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림-우리인물화 전통초상화에 대하여


요즘 '전통이 미래다' 라는 문구와 프랭카드를 전주 일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전주가 전통 문화 중심도시로 특성화되면서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탐구가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특히 국악, 판소리, 한지 등 전통에 관한 것들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민관의 유기적인 협조와 지원, 지속적인 홍보로 그 기틀을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술 판에서는 우리 전통에 관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점 들은 미약하기만 하다. 예부터 예향의 고장으로 서화의 전통이 끈기 있게 이어왔던 전통 미술들이 활발하게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위축되면서 단절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이다. 그런 대로 문인화 및 신수화분야는 몇몇 재능 있는 작가들에 의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전통 인물화에 대한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말에 화원화가이면서 어용화사인 채용신이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전통 초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그 명맥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에 이르렀다. 특히 전통 인물 및 초상화에 대한 전공자가 급격히 줄면서 그 명맥 이어가기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혹여나 전통 인물화에 대한 이해부족이나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여 발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와 의견이 있어 전통 인물화(초상화)에 대한 제작과정과 그 우수성을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전통초상화의 시초는 자료상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총주부부상(塚主夫婦像)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이후 통일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면면이 제작 되어 왔던 초상화들이 조선왕조 들어와 유교가 국가 건국이념이 되면서- 후손 및 유림(儒林)에 의해서 선조 및 이름 있는 학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의 뜻으로 -사당 및 영당(影堂)에 봉헌할 초상화의 수요가 급격히 팽창하게 된다. 이렇게 다량의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그 기법도 중국의 영향에서 탈피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다양하고 독특하게 발달되었다. 특히 한국회화사에서도 주목할 만 한 초상화가 적지 않게 제작되었다. 한국 초상화는 중국과 일본의 초상화와 함께 정확한 골상법(骨相法)에 의해 과학적으로 제작되었으며 대상 인물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표현에 앞서서 정확한 안면 근육을 과학적으로 파악하여 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작과정은 한, 중, 일 삼국의 초상화 제작방법 중 한국 전통초상화 제작방법의 그 독특함과 섬세함으로 인해 종종 서양의 초상화 제작 방법과 비교되곤 하는데 그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첫째, 전통 초상화는 서양초상화가 정확한 비례 및 형태, 명암 등 외부에 들어내는 형태표현에 치중되어 있는 반면 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큰 이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전신사조(傳神寫照)란 대상 인물에 대한 형태(寫形)을 정확히 표현하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인격을 먼저 파악하고 그 성품까지 표현해야한다는 것(寫心)이며 게다가 외부에 드러나는 '터럭 하나라도 똑 같이 그려야 한다' 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의 현대의학자들이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던 초상화를 보고 안면에 표현된 각종 색과 반점 등을 보고 병명까지 유추했다 하니 과거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대상인물에 대한 관찰과 표현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케 한다.
둘째, 그 제작 방법이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예술관이 반영되듯이 색감과 종이(韓紙)가 하나의 몸이 되어 결과물로 나타나는데, 서양의 초상화는 캔버스라는 화판 위에 유화라는 물감으로 덧칠함으로써 물감과 캔버스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작방법은 서양인물화는 그리는 행위를 페인팅painting이라 하여 소위 얼굴 위에 화장을 하는 식의 방법으로 이해 될 수 있으며, 전통 초상화는 그리는 행위를 드로잉(drawing)하여 선(線)의 품격과 정신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통 초상화는 그 내면의 성품을 표현해내려는 의지의 반영으로 뒷면에 색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한지의 투명성을 이용해서 한지의 뒷면에 색과 명암을 가미하여 우러나오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해 내려는 자연합일(自然合一)적인 사상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셋째, 재료상 서양화의 유화 물감과 붓은 전통 초상화의 물과 융합되는 천연재료와 세필 붓과는 표현상 그 방법의 차이가 있다. 즉 서양인물화의 초상기법은 명암과 덩어리 위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전통 초상화 기법은 인간 안면의 이목구비 표현에 있어서 골상법(骨相法)에 의거 선(細筆)으로 터럭 하나하나 까지 그려내며 심지어 땀구멍까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말기 화가 채용신은 안면 근육의 문양 즉 육리문(肉理文)의 결을 따라 아주 극세필(極細筆)을 사용하여 안면부를 표현하고 있다.
넷째 초상화 작품의 배경 처리를 들 수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 전통초상화는 배경을 생략하여 인물 자체만으로 근엄함과 웅장함을 –경배 및 숭배의 대상으로– 한껏 표현하였다면 서양의 초상화는 주위인물을 함께 배경을 자세히 표현하여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배경의 有無 여부는 동서의 초상화의 하나의 큰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초두에서 열거한 전통 초상화 기법은 대부분 왕의 어진을 제작하면서 그 표현기법과 채색법, 재료사용법 등 이 발달되고 다양화 되면서 고관대작 및 양반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적용되어 다량의 작품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원류의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수하고 독특한 초상화 제작기법이 완성되었는데 여기서 간단하게 어진 제작 단계를 살펴보자. 도감(圖鑑)설치 – 어진화사(御容畵師)선발 – 초본(草本, 밑그림) 제작 – 상초(上梢, 밑그림을 비단, 한지 위에 옮겨 그리는 과정) 및 정본설채(正本設彩, 일종의 배채과정)- 후배(後褙, 종이 한 장을 붙이는 배접과정) – 표제(標題, 일종의 어느 왕이며 제작시기의 자료 표식)-봉안(奉安)- 논상(論賞, 어진제작에 참여한 화가들에 대한 포상)으로 까다롭고 정성을 요수하는 많은 단계를 거쳐서 완성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초본 제작 시 모사(模寫)와 달리 도사(圖寫)를 할 경우에는 만족할 만한 초가 나올 때 까지 제작을 계속하였으며 이때 직초(織梢)를 같이 병행 하였다. –광초(廣梢)를 사용하였다.– 상초는 묵(墨)을 사용하였으며 어용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 또한 상초를 한 후 초본은 명종 이후 종묘나 진전 후원에 묻어 버렸다 한다. 완성된 어진은 길일 길시를 택하여 봉안하였다. 여기서 전주의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축되어 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일 것이다. 조선시대 어진 초상화 제작 시 가장 특기할 만 한 사실을 두 가지 정도 소개해 보면 첫째, 상초시 안면부 배채(背彩)를 할 때 눈의 표현을 매우 중요시하여 영조 이후로 왕의 어진제작 시 뒤 면에 이금(泥金)을 하였다는 사실(이금으로 인하여 후대까지 은은한 발광의 효과를 노렸던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 즉 조선말엽에 가면 초상화가 두 경향으로 나뉘어 표현되어 진다는 것이다. 전래의 초상화법, 즉 골상법(骨相法)에 의거한 구륵법(鉤勒法)과 이에 음영법(陰影法)을 혼용한 형태의 초상화, 이른바 채석지필법(採石芝筆法)으로 육리문을 따라 무수한 세필을 가해 실재적 입체감을 주는 화풍으로 나누어진다.
위에서 언급한 어진 제작은 무수한 까다로운 과정과 절차를 거쳐서 완성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세심한 배려가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어진제작기법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참여했던 화가에 의해 대부분 고스란히 일반 고관대작 초상화 제작에도 적용되었으며, 그 제작 기법이 꾸준히 전승되어 대를 이어왔다. 지금 현재에도 제작되어지는 초상화 기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조선시대에 완성되었던 제작 기법이 전해져서 양식 및 표현법과는 대비되는 품격 높은 肖像藝術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즉 관찰한 대상 인물의 정확한 형태묘사 뿐 아니라 그 내면의 정신세계까지 그려내려는 傳神寫照를 대변해주는 수준 높은 전통초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원 게재: 우리그림 / 회화지 15호(2007) 34–35쪽 · 원본 PDF 3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