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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회화-여적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이진숙(회원)

먼저 이 사람을 30여년이 넘는 세월 변함없이 교직에 임할 수 있도록

외조해주신 남편을 소개하겠습니다.

2년여 전 30년간 다닌 농촌공사를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장동에 있는 작은 터전에서 텃밭을 가꾸고 풀과 씨름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나에게는 지금 에딘버러에서

글래스와 쥬얼리를 전공하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서울IBM에 다니며 예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딸과

자랑스러운 사위, 손자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 또한

나를 편안하게 교직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랑하는 식구들입니다.

처음 교직에 들어설 때는 나에게 이런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서 어느 덧 33년의 세월을 보내고 이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채씨 기름을 팔아서 수업료를 내겠다던 아이들, 준비물이 없어서 꾸중을 들을 때 교단까지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보다 더 큰 키로 내려다보던 철없던 아이, 물론 지금은 40이 넘은 장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을 만난 것은 나에게는 큰 기쁨이 예요, 하며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에 감사한다는 어린 학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은 같이 나이를 먹어가며 우연하게도 같은 모임에 참석하는 제가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초임지에 있을 때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하여 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격려한 덕분에 내리 3년을 한달도 빠짐없이 종합우수학급을 했던 일, 신혼 초 학교를 옮기려 할 때 나이 많은 교장선생님께서 신혼은 떨어져 사는 것도 좋은 추억이니 제발 남아달라고 부탁했던 일, 작은 읍내에 있는 공립학교보다 훨씬 월등한 고교입시 성적을 내서 그 학교 동문들이 모교교장을 항의 방문했던 일, 학교를 옮겨와서 많은 문제를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보람있는 일, 10여년 전부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모인 미술교사들과 만든 전통미술교육연구회가 올해로 10회째 전국청소년 전주 한지 미술제를 개최하며 미술시간에 우리종이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로 인해 많은 지역 언론과 뜻있는 분들의 협조를 얻고 또한 바다건너 중국시안82중학과의 교류가 이제는 섬서성 전체의 학생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한중교류미술제가 성립이 된 일등,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오랜 세월 붓을 놓고 있다가 지난 15년 전부터 그림을 다시 시작하며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국제 교류전을 갖고 전북회화회라는 전북지역에 있는 중견 한국화가들의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한 일등 개인적으로도 참 좋은 시절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무엇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학급을 맡아서 하얀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입니다. 형무, 락진, 재영, 석현, 수민, 호경등 많은 아이들 이름이 떠오릅니다. 개중에는 벌써 중학교 학부형이 된 아이(?)도 있습니다. 단어 시험에서 틀렸다고, 가감승제를 못한다고, 한글을 잘 못 읽는다고, 지각하였다고, 참 많은 아이들이 혼나고 기합을 받기도 하고…..지나간 세월이 추억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이제는 지난 30여년의 영화가 끝이 나려고 합니다. 흔히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끝이라는 자막도 오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자막을 통해서 오르는 글자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저도 이제 자막에 오르는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며 제2의 인생을 사작하렵니다. 정말 어떤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질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약간은 예상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약간 넓은 뜰을 가진 아주 작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밭에는 고추, 상추, 시금치, 옥수수도 심고 밭에 있는 잡초도 뽑고 때론 테라스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책도 읽으렵니다. 그리고 가끔은 마당을 뛰노는 손자의 재롱도 보겠지요,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많은 흰머리가 나서 언젠가는 온통 은발로 물들면서 나이가 들어가겠지요. 그리고 한가하게 여유롭게 노년을 즐기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오래 전 아주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든 제2의 인생입니다.

30여년동안 혹 나로 인해 아픔을 겪었다거나 무시를 당했다거나 또는 올바르지 못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일이 있다면 용서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학생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하고 싶습니다. 남보다 하나만 적게 가지십시오, 그리고 남보다 휴지 한 장만 더 줍는 여유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완산 중학교의 많은 발전을 진심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2007.08.31.이 진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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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

원 게재: 전북회화-여적 / 회화지 15호(2007) 74–75쪽 · 원본 PDF 7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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