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햇볕은 강렬했다. — 마치 고흐의 인생처럼…
지난 여름 나는 두 번째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명목은 에딘버러에 유학하고 있는 아들내외를 보고 싶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또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여행을 한 것이다. 많은 준비를 했었다. 가방을 못 찾았을 때, 길을 물을 때, 물건을 살 때,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에 사용 할 수 있는 말들을 외우고 또 외우고 하는 영어 회화공부를 했다. 그리고 여행가이드 북을 열심히 읽었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했는데 턱 없이 부족한 준비였다.
❀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여행자보험을 들고 전화카드를 샀다. 그리고 면세점에 들어가 실컷 눈요기를 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이제부터는 무려 10시간이상을 이코노믹이라는 좁디 좁은 의자에 앉아서 가야한다.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통로를 열심히 걸어 다니고 간간히 준비된 간식도 꼭 챙겨먹고 잠도 자두어야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이제는 에딘버러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눈치껏 찾아서 안전하게 탑승을 하였다. 약 두어 시간을 달리니 눈 밑으로 하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니 다름 아닌 양떼들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여 입국심사를 받고 들어와 보니 앗뿔싸 인천에서 붙였던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매다 직원의 안내로 국내선 도착지점에 가보아도 감감 무소식, 마침 그곳까지 들어온 아들내외와 일년 만에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결국 가방을 다음 날 받기로 하고 집에 가는 이층버스에 올라탔다. 밤 9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하늘은 파랗다. 백야의 끝자락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시차고 무엇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잠을 잤다. 공항에서 찾지 못했던 짐이 다음날 도착하였다. 걱정했던 물건들도 무사히….
영국령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이곳 에딘버러는 8월이면 공연을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 이미 보름 전부터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이고 곳곳에서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로얄마일이라 불리는 거리는 홍보포스터로 넘쳐나고 마치 인종전시회를 하는 듯, 세계인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비보이공연팀을 거리에서 만나니 그 반가움이란…… 화이팅을 외치고 눈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첫 번째 가는 행선지는 스코틀랜드 북쪽 지방인 하일랜드, 상상을 초월한 이곳의 기후와 풍경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특히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스코티쉬들,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타탄체크의 고장, 우리의 아픈 역사만큼이나 아픔을 지닌 그들에게 나도 모르는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에딘버러에서 5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킹크로스역에서 만난 헤리포터, 그리고 영국박물관의 어마어마한 유물들 속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한국관, 차이나타운, 너무 흥겹게 관람한 '맘마미아' 공연은 중년을 지나 노년을 바라보는 부부들이 공연내내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눈물을 훔쳐내기도 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로얄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본 썸머컬렉션에서의 진지한 관람모습을 보면서 문화선진국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건설 후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는 빅벤시계탑과 국회의사당, 탬즈강을 가로지르는 밀레니엄다리를 건너 관람한 테이트모던 갤러리, 웨스트민스터사원, 우리의 청학동과 같은 포토벨로 거리에서의 눈요기는 즐거움이었다. 하이드파크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겼다.
영국의 마지막 밤에는 런던의 야경을 보았다. 테임즈강주변의 빅뱅과 국회의사당, 런던브릿지, 런던아이 등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저가항공만 운행한다는 갯트윅공항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탔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밤에 보았음에도 예술적 감각이 넘쳐난다. 다음 날 람블라스거리를 걸어서 바닷가에 우뚝선 콜롬버스상을 보았다. 한가하게 거리를 구경하고 가우디가 처음으로 만든 레이알광장의 가로등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물론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지만…. 구엘저택 까사밀라. 까사바트요, 구엘공원등 가우디의 수 많은 작품 중 내 숨을 멈추게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본 기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생전에 완성한 탑을 보면서 그의 높은 실험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밤이 새도록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과연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내 생전에 완성이 되어 내가 다시 이곳을 구경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느 영화 감독이 자기 작품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신이시여 이것이 진정 내 작품이란 말입니까' 라고 했다는데 정말 신이시여 가우디가 인간입니까? 아니면 신입니까 하고 묻고 싶었다.
시체스 해변의 밀가루 같은 모래사장, 그리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특히 바다 물색은 딱히 어느 색이라고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하며 아름다웠다.
바로셀로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남부 프랑스 아를 행 기차를 탔다. 기차 속에서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에 한껏 부러움을 느끼면서 이제라도 이러한 여행을 할 정도의 건강이 나에게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 스페인 국경을 넘어 프랑스 땅에 들어왔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이곳은 여권 검사도 없이 국경을 간단하게 넘을 수가 있었다.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서 역에서 한 시간 가량 있으면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아를의 햇볕은 너무 강렬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감개무량했다. 내가 고흐를 만나다니…….시내 외곽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하늘은 가슴이 시리도록 파랗다. 곳곳서에 고흐를 느낄 수 있다.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그와 함께 에소프레소를 마시고, 강가에서도, 아름다운 화원에서도, 도개교에서도 그를 만났다. 아쉽게도 노란 집에서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이곳 아를은 로마시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곳으로 지금도 로마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원형경기장도, 목욕탕도 , 특히 원형경기장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어린 소년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곳에 와서 조용히 골목골목을 스케치하고 싶었다.
아를을 떠나기는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아비뇽에 대한 기대 또한 컸다. 아비뇽역에서 내려 숙소를 찾으려니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친절한 시내버스 기사 덕분에 시내버스 종점에 위치한 일본식 숙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본사이라는 이름의 이 호텔은 벽에 TV가 매달려있고 덩치가 큰 사람은 몸을 구겨야 들어갈 수 있는 샤워실, 세면대,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일본인들의 알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아비뇽은 특이하게 구도심은 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유럽 어디나 마찬가지로 구도심의 거리는 좁디좁지만 모든 거리가 돌로 포장이 되어있고 언덕길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작은 강이 흐른다. 이곳 아비뇽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유럽여행 중 유일하게 갤러리를 들리지 않고 충실하게(?) 관광객의 자세로 아비뇽의 거리 거리를 구경하였다. 이곳에서 약 한 시간 반가량 버스를 타고 간 악생프로방스는 분수의 도시였다. 골목골목에도 아름다운 분수가 있었다. 아주 작은 도시인 이곳에서도 쟈코메티, 세잔, 그리고 피카소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가난한 유학생인 아들내외는 절약생활이 온몸에 배어있다. 마트에 가도 하루가 지나서 가격이 싸게 쓰여있는 물건에 먼저 눈길을 보내고…… 여행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를 볼 수 있었던 아비뇽에서도 언제나 마트에 들리면 싸고 양이 많은 물건을 찾아서 쇼핑을 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한편 대견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모처럼 한가한 일정을 보낸 아비뇽을 떠나 파리를 향했다. 모든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한 파리. 말로만 듣던 TGV를 타고 파리를 가는 길목은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그리고 해바라기 밭, 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시골집들, 좀처럼 산을 보기 힘든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지평선이 보인다. 마치 세잔의 풍경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고흐의 삼나무 밭과 해바라기를 보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장소인 파리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춥다. 방금 전에 떠난 아비뇽과는 확연하게 다른 날씨이다. 지하철안은 매우 좁고 지저분하고 끈적거렸다. 서울의 지하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거리에는 나뭇잎들이 떨어져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오니 한여름에서 금새 깊은 가을로 빠진 것 같다. 숙소는 여느 유럽의 숙소와 마찬가지로 꾸불꾸불 미로같은 계단을 한없이 오른 뒤에야 방이 나왔다. 여행내내 트리풀룸에서 같이 지내다 싱글룸으로 바뀌니 아들내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서 홀가분 했지만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욱이 맨 꼭대기 층이어서 빗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밤을 꼴딱 샜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지하철을 타고 세느강 변을 걸어 루브르박물관에 갔다. 듣던대로 인산인해, 유리피라밋을 한바퀴정도 돌아설 만큼 긴 줄이었다. 넓디 넓은 루브르광장과 건물곳곳에 있는 조각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할 만 했다. 드디어 9시 정각 루브르광장의 분수가 물을 뿜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내 눈앞에 미켈란젤로의 '노예상', 헬레니즘시대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상' '모나리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 '메듀스호의 뗏목' '나폴레옹 대관식' '레카미에 부인상' 등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의 아파트를 보면서 허무한 마음까지 들었다. 반나절 이상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이 정도로 간단하게 루브르를 보고 나오는 것은 이곳에 대한 모독(?)이란 생각을 했었다. 루브르광장 맞은편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 이곳과 일직선상에 있는 개선문, 그리고 콩코드광장, 그곳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상제리제 거리를 보면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하면서 파리의 참새와 잠깐의 망중한을 즐겼다. '오! 상제리제'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들른 미술관에서 뜻하지 않게 쿠르베의 작품들을 만났다. 그리고 피사로, 시슬레와 모네, 부르델, 무어, 로댕의 작품들을 보았다.
햇볕이 나더니 이내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고 바람이 불며 추워진다. 이곳에 며칠 머무르며 한여름인데도 트랜치 코트에 목도리, 부츠를 신고 장갑을 끼고 다니는 파리지엥들의 옷차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루젤 개선문에서 빤히 보이는 이곳 개선문까지는 아름다운 상제리제 거리가 있긴 하지만 굉장히 멀었다. 개선문 꼭대기를 가기위해 무려 50m나 되는 계단을 올라가 내려다본 12개 방사선모양의 거리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상제리제거리, 빅토르위고거리를 제외한 모든 거리는 장군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단다. 빅토르위고 거리를 걸어서 에펠탑을 가는 도중 파리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또 한번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거리의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선 줄도 에펠탑을 올려다보고 여기저기에 있다는 소매치기(?)들을 신경쓰다보니 어느새 우리차례가 되었다. 300m높이의 탑을 올라가기가 처음에는 겁이났다. 너무 높아서…… 그곳에서 내려다본 파리는 감탄이었다. 특히 세느강의 아름다운 모습이란………늦은 시간에 에펠탑에 불이 들어오고 거리는 더욱 아름다웠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에펠탑을 뒤로하고 한참 걷다보니 갑자기 주위가 환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에펠탑이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것이다. 하루에 두 차례 밤10시와 12시에 반짝이 등이 켜진단다. 그 광경을 지켜본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찾은 레스토랑은 에펠탑을 보러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 웨이터의 상냥한 미소와 유모어 넘치는 친절함은 오래오래 머릿속에 남아있다.
지난밤 늦은 귀가로 오전 10시 넘어서야 오르세미술관에 도착하였다. 역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이곳은 고전주의부터 19세기 미술까지 시대별로 관람하기 좋게 전시가 되어있었다. 특히 쿠르베의 대작들은 보는 이를 압도하였다.
밀레, 고흐, 세잔,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시슬레, 도미에르, 폰아방파, 나비파,등등 교과서에서, 그리고 목마르게 한국에서 하는 특별전시에서 봤던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며 감탄, 감탄 또 감탄하였다. 그리고 운 좋게도 특별전으로 마련된 '세잔에서 피카소까지' 라는 전시도 볼 수 있었다. 또 마이욜의 '지중해' 라는 작품도 보는 행운이 있었다. 물론 다른 조각가들의 작품도 보았지만……..오래오래 작품을 감상하고 조금 늦긴 했지만 노트르담사원에 갔다. 오래전에 본 '노트르담의 곱추' 란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라는 여배우가 주연한 매우 어린나이에 본 영화였지만….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 에딘버러성에서도, 스테인드글래스화가 인상적이었지만 이곳 사원의 스테인드글래스화도 정말 아름다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곳에서 나와 여행책자에 소개된 먹자골목을 찾아서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중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에 갔다. 실은 아들이 자장면을 먹고 싶다하여 중국식당을 찾다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마구잡이로 들어간 곳이다. 한국이라면 별 맛도 아닌 요리에 녀석은 감탄을 하며 맛있게 먹는다. 숙소에 오는 길에 파리시청사 앞의 분수가 예뻐서 잠깐 앉아있는데 바람기 많은 듯한 프랑스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젊은 여자를 보고 실은 유부녀인 내 며느리를 보고…… 어디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2002월드컵 이야기를 꺼내며 한국 때문에 프랑스 팀이 졌다며 혀를 끌끌거린다. 이 이야기는 아비뇽에서도 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그때의 슬픈(?)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 베르사이유궁전에 왔다.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듣던대로 베르사이유궁전의 정원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원 곳곳에 마치 숨바꼭질 하듯이 숨어있는 분수들, 일렬로 서있는 수많은 나무들, 보트를 타고 한 시간동안이나 노를 저었지만 끝까지 가지 못할 만큼 넓은 호수, 마리 앙뜨와네트는 이 길들을 드레스자락을 끌고 시종들이 받쳐주는 양산을 받으며 산책을 했겠지. 자신의 불행한 운명도 모른 채……. 거울의 방은 탄성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멋있는 정원과 집이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 부귀영화라는 것이 하룻밤의 꿈인 것을…..
여행자의 바쁜 시간은 시계도 멈추는 것 같다. 오후엔 부랴부랴 서둘러서 오랑주리 미술관엘 갔다. 오랑주리미술관에서 만난 모네 아저씨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신이었다. 전시실 내 벽면을 가득채운 수련은 그의 나이 78세 때의 작품이란다. 시력을 거의 상실한 채 사후에 일반에게 공개할 것을 조건으로 그린 작품을 보면서 넋이 나간 채 오래오래 앉아서 모네를 만났다.
파리의 날씨는 듣던대로 변덕스러웠다. 비가내리다, 햇볕이 나고, 춥고, 다시 더워지고…….밤새 비가 내렸다. 천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잠을 설쳤다. 늦은 아침까지 비가 와서 오늘 일정을 어쩌나하며 늦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뒹굴뒹굴 오랜만에 여유를 부리고 있다가 다시 여행자의 자세로 돌아와서 파리시내의 유명한 재래시장에 갔다. 비가 온 탓인지 상인들은 늦은 아침인대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청바지 한 개를 신문지 위에 놓고 손님을 부르는 사람, 한국에서는 쓰레기취급 할 것 같은 금이 간 그릇, 때가 꼬질꼬질한 중고 옷들, 족히 수 백 년은 됨직한 고가구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야바위꾼까지 합세를 한다. 이곳 포장마차에서 먹은 파르페의 맛도 오래오래 입안을 즐겁게 했다.
오후에는 로댕갤러리에 갔다. 정원과 실내에는 로댕의 수많은 작품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에는 로댕의 애인으로 더 유명한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도 같이 전시가 되어있었다. 여행 내내 갤러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지만 항상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 갤러리였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은 갤러리도 항상 사람들의 발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의 문화생활에 질투를 느낀 적도 있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26일간의 일정들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한국에 간다. 그간 혼자 고생했을 남편 생각도 나지만 여행을 끝낸다는 것이 더 서운하다. 에딘버러, 하일랜드, 런던, 바로셀로나. 아를, 아비뇽, 그리고 파리….. 곳곳의 풍경들, 가는 곳 마다 들린 갤러리, 수많은 그림, 조각, 공예품들 하나씩 떠 올려본다. 잊지 않으려는 듯이….
몽마르트언덕에 올라 오래된 카페에 앉아 피아노연주를 들으며 먹은 에소프레소, 그리고 못 먹고 오면 아쉬울 것 같아서 다음 날 다시 오른 몽마르트에서 먹은 퐁듀, 아를의 인도음식점에서 먹은 전기통닭구이, 에딘버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먹어 본 엥구스 스테이크, 그리고 그곳 전통음식이라는 하기스등등…… 특히 바로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시체스 해변의 누드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밤새 한 잠도 못 자게 한다. 파리에 도착한 날도 비가 오더니 떠나는 날 다시 비가 내린다. 낙엽이 길바닥에 뒹굴고 날씨는 마치 초겨울을 연상케한다. 춥다.
10시간 넘는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다시 시계를 10시간 빠르게 돌렸다. 오늘은 하루가 14시간이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숨이 막히게 덥다. 그래도 이곳이 좋다. 모두가 같은 모습, 오랜만에 듣는 우리말 등등, 그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미안합니다.' 했다가 'I'm sorry', 'pardon'하던 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원 게재: 전북회화-나의여행기 / 회화지 15호(2007) 62–67쪽 · 원본 PDF 6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