향을 여유 있게 좀 읽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잠시 이방인 뉴요커가 되어보는 설레임 또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뉴욕 전시회를 마련한 학교 후배이자 전북회화회원인 이우정과 그녀의 초등학생 2년인 딸, 박지예 회원, 나 이렇게 4명이 동행하였다. 1월 30일 저녁 8시에 탑승한 비행기는 12시간의 장시간의 비행 끝에 다음 날 저녁 8시에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였다. 1월의 뉴욕의 겨울은 추위가 상당 하였다. 다음 날 오전에 뉴욕 맨하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버스투어를 하였다. 맨하탄 48st(코리아타운이 있는 지역)에서 출발하여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이 바다와 합류하는 지역 즉 부두쪽으로 관광하는 코스였다. 투어버스에는 약 20여명의 한국인들로 차있었다. NY대학교학생, NY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LA에서 온 한국 교포 가족관광객들 가지각색이었다.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여행사(드림투어)이다 보니 가이드, 기사, 관광객 모두 한국인 이었다.

6차선 도로가 수많은 자동차들로 좁게만 보이는 도로와 좌우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솟은 빌딩은 4년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그라운드제로(핵폭탄 실험 시 핵이 폭발 후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명명한 9.11테러 현장과 Wall street를 지나 부두로 향하였다. 마침 부시 대통령이 Wall street에 있는 증권거래소를 방문하여 연설 계획이 있는 관계로 차량 정체가 극심하였다. 오전11시에 승선하기로 되어있었던 배편(자유의 여신상 유람선)은 1시간 연기되었다. 12시에 승선한 유람선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향하였다. 4년 전 뉴욕까지 와서 가보지 못해 아쉬움만 남았던 터라 기대가 되었던 곳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건너편에는 붉은 벽돌 만든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의 이민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럽에서 미국 이민 시 신체검사(전염병내지는 질병)를 하였던 곳이라 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조그마한 섬에 위치하고 있었다. 9.11 테러 이후로 강화 된 검문검색으로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유람선은 섬에 정박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도록 주위를 돌았다. 살을 에이는 차디 찬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대서양 바다에서 보는 맨하탄의 수 많은 건물들은 또 다른 뉴욕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선 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향하였다.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지었다는 불가사의 한 빌딩으로 유명하며, 특히 개인적으로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마지막 장면이 연상 되는 곳이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입구부터 철저한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망대는 86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맨하탄을 투어하는 동안 하늘이나 빌딩을 보기위해서 밑에서 위로 눈을 치켜뜨고 쳐다만 보다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맨하탄의 빌딩들-GE, UN빌딩, 문선명빌딩 등 –은 마치 성냥갑들을 세로로 쭉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은 마치 장난감 빌딩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으로는 허드슨강이, 오른쪽으로 이스트강이 맨하튼을 끼고 흐르는 모습이 한국의 풍수로 말하면 좌청룡 우백호라 할까! 버스 곧바로 할렘가로 향하였다. 미국 동부 명문대학 중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은 맨하탄 북부 할렘가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할렘가는 과거의 우범지역이 아닌 맨하탄의 마지막 남은 개발지역으로 평가되어 그 면모가 한해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한다. 덩달아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다 한다. 바로 10분여 거리에 2050년에 완공 목표로 지금도 공사를 하고 있는 St Johns성당은 할렘가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투어는 UN빌딩, Time Square광장, Madison square Garden을 거쳐 뉴요커의 쉼터인 센트럴 파크를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센트럴 파크는 면적이 3,4㎢이며, 도시공원 형태의 시민공원으로 동물원, 시립미술관, 호수 등 있으며 공사가 1850년에 시작되어 1960년에 완공 되었다 한다.

2월 1일 오늘은 전시회 오픈이 있는 날이다. 첼시지역 Gallery는 조용하였다. 아니 침묵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인맥이 뜸하였다. 서울의 인사동 같이 인파가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인사동같이 잡화점이나 편의점, 화방, 필방 등이 모여 형성 된 복합적인 거리가 아니라 오로지 화랑들만이 존재하고,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오고가는 그런 지역이었던 것이다. World Fine Art Gallery는 전체가 갤러리와 작업실로만 구성 된 건물의 8층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에서 보낸 전북회화회원들의 작품들은 화랑 전시장 벽면에 잘 배치되어 있었다. 벌써 3점이나 붉은 딱지가 붙어 있었으며 한 점은 예약 중이라 하였다. 전시 오픈 전에 화랑 웹 사이트에 작품들을 올려놓고 미리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에서 미리 알고 왔지만 미국 뉴욕의 화랑답게 작품을 한점이라도 더 팔려는 직업정신 과 철저한 자본주의가 배어 있었다. 3점이나 판매 되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군데 군데 하얀 새치머리를 가지고 있는 흑인혈통의 갤러리 관장은 우리들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특히 작품을 제작한 공력에 비하여 저렴한 작품가격에 내심 놀라는 눈치이다. 월드파인아트 갤러리는 작가들이 화랑의 전체 내지는 한 벽면을 일정기간 임대하여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독특한 형태의 상업화랑 이었다. 홍보는 화랑에서 담당하며, 고객들에게 메일내지는 홍보물을 발송하여 판매 시 일정비율의 커미션을 챙기는 형태의 화랑이었다. 소위 전속작가제도는 없지만 신진 화가들이나 무명의 작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주는 화랑이었다.

대부분의 첼시지역의 화랑들은 철저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상업 화랑들로서 대관을 하지 않고 소속 및 전속작가들만이 전시를 할 수 있는 형태를 갖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화랑같이 뉴욕의 화랑도 1년 전에 신청하면은 대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북회화회의 미국전시를 추진하였지만 전시장 섭외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전시장 섭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좀 더 좋은 화랑을 섭외하려고 하였지만 위에서 언급한 피치 못 할 이유로 이 화랑을 섭외하였던 것이다. 저녁 6시 오픈시간이 되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러 모여 들었다. 1층부터 건물 전체가 전시장으로 되어 있기에 관람객들은 꾸준히 시간을 두고 찾아 들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 뉴욕 첼시에서는 어떤 형태로 오픈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몇몇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특히 4층 에서는 3-4개의 전시회 오픈 진행되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전시장이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꽉 차있었다. 대부분 한손에는 접시에 다과류를, 다른 손에는 병맥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미국식 실용주의 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간단하게 오픈식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 같이 뷔페 형식으로 거하게 차리는 형태의 오픈이 아닌 동료내지는 축하객들이 각자가 십시일반으로 간단한 다과류, 음료, 주류를 가지고 와 나누어 먹고 마시는 마치 조그마한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첼시지역에 만 200여개의 화랑이 있는 관계로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좀 더 많은 화랑을 구경해 볼 요량으로 급히 또 다른 몇 개의 화랑을 쭉 둘러보았다. 마침 한 화랑의 안내판에 한국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영어로 유선구(SUNGHU, YU)라 적혀 있었다. 인물을 주제로 화려한 색칠을 한 현대 도예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미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시 화랑의 소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였다.

월드파인아트갤러리 전시장 내부 (뉴욕 첼시)
월드파인아트갤러리 전시장 내부 (뉴욕 첼시)

잠시 시간을 내어 미국 뉴욕 미술계의 흐름에 대하여 궁금한 점들을 질문도 하고, 많은 것 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곳 첼시지역 대부분 화랑은 철저히 전속, 소속작가제도 두고 운영하고 있으며, 1년 내지는 2년에 한번 씩 초대전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꾸준히 홍보하여 한마디로 싹수가 보이면 유명작가로 키워내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화랑의 상술과 경제논리가 적용되겠지만 그 제도가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또한 중요시 되는 항목은 소속작가 섭외에서 화랑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뒤따르는 데 화랑 관계자가 작업실을 매년 수시로 직접 방문하여 작가의 역량과 작품량을 확인 한다고 하였다. 새롭게 발전된 모습이나 작품량이 보이지 않으면 아무리 명성을 얻은 유명작가라도 곧바로 삼류작가로 전락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유명작가 일수록 그 유명세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한국 같이 한번 명성을 얻으면 죽을 때까지 –작품량이 많거나 적음에 상관없이, 새롭게 변모되는 모습이 있던지 없던지– 지속되는 흐름과는 그 근본부터가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철저한 검증은 화랑이나 작가로서나 서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월 2일 오전에 다시 한번 St Johns성당과 미국 동부에 있는 IVY리그 대학 중 유일하게 맨하탄 북부 Harlem가와 가깝게 위치한 모닝사이드라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Columbia 대학교를 둘러보았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학교로서 1754년에 개교하였다 하며, 개교 시 학교명을 킹스칼리지라 하였으나 독립 후 컬럼비아로 개명하였다 한다. 초입부터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구성 되어있는 대학정경은 300여년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돔 양식으로 건축되어 진 도서관 건물은 노벨상을 50여명이나 배출한 콜롬비아 대학의 학구열을 느끼게 해준다. 걸어서 10여분거리 2050년에 완공예정으로 매일 공사를 하고 있는 St Johns성당은 조금씩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며, 화강암으로 건축하였기에 시간이 지날 수 록 불에 그을린 자국같이 검게 변한다고 한다. 오후에는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이자 뉴욕 맨하탄의 명소인 Metropolitan Museum 을 관람 하였다. 전 세계의 국보급 유물을 전시해 놓았는데 특히 건물 한 채를 그대로 미국으로 옮겨와 버린 이집트 유물과 중국 막고굴에서 통째로 뜯어다 전시해 놓은 돈황의 불화벽화(프레스코 기법으로 제작)같은 유물들은 세계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인 미국의 전리품 같은 생각이 들어 한편 씁쓸하였다. 중국관과 일본관 사이에 약 30여 평 크기로 만들어 놓은 한국관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기부한 유물(고려청자, 민화 병풍, 자개분갑 등)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규모부터가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초라해 개인적으로 생색만 내는 전시관 같아 아쉬움이 더 하였다. 한편으로는 피카소, 마네, 자코메티, 램브란트, 후안미로 등 같은 근대미술작품과 미국 추상표현주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 작품과 앤디 워홀, 바셀리츠, 재스퍼 존스, 이브클랭 등의 세계적인 작가의 현대미술작품을 직접 감상하였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주말이다. 평일보다 교통체증이 훨씬 덜하다. 좀 여유 있게 뉴욕의 미술관을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소호에 있는 화랑들, MoMA,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등을 관람하였다. 마침 휘트니 미술관 3층 전관에서는 미국에서 꽤나 명성을 얻고 있는 키키 스미스라는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에게 좀 충격적이랄까? 그의 작품은 일견 보기에도 대부분 한지로 제작되어진 사실에 깜짝 놀랐다. 평면, 설치, 철조, 목조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년대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입구 중앙 벽면에 부착한 설치작품은 한지를 꾸겨서 만든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한지를 제2의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한, 한지 고유의 물성을 표현하려는 작품이었다. 궁금증이 더해 명패를 자세히 보는 순간 재료가 Japanese paper라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의 화지가 뉴욕에서 Japanese paper란 재료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휘트니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서 영향력있는 작가에 의해 한지, 화지, 선지를 포함해서 닥으로 만든 종이를 Japanese paper라 불리어지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의 한지도 혹시 미국에서는 화지로 치부되어 버릴 수 도 있는 여지가 있겠구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일본의 전통 문화에 대한 막강한 지원과 영향력을 여기 미국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뮤지컬관람, 워싱턴여행, 뉴욕상점에서 만난 한인 모녀의 삶의 이야기 등 못다 한 이야기도 많지만 10일간의 여행은 나에게는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체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전북회화회 뉴욕전시 개최에 많은 도움을 준 이우정 회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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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15호(2007) 28–31쪽 · 원본 PDF 28쪽 ↗

이 지면의 도판

월드파인아트갤러리 전시장 내부 (뉴욕 첼시)전북회화회 뉴욕전월드파인아트갤러리 전시장 내부 (뉴욕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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