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전 문학과 미술이 만나다.

고 기 현(회원)
서울에서 전주로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사 온지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교동, 일명 한옥 마을이란 곳에 집터를 잡았고 그 덕분에 최명희 문학관을 자주 지나 칠 수 있었다.
'최명희란 사람이 유명한 문학인인가 보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이는 필자의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무지함 때문이었기도 했다.
이런 필자에게 최명희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줬던 전시가 있어서 이 회지를 통하여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8월, 전북대 앞에 위치한 공유갤러리의 기획전 '혼불'展은 전시 명부터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한 문학인과 그의 소설을 어떻게 작가들이 해석하고 풀어 나갈 수 있을런지 전시를 보기 전부터 자못 궁금했었다.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9명 작가들의 작품들. 김영란(서양화), 김철규(서양화), 나인하(서양화), 박순자(한복), 유기종(사진), 유미옥(서양화), 이은혁(서예), 최영문(설치), 최희경(서양화)씨 등 9명의 작가들은 소설 '혼불' 을 매개로하여 각각 다른 출발점에서 출발하여 종국에는 한길에 이르고자 했던 이번 기획전의 취지를 각자의 예술혼 속에 잘 녹여 풀어내고 있었다.
전시를 보면서 내내 소설을 읽어 봐야겠다는 충동심이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듯 '혼불'展은 나에게 작가 최명희 선생님의 문학과 삶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된 전시였다. 소설 '혼불'의 방대한 내용을 한 화면이나 공간에 시각적인 함축된 언어로 묘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란 나의 짐작은 참여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여실히 알 수 있었다.그들은 혼불처럼 스러져 가면서도 오직 '혼불' 집필에만 매달렸던 최명희 선생의 삶과 흔적을 느끼고 그들의 작품에 온고히 담아내고자 10권 분량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세밀히 정독하였고 최명희 선생님의 남원 생가를 직접 방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서양화가 김영란의 '꽃심 지닌 땅' 에서의 꽃심은 꽃에 피워내려는 강한 의지이다. 천대 받았던 땅에서 전주의 넉넉함을 꽃심으로 표현하였고 이땅과 함께 뿌리내리고자 하는 더 나아가 죽어서까지 종가집을 지키려는 효원의 마음을 신발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서양화가 나인하의 '혼불의 여인들' 은 스테인레스 스틸 이라는 현대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소재를 스크래치와 철가루를 부식시키는 방법을 통하여 여인들의 얼키고 설킨 아픔을 실타래로 표현하였고 '청암부인' '효원' '강실이' 등 '혼불' 속 여인들의 이름을 점자로 나열하였다.
사진작가 유기종의 사진작품들은 사실적인 표현과 다른 현실의 자연을 인간의 정서로 탐구하였고 'LOVE'라는 사랑의 의미를 이니셜로 기호화함으로써 최명희 선생님의 전주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사랑을 표현하였다. 전시장 정면의 강한 불기둥이 인상적인 한국화가 유미옥의 '혼불' 은 방대한 소설의 질곡한 삶과 혼을 거대한 불기둥으로 표현하였고 불길 속에 꿋꿋하게 앉아 있는 '새' 를 상징적으로 의인화함으로써 처절한 삶의 아름다움을 은유적으로 묘사하였다.
서양화가 김철규, 최희경씨의 작품들 또한 혼불에 녹아있는 정(情)과 한(恨)의 정서들을 작가 특유의 사유와 감성으로 풀어 놓았다. 종갓집 며느리의 장례식을 묘사한 소설 내용에 따라 직접 수의를 제작한 박순자씨의 수의와 갤러리 중앙 정원에 설치 된 최영문씨의 도예 작품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몇 번이고 '혼불' 을 다시 읽은 작가들은 때로는 세밀하고 때로는 대범하게 '혼불' 의 이미지를 펼쳐놓았고 자신의 작품을 소설의 내용에 충실하면서 제작하였다. 회화, 사진, 공예 등의 다양한 형식 속에서 작가들의 양식과 개성을 잃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었음은 갤러리의 치밀한 기획력과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주제전이라는 타이틀만 내놓고 작품에 '주제를 갖다 맞추는 식' '제목만 바꾸는 식' 의 안일한 전시 행태들에 모범이 될 만한 전시였음을 자명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나고 자란 토양과 풍광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닮아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문화의 뿌리에 관심과 애착을 가지는 것은 이런 이유로 너무나 중요하다.
'혼불'展은 여러 신문사의 보도와 JTV의 '이홍재의 문화읽기'와 KBS의 '낭독의 발견', YTN의 뉴스 등을 통하여 방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러 신문지상과 방송들이 이 전시를 기사화 하고 특집화 한 것은 최명희 선생님에 대한 재조명,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그 지역의 문화를 아끼고 지키려는 노력의 의지를 높게 평가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들의 작품이 감동을 주어 잠시나마 우리의 문화와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컸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록)
'소설 '혼불'을 읽기에 도움을 주는 참고 문헌과 내용들의 요약 발췌본 '
소설 「혼불」은 전라도 남원땅 양반가문의 몰락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용은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 대와 잡초같은 삶을 이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얘기로 이어진다. 일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독립운동과 같은 숨가쁜 역사도 담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고난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 문장이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대로 판소리가 되었다.

실제로 작가는 원고지 한 칸을 메울 때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리 내어 읽어 나갔다고 한다. 눈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운율을 타고 가슴에 척 안겨드는 것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인 남원 땅은 산천초목도 떠는 듯한 호령조의 동편제의 산실이었으니까 꿋꿋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담기에는 제격이었다.
또 하나는 당시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담아 남원 거명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를테면 관례를 시켜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옷은 「연두결마기다홍겹치마연두폭대무자기여덟폭 겹풍무지기 모시분홍속적삼」 등 수 없이 많다. 班家(반가)의 혼수세간들 역시 다양하다. 주철 삼층장 의결이장 반닫이장의 모습을 재현했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나 상가의 풍속 상여 나가는 모습은 민속조사보고서처럼 치밀했다. 사찰의 사천왕상을 취재한 원고지만도 백쪽에 달했으니까 혼불은 한낱 소설만은 아니었다. 『남녀가 만나 옷고름 한번 제대로 푸는 일이 없다』고 할 만큼 말초적 재미라곤 전혀 없는 이 소설이 지금까지 300여만부가 팔려나간 것은 80년대 한국문학이 거둔 가장 큰 성과였다.
소설들이 기교만을 앞세운 언어를 찾아서 혼란을 부추길 때 작가는 그 앞에서 「모국어정신」으로 버틴 것도 잊을 수가 없다.
『시인은 끝끝내 언어를 통해서만 자신을 완결하는 사람』「백석전집」이동순이라고 했지만 작가에게서 언어란 민족의 순수 그것이었다. 그 고유어를 찾아서 중국 옌볜과 선양을 두달 넘게 두루 찾아다녔다.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서 작품으로 되살린 것이다. 지난해 문화계와 정-재계인사 백명이 모여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작가의 고독한 창작작업을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작품읽기를 널리 펼치자는 취지였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활동은 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와 동시대인들의 관심과 격려를 통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혼불이란 우리 몸안에 있는 불덩어리라고 했다. 사람이 제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었다. 그러니까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다. 혼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재생시켰고 풍속사를 정리해줬다. 무대는 1930년대부터 43년까지였다. 그 이후의 현대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가는 「완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소설은 한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책이다. 양반들의 허위를 고발한 박지원의 「호질」이나 신분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균의 「홍길동전」은 곧 그 시대의 역사였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내용이어서 더욱 그렇다. 잃어버린 역사와 말을 복원하는 데는 한 시대를 닮은 소설이 제격이다. 「혼불」은 훌륭한 역사자료이다. 현지에서 조사한 우리말 사전이다. 그 속에 담긴 민속을 모아 풍속사를 만들 수 있고 천민들이 사용하던 말을 찾아 문학사전을 만들 수도 있다. 또 외국어로 번역해서 「혼불」이 세계 속에서 타오르게 하는 사업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가 최명희의 뜻이 계속 이어져서 민족혼을 찾아야 할 때다.

「혼불」의 말과 역사를 찾아서신찬균 논설고문文化칼럼세계일보 1998년 12월 14일
「혼불」에 온 생명 다바친 문단의 진정한 장인
- 1972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1972 1981 전주기전여고,서울보성여고 국어교사
- 1980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쓰러지는 빛」)
- 1981 동아일보 창간기념 장편소설공모당선(「혼불」제1부)
- 1988 1995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에서 제5부 연재
- 1996 [혼불] 제1~5부 (전10권) 출간
-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단편 「쓰러지는 빛」 당선 (1980)
-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공모 소설 「혼불(제1부)」 당선(1981.5)
- 도서출판 한길사 제정 제11회 단재상 문학부문 수상 (1997.7)
- 제16회 세종문화상 문화부문 수상 (1997.10)
- 98여성동아 대상 수상(1998.1)
그는 여느 작가들처럼 몇몇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그리고 장편소설 하나쯤 써 작품집을 내고, 이어 발표했던 단편들을 모아 창작집을 내고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신춘문예 당선 후 곧바로 소설 「혼불」 집필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듬해 1부를 완성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 당선된다. 「혼불」을 쓴 이유에 대해 작가는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는 것.
그는 1988년부터 월간 신동아에 「혼불」2부 연재에 들어간다. '거짓이 아닌 글을 쓰게 하소서'라는 기원과 함께 매일 밤 12시에 만년필을 잡고 원고지 칸을 메워나갔다. '모국어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신념으로 소설 차원을 넘어 '우리 풍속사를 담아낸 박물관'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고'라는 평가를 얻은 이 작품은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간 5부까지 집필하며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기록을 세운다.
1983년 첫권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1996년 12월까지 전 10권이 한길사에서 완간된 「혼불」은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에 매달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며 고통스런 집필의 대가로 대신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했다.
5부를 집필하던 1996년 8월경 이미 암이 발생했고, 무리해가며 원고를 완성한 결과 아이만 살고 산모는 죽는 결과를 낳았다.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만 17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은 주위의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1997년 7월 당시 국무총리였던 고건 서울시장을 비롯 강원룡 크리스천아카데미원장 등 정치 경제 학계 언론계 등 인사 70여명이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그의 투병의지를 북돋우기도 했다. 그가 집필에 매달렸던 서울 청담동 성보아파트는 '성보암'이라 불렸고, 그 성보암에서 그는 도를 닦는 주지스님이었다. 마지막 탈고 4개월 동안은 자리에 제대로 눕지도 않았다. 그는 결국 1998년 12월11일 쉰 한 살의 나이로 이승에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삼대 종부(宗婦)가 커다란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리고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네였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명굴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골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자장으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의 근친상간에서 시작된다.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건너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섬으로서 제각기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그를 따라나선 술집 기생 오유끼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상피에 대한 소문이 거명굴로 전해지자 자기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이가 양반댁 강실아씨를 탐내기 시작하고, 춘복이와 몰래 동거를 하고 있던 과수댁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상피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끔 하고 그때를 노려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차츰 은밀히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죄어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겁간해 임신을 시키게 된다.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피접시키려고 하나 그만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이를 납치함으로서 상황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에게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출이가 번득이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계급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갈등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짜여서 이제 생생하게 날뛰는 인간군상들을 막 건져 올릴 찰나에 허망하게도 소설은 끝이 아닌 끝이 나버렸다.
이야기 사이사이 마다, 아니 이야기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저자는 당시 시대의 풍속사를 깨알같이 묘사하고 있었다. 첫 장면인 혼례의식을 비롯해서 연(鳶) 이야기며 청암부인의 장례절차 그리고 유자광이나 조광조, '새로 쓰는 백제사'의 이야기도 돋보였다. 여기에 조왕신의 습속이나 복식에 대한 묘사, 윷점이야기 같은 내방의 섬세한 면면들도 감탄 속에 눈길을 끌었고 봉천땅의 구체적인 지리묘사라든지 사천왕의 긴 이야기도 사물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대목이었다. 도대체 이런 기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를 필요로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그런 정성이야 말로 말로 바로 '혼불'을 만들어낸 근원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모종의 틀을 덧씌우거나 그런 틀거리에 맞추어 작품의 의미를 잘라내는 순간 『혼불』은 이미 혼불이 아니다. 작위적인 분석법으로써 이를 대하지 말고, 그 언어의 세계가 운행(運行)하는 길(道)이 닿는 데 우리의 지각을 내맡겨 이를 이해하려고 해야만, 이 작품의 진면목을 깨칠 수 있게 된다. 이때면 서사적 실재가 있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할 텐데, 이를테면 사건 중심으로 소설을 읽는 태도나, 굳이 주동 인물의 의식이 변화하는 추이에 초점을 맞추어 읽거나 주요한 서사 구성 요소들만을 추려 읽는 독법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의 행위나 의식 같은 전경(前景)보다, 그 밑그림이 되는 배경이 더 주요한 이해 문면으로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은 굵직한 이야기 줄거리보다 세공된 언어의 세부들이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는 『혼불』을 통해, 몸의 느낌에 맞게 조율된 문장의 리듬감이나, 우리네 이야기 방식에 걸맞게 구현된 서사나, 삶의 미세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은 담론 등이 한데 어우러진 마당에 참여하게 된다. 때로 우리는, 극채색의 이미지를 구사하여 생생한 감각을 전하면서 우리의 느낌에 파고들어 사무치기라도 할 듯한 언어의 주술에 은연중 휘말려들 것만 같다. 그것은 아마도 굿판에서 구구절절 터져나오는 넋두리의 정조에 휩싸여 어우러지거나, 판소리의 마당에 함께 하며 소리에 사로잡히는 것과도 비슷한 체험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열규 교수가 "한국인은 삶의 크고 작은 토막들을 통틀어서 '이야기'라고 했다"고 운을 떼고서 "전통적 이야기, 곧 전통적 서사가 오늘의 역사를 만나서 이룩한 최절정이 곧 『혼불』"이라고 고평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하겠다. 당당히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가 얻어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로 대단한 문화적 사건인 것이다. 다만 그 가치 있는 이야기를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계간 문학동네 1999년 봄/제6권 제1호/통권18호, 「교감의 서사, 우리 이야기 "혼불"」, 장일구
사매면 : 남원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32.39㎢, 인구는 2,694명(1995년 현재)이며 면소재지는 오신리이다. 백제의 고룡군에 속하였으나 그 뒤 매안방(梅岸坊)이 되었다가 1914년 남원도호부가 폐지되면서 사동(巳洞),매안(梅岸) 2방이 합하여 사매면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형은 화강암이 심층풍화되어 북쪽으로 열린 분지이며, 동서남북은 높이 300-400m의 산지로 둘러 쌓여 있다. 산업은 주곡농업외에 양잠업, 축산업과 잎담배가 성하다. 교통은 전라선 철도와 전주-남원간의 국도가 통과한다. 유적으로는 조선 숙종대에 사액을 받았던 노봉서원(露峯書院)과 매계서원, 오리정(五里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오신(梧新), 서도(書道), 계수(桂樹), 인화(仁化), 화정(花亭), 대율(大栗), 월평(月坪), 관풍(官豊), 대신(大新)등 9개 동리가 있다. 〈남원지방 민간신앙연구, 오종근, 도서출판鄭,1997〉〈www.namwon21.com〉 자세한 내용은 〈http://www.namwon.go.kr/dongpage/same/index.htm〉
원 게재: 미술관을 찾아서 / 회화지 15호(2007) 42–47쪽 · 원본 PDF 4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