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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

여행 중에 생겼던 조그만 에피소드, 그리고 니스의 미술관들....

고기현(회원)

마티스, Blue Nude IV, 1952, Gouache on paper cut out, Musée Henri Matisse, Nice
마티스, Blue Nude IV, 1952, Gouache on paper cut out, Musée Henri Matisse, Nice

고 기 현(회원)

지난여름, 난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23일 일정으로 유럽 배낭 여행길에 올랐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와 맞물려서 내 작업의지도 강해졌었기에 근래에 변변한 대화한번 못 나눈 터였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유럽여행이었다. 가족단합이 여행목적이었기에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패키지여행상품은 사양하고 나름대로 여행루트와 일정을 짜보았다. 23일 동안 5개국을 거치는 다소 빠듯한 여행일정은 우리가족에게 많은 에피소드와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값진 여행이었다.

북경의 화랑가1)를 돌다가 골목을 잘못 들어서서 발견한 화가의 작업실. 그곳은 200~300평 규모의 공장창고였고 넓은 작업공간에는 아무런 시설(에어컨, 티비, 쇼파 등) 없이 단지 창고가운데 조그만 둥근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두 눈에 꽉 차 들어오는 거대한 대형 인물작품들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상의를 벗은 빡빡머리의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도망쳐 나왔던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폭염의 더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펼치는 그들의 작업에 대한 의지는 가히 본받을만한 것이었다.

각설하고 전북회화지에 유럽미술관 여행기를 올려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난 무척이나 망설였다. 글 솜씨도 없거니와 우리의 유럽여행은 미술관 중심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의 여러 도시는 어디를 가도 수많은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고 특히 파리와 같은 도시는 그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숙소나 무인락커에 짐을 맡겨 놓은 채 거의 모든 도시를 걸어 다녀야 했던2) 우리의 무리한 여행일정은 루브르와 같은 대형박물관을 돌기도 전에 이미 지쳐있었고 유럽 어디를 가나 산재 해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도는 일이 둘째인 아들놈에게는 엄마의 욕심만을 채우는 것 같아 보였는지 내내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1) 북경의 화랑 가는 오래된 낡은 공장 지대를 예술가들의 감각으로 재탄생된 화랑 밀집 지역이었다. 미로와 같이 연결된 화랑 가는 구석구석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에어컨도 없는 폭염 속에서 그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고 거대한 작품들 속에서 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2) 영어실력의 부족으로 몇 번 버스를 잘못 타는 실수를 했었던 터라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것이 속편했다. 그리고 유럽의 도시들은 작아서 걸어 다니다보면 어느덧 그 곳의 관광명소들을 다 둘러보게 된다. 각 도시마다 다르게 풍겨오는 거리의 인상들과 경험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유럽여행은 처음이고 사전 준비를 한다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여러 나라를 돌겠다는 빠듯한 일정으로 길 찾기에 온 힘을 소진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이들 심정도 이해할만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생각보다 많은 미술관을 탐방하지 못했고 미술관에서 찍은 전문성 있는 사진자료도 별로 없었던 나에게 '유럽미술관 여행기' 제의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생각 끝에 남프랑스에 위치한 해안도시 '니스'에 대해서 쓰기로 하였다. 휴양지로 알려진 니스에서의 바닷가 추억은 아이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해안가에 몰려있던 탓에 시내 곳곳에 위치한 크고 작은 미술관들은 비교적 한가로워서 여유 있게 작품을 감상 할 수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니스를 향하던 중 생겼던 오스트리아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의 화두로 시작해보기로 하겠다. 우리에겐 값진 추억이고 다소 딱딱한 미술이야기를 끌어내기에 완충역할을 해 줄 것이기에...

니스 행 에피소드3)

2007년 7월 27일 오전 8시 30분. 우리는 유럽의 첫 여행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근교인 그린찡에서의 추억을 뒤로한 채 두 번째 여행지 프랑스 니스를 가기 위해 또 다시 긴장해야만 했다. 오전 10시 오스트리아에서 니스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역(sudbahnhof)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기위해 오전 일찍 그곳으로 갔다. 리무진 버스표는 자동판매기를 통해서 살 수 있다고 하는데 3명분의 버스 티켓 값을 지불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잔돈이 부족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100유로 지폐를 잔돈으로 바꿀만한 곳이 없었다. 서툰 영어실력 때문에 표를 구입할 때 잔돈을 바꿔 달라고 하는 간단한 회화도 쉽지 않았던 터라 간신히 안내원에게 카드로 지불이 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버스 티켓을 끊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난감한 상황은 이때부터였다.

오전시간이라 공항으로 가려는 단체 손님들이 많았고 리무진 버스는 남역 정거장에 오자마자 좌석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 리무진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던 다른 외국인들도 난감해 하던 표정을 짓더니 그들끼리 다급한 표정과 언어로 몇 마디 나누고는 급하게 승합차 한대를 대절하였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좌석 몇 자리가 비는 듯 했다. 그들도 내 표정을 읽었던지 급하게 우리에게로 다가와서는 같이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국식이라면 서로 돈을 합쳐서 자동차 한대를 대절하는 것이니 나눠서 같이 내자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카드로 구입한 버스표는 이었지만 여전히 잔돈이 없었다. 100유로 (한국돈 13만원) 지폐만 있었으니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니스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봉고차에 올라탔다. 비행장 가는 내내 영어로 어떻게 이것을 설명해야 할까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공항에 거의 가까이 오자 외국인들은 잔돈을 걷기 시작했다.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잔돈이 없다고 하면서 100유로를 내보였다. 그들은 재빨리 몇 마디 협상을 나누고는 그 돈을 다 모아서 내게 주었다. 잔돈은 내가 갖고 운전기사와 직접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 기사가 잔돈이 없으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걱정이었다. 그 사이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난 100유로를 기사에게 내보였지만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기사도 잔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두 아이까지 데리고 외국에서 이게 웬 창피인가.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 되었다. 바쁜 비행시간에 쫓기는 그들이었지만 한명도 빠짐없이 그 옆에서 상황을 지켜봤고 미국인인 듯한 여자가 나서서 남은 일행들에게 돈을 걷었다. 그들은 두말없이 잔돈을 걷어서 우리들 몫까지 기사에게 주었다. 난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덜기 위해서 주머니에 있던 얼마 안 되는 잔돈들을 합치려고 했지만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만 남긴 채 바쁘게 제 갈 길로 사라져갔다. 아~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니스행 경비행기 안에 몸을 싣고 두 어 시간을 날아가니 짙고 푸른 코발트색 바다가 벌써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지중해의 맑은 하늘과 공기, 그리고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싱그러움으로 그 동안의 피로와 누적된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이미 눈 녹듯이 풀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깔깔거리며 물놀이를 하고 놀았고 나도 자갈이 깔린 해변에 앉아 온몸을 내맡기고 오렌지 빛 태양과 코발트 색 하늘, 비취색 지중해, 일광욕을 즐기는 싱싱한 젊음들을 보며 오랜만의 여유를 가져 보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던 메세나 광장이란 곳은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로 도시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이 실제 사람이란 사실에 신기해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3) 니스를 가는 과정에 생긴 일이라 편의상 니스행 에피소드라 지었다.

니스의 미술관들

다음날 아침 해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구시가지 근처 살레아 광장(Cours Saleya)의 아침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각종 올리브 오일과 향신료들, 각종 민속품과 동물모양의 과자들은 보는 재미를 선사했고 탐스러운 꽃과 과일들은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더욱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산 갓 구어 낸 바게트 빵들과 신선한 과일들로 아침식사를 풍성하게 해결하였다. 해수욕을 하루 더 하느냐, 미술관을 돌아보느냐 하는 문제로 우리들끼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미술관을 둘러보자는 딸의 의견을 거들어 간신히 아들놈을 설득했다. 교과서에서 잘 나오는 샤갈과 마티스의 그림을 지척에 두고도 못보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일단 숙소에서 나와 니스 역으로 가서 무인 락커에 짐을 맡기고는 시미에(Cimiez)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해안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한적한 마을은 중세도시를 연상케 하는 크고 작은 저택들이 있었고 파스텔 빛 건물들은 올리브와 삼나무로 둘려 쌓여 그야말로 맑은 느낌을 주는 조용한 동네였다. 올라가는 언덕길가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들이 우리가 묶고 있는 해안 쪽 호텔보다 더 가격이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관광 시즌이라 숙소를 구하지 못하게 될까봐 인터넷을 통하여 미리 예약했던 것을 후회했었다. 물론 안전하게 숙박은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숙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 때도 있었고 예상보다 못한 숙소시설에 약간은 실망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에겐 결코 권장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좋지 않았다. 동네의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샤갈(Chagall, Marc 1889~1985) 미술관은 잘못하면 지나쳐 버릴 정도로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미술관은 지중해 지방에서 자라는 전형적인 나무들인 소나무, 백리향, 올리브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16세 미만은 어린이로 인정되어 아이들의 관람료는 무료였고 나 또한 국제학생증을 미리 만들어 가지고 갔던 터라(현재 석사과정중이다) 학생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밝은 노랑색이 인상적인 태피스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태피스트리 뒤에 위치한 메인전시실은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 12점이 걸려 있었으며 책으로만 봐왔던 낯익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붉은 색이 주조를 이루는 '노래 중의 노래(1958-1966)' 다섯 편 연작은 성서의 인물을 주제로 하여 그린 것이었지만 에로틱한 면을 띠었으며 성서 자체 보다는 인간의 삶, 사랑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았다. 니스의 하늘과 바다. 태양과 색채에 대해 깊은 인상과 자극을 받은 나에게 샤갈의 작품들은 빛의 의미를 한번 깊이 되새겨 보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창세기,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청색과 녹색이 주조색이고 그 색들 사이에 옥색이 자유스러운 흐름을 가지고 유연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니스의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리고 싱그러운 옥색의 느낌이 샤갈의 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듯 했다. 샤갈미술관에서 시미에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면 마티스미술관이 있다기에 우린 또 걸었다. 생각보다 좀 멀었고 이제 아이들은 조금씩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건물외관은 푸른 하늘과 녹색의 숲과 어우러져 마티스의 그림에서와 같은 원색의 조화가 느껴졌다. 마티스는 1917년부터 195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니스에서 살며 코트다쥐르의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서 예술세계를 펼쳤다. 1890년대에 제작한 초기의 정물화 작품에서부터 말년의 오려내기 기법으로 제작한 대작에 이르기까지 마티스의 미술세계를 조망 할 수 있다.

마티스[Henri Matisse, 1869.12.31~1954.11.3]미술관은 여러 유파의 작품을 모두 전시한 종합 미술관과는 다르게 작가 특유의 개성이 느껴지는 미술관이기도 했다. 또한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마티스의 작품4)을 접할 수가 있었다. 제 8 전시실이 인상적이었는데 '댄스' 시리즈의 드로잉 작품들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필요한 과정을 설명하였고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여러 방식으로 표현을 시도한 다양한 작품들은 그가 예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니스에는 마티스,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등 유명화가들의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곳은 신으로부터 맑고 화창한 하늘과 대지와 공기를 약속 받았으며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쫓아 마티스, 샤갈, 피카소, 고흐, 르누아르 등 많은 화가들이 니스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리라.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잔잔한 지중해와 결코 강렬하게 내리쬐지 않는 니스의 축복받은 태양은 그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선사하였을 것이며 과거 그들의 작업실이 오늘날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미에 언덕을 올라가면서 이미 많은 힘과 시간을 소진했고 파리 행 야간열차를 타야만 했기에 아쉽지만 다른 미술관들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 하였다. 니스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20여분을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니스 항구행 버스를 탔다. 그곳의 노천카페에서 아이들은 콜라, 난 맥주 한잔으로 지친 몸을 쉬면서 두 시간 남짓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다시 구상하기 시작했다. 여행가이드 책을 보던 중 딸아이가 항구근처에 또 다른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우리는 합의하에 그 곳을 향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냐하면 폐장 시장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었다.

4) 68점의 유화와 오려내기 작품, 236점의 드로잉, 218점의 판화, 57점의 조각

근현대 미술관(Muse d'art moderne et d'art)은 이름과 걸맞게 외관부터가 현대적이었다. 직각의 엄격함과 정확함에 곡면이 주는 부드러움이 잘 조화된 건물이었다.

근현대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 내부에는 그 날의 피로를 잊게 해 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현대 작가들이 표현한 미국의 추상미술, 미니멈 아트, 신리얼리즘과 팝아트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작품들하고는 사뭇 많이 틀려서인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2층으로 올라가 시작되는 4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멀쩡한 자동차 한 대를 완전히 찌그려 뜨려 세로로 벽에 걸어 놓은 특이한 설치 작품에 아이들은 환성을 질러댔다. 폐장 시간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품과 함께 느끼고 같이 호흡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2층의 5전시실의 콜라쥬 작품들. 6전시실의 이브 클렝5)의 작품들 3층의 엔디워홀, 스텔라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현대 대표 작가들 또한 눈에 띄었지만 폐장시간이 다가오기에 대충 훑어보고는 마지막 전시실로 갔다. 그곳의 유쾌한 설치 미술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거울에 반사된 우리의 모습이 작품에 투영 되면서 마치 내가 작품안의 인물이 된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게 하는 거울작품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쪽저쪽 사방에서 펼쳐지는 신기한 작품들을 향해 우리는 뛰어다녔고 우리의 즐거움을 아는 듯 안내원 또한 미소를 머금은 채 폐장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미술관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아들 녀석의 입에서 "엄마! 난 현대 미술이 좋아." 란 말이 튀어나왔고 비로소 미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아들의 말에 보람을 느꼈다. 파리 행 야간 열차 시간이 40분 남짓 남았기에 우리는 니스역 앞의 '아시아 쾌찬점' 이라는 중국식 뷔페 식당을 가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그 곳에서 오랜만에 동양식으로 포식을 할 수 있었다.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의 컴파넌트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 피곤함에 금방 잠이 들었고 기차는 어느덧 야자수가 어울려져있는 칸느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 풍경은 미술관 이곳저곳에서 본 그림들과 겹쳐서 영상처럼 창밖으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가족은 항상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자칫 멀어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엄마 아빠로서 혹은 아내와 남편으로서,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서, 누나로서, 동생으로서 말이다. 당연히 그곳에 존재한다는 절대적 존재감은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가끔은 그 소중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상대방에 대한 존재감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힘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투정부리기도하고 또는 개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면서도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공동의 궤적을 그리면서 우리는 달려왔기 때문이다. 함께 곤경을 겪기도 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다 보면 가족간의 '팀웍 다지기' 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이해와 유대는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여행기를 쓰고 있던 나에게 아쉬움이 있는지 큰딸이 소리치듯 말한다.

"엄마! 다음 여행 때는 박물관 중심으로 돌아 다녀 봐요. 사전에 준비도 많이 해서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어요!"

5) 쪽빛 해안의 푸른색을 자신만의 독특한 푸른색으로 재창조한 이브 클렝 역시 니스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샤갈, 에펠 탑의 부부 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1938–39년, 캔버스 유채, 148×145cm
샤갈, 에펠 탑의 부부 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1938–39년, 캔버스 유채, 148×145cm
근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 — 작품 속에 들어간 듯한 착시 효과를 느끼게 하는 현대미술
근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 — 작품 속에 들어간 듯한 착시 효과를 느끼게 하는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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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나의여행기 / 회화지 15호(2007) 54–57쪽 · 원본 PDF 54쪽 ↗

이 지면의 도판

마티스, Blue Nude IV, 1952, Gouache on paper cut out, Musée Henri Matisse, Nice니스의 미술관들마티스, Blue Nude IV, 1952, Gouache on paper cut out, Musée Henri Matisse, Nice
샤갈, 에펠 탑의 부부 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1938–39년, 캔버스 유채, 148×145cm니스의 미술관들샤갈, 에펠 탑의 부부 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1938–39년, 캔버스 유채, 148×145cm
근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 — 작품 속에 들어간 듯한 착시 효과를 느끼게 하는 현대미술니스의 미술관들근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 — 작품 속에 들어간 듯한 착시 효과를 느끼게 하는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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