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며
이 성 자
술을 좋아하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좋아하는 민족은 흥한다. 이 말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술 보다는 차를 권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차의 깊은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사회는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한다.
말차(抹茶)라고 하는 가루로 된 차를 마셔 보셨나요. 말차는 다완에 차 잎을 갈아서 만든 가루차를 버금이 일어 날 때까지 풀어서 마시는 것이다. 1통을 사면 수개월은 마실 수 있다. 하루 1잔 씩 마셔도 좋으니까요. 차는 그 찻잔이라고 하는 다완을 만지고 눈으로 보면서 그 맛과 향에 취하게 되니 좋고, 먹는 시간 내내 담소를 나눌 수 있어 좋고, 건강에 좋으니 일석삼조입니다.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먹지 못하는 게 차입니다. 돈이 있으면 뭐 합니까. 풍류를 모르고 세월만 갑니다. 마음이 한가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차의 종류별로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튼 차 마시는 사람은 마음을 수련하는 자세가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마음속에 평안과 신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詩)와 서(書)와 화(畵)를 다 잘하면 삼절(三絕)이라고 했습니다.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쓰신 '조용헌' 님에 의하면 선암사에 삼절이 있다고 했어요. 첫째는 원통전 뒤쪽의 600년된 매화이며, 둘째는 뒷간이라고 하는 해우소를 말하며, 셋째는 지허 스님의 차라고 했습니다. 지허스님은 14살 때 선암사에 출가해서 50년 동안 다각(茶角;절에서 차를 담당하는 소임)을 맡아오면서 전통의 맥을 이어온다고 합니다. 차를 좋아하신 분이 한분만 있는 것이 아니죠. 이름이 알려진 것은 영화감독 임권택에 의하여 알려졌다지요. 초의선사는 물론 다 아시고, 고산 윤선도, 추사 김정희 등 문인 묵객들이 즐겨 드셨죠. 다음은 초의선사의 시 石泉煎茶(돌 샘물로 차 끓이다)이다.
天光如水水如烟 (천광여수수여연)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이내 연기같이 피어오르고 此地來遊已半年 (차지래유이반년) 이 땅에 와서 놀은 지 이미 반 년 良夜幾同明月臥 (양야기동명월와) 명월과 함께 누워 지내던 좋은 밤이 몇 번이던가 淸江今對白鷗眠 (청강금대백구면) 맑은 강에는 지금 조는 백구를 마주하구나 嫌猜元不留心内 (혐시원부유심내) 의심하는 것은 본래 마음에 없으니 毁譽何曾到耳邊 (훼예하회도이변) 명예를 훼손하는 말이 어찌 귀에 들어올까 袖裏尚餘驚雷笑 (수리상여경뢰소) 소매 속에는 아직도 사나운 웃음소리 남아 있으니 倚雲更試杜陵泉 (의운갱시두릉천) 구름에 의지하여 두릉 샘물로 또 차 끓여요
차의 맛이 이 풍류를 알고 마시면 더 좋은 것이다. 이에 막사발로 치부하는 다완에 담아 마시면 어떨까 한다. 일본에선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고 해서 떠들썩하잖아요. 외형적인 특징은 육각형의 氷裂(빙렬)인 유약의 균열과 굽 부분에 눈물이라고 하는 유약의 덩이가 매화피의 갈라진 모습이고, 유약이 묻지 않은 태토(胎土) 부분에 정착된 것으로, 찻물이 들어가 검어진 빛깔, 비파 빛깔의 표면, 몸체의 가벼움, 몸체를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 등은 천하게 여길이도다완 수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 도자기가 명물로 일본에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은 그 질박한 형태미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형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찻잔으로서의 기능성에 더 큰 의미도 있다. 너무 지나치면 몸에 해로울 수 있는 말차(抹茶)의 '타닌' 성분의 일부를 바깥으로 배출시키는 기능성이 있다. 도자의 몸체에 기공이 많아 '타닌' 성분을 밖으로 배출시킨다는 점은 수분이 안과 밖으로 서로 통한다는 점이다.
이 다완이 고려다완이라고 해서 일본에서 좋아 했던 것이다. 사실 조선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이야기 이다. 고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시대의 브랜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도공이 임란때 남원 등에서 일본으로 끌려갔고, 이후 일본의 도자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의 모든 막사발에 해당하는 도자기를 이도다완이라고 했다. 이는 기자에몬 이도 다완이라고 하는데 기자에몬은 그 옛날 소장자의 가문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본 국보이다. 그래서 일본사람이 모두 좋아하게 되었지만, 가장 아끼던 사람은 센노 리큐(千利休, 1521~1591년)라는 선사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할복자결한 사람이 이 스님이다. 이 분은 일본 다도를 완성했다고 하는데 엄격성에서 간소한 의식을 정하기도 하였다.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다다미 3장, 2장의 작은 방에서 당(唐)으로부터 들여 온 다도구를 사용하여 다회를 개최하는 습관이 되었고, 다실에 꽂는 꽃도 화려하지 않게 계절의 들꽃을 가볍게 꽂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고, 봄과 겨울에는 엷은 동백꽃을, 여름과 가을에는 무궁화로 장식했다. 차 끓이는 법과 차 요리, 복장, 차회에서의 휴대품 등에 도 많은 개혁을 했다.
센노 리큐는 다실에 들어설 때 그 누구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문을 만들었다. 이 분은 선사이면서 진정한 다인(茶人)이었다. 그는 자득의 경지를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꽃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두메마을 봄 풀을 보여주리." 이 고려다완은 일본인에게 신앙이요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우리에겐 이제 생활의 지인이요 웰빙의 주신이라. 현란한 생활에서 술을 멀리하고 찌든 일을 제쳐두고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며 평안과 건강을 챙기면 어떤가요.
이 성 자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전라북도 미술대전 특선 등 공모전 다수 입상, 한국차문화협회 익산지회 명예원 회원 2007 전주 전통문화도시 홍보위한 들차회 참가, 동심원 헌공다례 들차회 참가, 제5회 전북청소년 차예절 경연대회 들차회 참가 전주 덕진 연꽃축제 들차회 참가
원 게재: 전북회화-여적 / 회화지 15호(2007) 72–73쪽 · 원본 PDF 7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