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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이론

한국 초충도의 회화사적 고찰과 현대적 모색

이봉금(전북회화회 회원)

● 초충도의 개념

초충(草蟲)이란 용어가 미술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06년 북송시대(北宋時代) 활동했던 황휴복(黃休復)의 『익주명화록(益州名畫錄)』에서 이다. 그 이전에는 충금(蟲禽 : 곤충과 새), 승접(蠅蝶 : 벌과 나비), 봉선(蜂蟬 : 벌과 매미)과 같이 곤충 하나하나를 이름 하였으며, 또는 화조(花鳥)라는 화목(畫目)에 여러 가지 곤충, 풀, 꽃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충도는 일반적으로 일년초나 다년생의 작은 풀과 꽃 그리고 그 주위에서 친화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풀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그것이 가지는 생명력을 이상(理想)으로 삼고 정적인 의미의 풀과 동적인 의미의 곤충을 회화적으로 조화시켜 표현한 것이다. 파충류를 곁들이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땅위에 새들도 함께 그려 넣어 넓게는 화조화의 범주에 넣기도 하지만, 새보다는 곤충이 주된 소재이기에 초충도(草蟲圖)또는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라 부른다.

대부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초충도의 작은 소재들은 사생(寫生)에 의해 화폭에 옮겨지는 일이 많았고, 형태보다는 이들 소재가 주는 의미에 중점을 두고 그려졌다. 초충도는 화본(畫本)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만나며 접할 수 있는 눈에 익고 친숙한 소재의 식물과 곤충들이기에 쉽게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초충도는 산수화나 사군자에 비해 훨씬 더 장식적이고 실용적인 그림으로, 지식층인 문인화가 보다는 직업화가의 전유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문인화가들이 먼저 즐겨 그려 격조 있는 시적 분위기의 서정성 짙은 그림 세계를 이룩하였음은 현존하는 그림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 한국 초충도의 형성과정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농경문청동의기(農耕文靑銅儀器)의 앞면에 새겨진 나무위의 새를 통해 이미 화조화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부터 조(鳥), 화목(花木), 충(蟲)등이 문양의 소재로 등장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도자기의 문양과 실용적인 도형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문양 장식 미술의 일부분 일뿐 감상용 회화로서의 본격적인 발전은 고려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충도는 중국 회화와 교섭이 폭넓게 이루어지던 고려 시대부터 회화양식으로 성립되면서 활발하게 전개된 듯하다. 특히 고려 문종(文宗, 1047~1182)과 북송(北宋)의 신종(神宗, 1067~1087)연간, 북송의 휘종(徽宗, 1100~1125)연간에 회화교류가 활발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초충도는 고려시대 때부터 그려졌으리라 추측되어지나 그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진작이 없어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도자기나 자수에서 초충도를 발견 할 수 있기에 일반 회화양식에서도 초충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도판 01에서 보여 지듯 조선시대 초기 도자기(조선, 15세기, 높이 1.9cm, 폭16cm, 개인소장)와, 도판 02에서 초충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도자기들은 유교를 정신적 지주로 한 조선시대 도자기로 새하얀 백자이다. 티 없이 맑고 소박한 이 도자기들은 겸허하며 청빈하고 너그러운 우리 민족의 심성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이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단지 표면을 치장한 문양의 기능을 넘어 한 폭의 어엿한 작품이 되었다.

일찍부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우리의 민족감정은 자연스럽게 초충을 그 소재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곤충이나 동물의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에서 삶의 지혜까지도 터득하고 있다. 방대한 산수의 표현이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것 못지않게 초충도 역시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소 자연을 다루는 그림의 소재로, 가볍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성과 정답고 따뜻한 친근성 때문에 우리의 감정과 그림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화면에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초충도는 회화사에 있어서 고유하고 독특한 한 장을 차지하는 화목이 되었다. 또한 초충도는 한 결 같이 단순한 주제, 간결한 구도,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 산뜻하면서도 한국적 품위를 지닌 색채감각 등을 특징으로 지니고 있다. 초충도는 섬세함을 요하는 그림으로 일반적으로 사실적 묘사기법에 뛰어난 화원화가들이 많이 그렸다. 그러나 장식성을 뛰어넘어 문기 넘치는 문인화가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초충도를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초충도 화가로는 조선초기의 신사임당, 조선 중.후기의 옥산 이우,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조선말기의 장승업, 남계우 등을 들 수 있으며 근 · 현대 작가들로 이어진다.

● 우리나라 초충도의 부흥기인 조선시대의 초충도와 작가

조선초기에는 화조화를 비롯한 화훼나 초충류의 그림은 산수나 사군자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소극적으로 다루어 졌다. 그 이유는 선비 취향의 수묵화가 성행하였고, 경국대전의 예전(禮典), 취재(取才)조에 씌어진 도화서의 화원시취(畫員試取)에서는 죽(竹)이 일등, 산수(山水)가 이등, 인물(人物)과 영모(翎毛)가 삼등, 화초(花草)가 사등으로 정해진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화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화가들은 사대부 중심의 문인화가였으며, 그들의 미의식과 가치관이 지배적인 배경에서 수묵화나 사군자가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배경에서 초충도만을 전문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조선 초기에도 초충을 소재로 그린 작가들을 볼 수 있는데, 이암(1499~?)과 신사임당(1504~1551)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들은 관념적인 것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려 했던 우리 민족의 풍토적 미의식을 반영하며 독특한 특성을 갖는 양식을 전개시키며 한국회화가 자생적으로 독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중.후기 초충도에서는 조선초기의 중앙 중심구도와 함께 사선구도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사선구도는 대상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함으로써 운동감을 느끼게 하고 한쪽을 비워두는 여백의 활용으로 화면에 변화감이 생겨났다. 조선 중.후기 초충도는 다양한 기법의 작품이 그려져 전성기의 토대를 이루게 되는데, 조선초기가 초충도 형성의 시기라면 이 시대는 발전과 융성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김홍도는 모든 화재에 능하였으며, 화원출신으로 영모에 능했던 변상벽이 있고 수묵산수화에 새로운 경지를 펼친 정선은 세밀하고도 정교함과 관찰력이 돋보이는 생동감 넘치는 초충도를 여러작품 남겼으며 현재 심사정, 이함, 김인관 같은 문인화가들이 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심사정은 다양한 문인화 기법으로 초충도를 발전시킨 사대부 가문 출신의 문인화가이다. 또한 이들 대가들의 초충도는 당대와 후대의 화풍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생활풍습과 실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담아낸 풍속화는 사생을 통해 그려진 그림으로, 초충도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조선 말기는 근대화 과정을 겪는 시기로 정치적으로 불안정 하고 산업 · 경제구조 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개화사상으로 인하여 신분의 격차가 완화되면서 중인 계급의 문화적 활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조선 말기 회화의 특징 중 하나는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양화를 접하거나 배운 사람이 늘어나고 몇몇 그림에서 음영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화풍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 말기에 활동한 작가로는 조희룡, 남계우, 상고재, 조정규, 신명연, 죽향, 박기준, 서병건, 지창한, 장준량, 이교익, 장승업 등을 들수 있다. 이들 모두가 초충도 화가라고는 할 수 없으나 화훼초충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조선 말기의 초충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상고재의 초충도(도판 10)에서 느낄 수 있는 수묵화의 느낌을 살린 초충도와 장식성이 강한 나비그림이 등장한다. 조희룡의 군접도(도판 08)에서 보여 지듯 화제(畫題)가 그림의 상단에 위치하고, 그림의 중앙부분에 나비가 그림의 하단부분에 풀이나 풀꽃이 3단계를 이루는 3단계화법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 근 · 현대 한국화단에서 초충도의 모색

한국 회화사에서 근대적 창조의식의 서장은 18세기의 자주적 국화풍(國畵風)으로 말해질 수 있다. 19세기로 오면서 실학사상과 함께 그림에서도 현실상을 담은 풍속도와 사실풍경이 각광을 받으면서 중국화풍보다 우리의 그림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20세기초 1910년 이후에는 일제의 강압적인 한국의 정신문화 말살정책 속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화풍은 설자리를 잃게 되면서 양화의 흡수와 일본풍의 소화라는 모색을 통해 현대 회화의 화풍을 형성해 나갔다.

또한 1920년대에 이후 전통화단의 신진 세대들의 표현사고에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변혁이 일어나고 있음을 작품의 제재(題材)와 명제(命題)에서 엿 볼 수 있으며, 작품의 소재와 표현방식에서도 신자연주의 풍경화와 현실 정경(情景)의 인물화 등 새로운 화풍의 등장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현실적 문제에 알맞게 평범하고 구체적인 명제를 붙이고, 풍경화들은 새로운 구도와 현실시각의 자연묘사 및 색채표현으로 모색을 시도하고 있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회화사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전통화단은 일본적인 감성과 방법이 적극적으로 지양되는 반면 서구의 새로운 조형방법에 감화를 받은 경향이 대두되고, 전통적인 양식을 현대적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는 혁신적 경향의 추이도 현저해졌다.

6.25를 거치고 1960년 무렵 미술계는 정상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있었으며, 서구의 순수 추상미학의 유입으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국제주의적 조형발상과 현대적 표현사고의 비구상(非具象)이 또 하나의 경향적 화풍으로 등장해 다채로운 미술 양식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근대의 화풍에서 초충도는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였다고 보여진다.

근 · 현대로 오는 과정에서 초충도는 조선시대와는 표현방법과 재료사용에서 큰 변화를 보인다. 조선시대의 초충도가 초충의 상징성을 중심으로한 소재의 사실적인 묘사위주 그림이었다면, 근 · 현대에 나타나는 초충도의 경향은 전통적인 회화양식에 양화의 표현방식이 더해지거나, 작가 개인의 사상이나 심상이 소재의 다양한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초충도의 소재 범위는 넓어져서 풀과 꽃 곤충에 국한되지 않고 화훼, 기물, 인물등 초충과 함께 작가 개개인의 특징적인 소재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근 · 현대로 이어지는 초충도의 변화는 내용면에서 소재의 전통적인 상징성을 떠나 개인의 심중을 담거나, 향수를 떠올리는 기억의 편린(片鱗)등 사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표현 방식에서는 민화적 기법, 사실적인 묘사, 비구상적인 표현기법등 다양해진 표현방식이 보이고 있다. 또한 재료적 측면에서도 지, 필, 묵(紙, 筆, 墨)에서 벗어나는 현상도 나타나는등 현대적인 모색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대자연의 섭리와 질서가 함축적으로 집약된 초충도는 자연계의 조화를 특별한 애정과 깊은 관심으로 보았던 우리의 자연관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통회화에서 초충도에 나타난 미의식은 전통회화의 오늘날 현대화 과정에서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초충도의 회화성과 미의식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의 활성화로 한국화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계승이 재조명 되어야 하겠다. 또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은 인간중심이 아닌 자연중심의 미의식이며 무분별한 개발의 남용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정신일 것이다.

전통을 연구하는 것은 고전의 답습이나 모사에 있지 않고, 우리의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그 시대 문화를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에 와서는 탈장르, 퓨전 현상이 전 세계 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통과 고유문화에 대한 뿌리가 없는 탈장르와 퓨전은 가치관의 혼란과 역사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에 대한 연구와 현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적절한 절충은 문화적 자생력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며, 초충도의 현대적 모색은 한국의 회화사에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수록 도판

[도판 01] 청화백자초충문접시도 — 51쪽

[도판 02] 청화백자매조죽문호 — 51쪽

[도판 03] 정중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 52쪽

[도판 04] 신사임당의 초충도 — 52쪽

[도판 05] 겸재정선 〈초충용사〉 — 52쪽

[도판 06] 심사정 〈괴석초충도〉 — 52쪽

[도판 07]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도〉 — 53쪽

[도판 08] 조희룡 〈군접도〉 — 53쪽

[도판 09] 남계우 〈군접도〉부분 — 53쪽

[도판 10] 상고재 〈초충도〉 — 53쪽

[도판 11] 내고 박생광 — 54쪽

[도판 12] 이중섭 〈봄의 어린이〉 — 54쪽

[도판 13] 이왈종 — 54쪽

[도판 14] 윤형선 〈꽃이 나비를 향해 날아들듯〉 — 55쪽

청화백자초충문접시
청화백자초충문접시
청화백자매조죽문호
청화백자매조죽문호
화조구자도
화조구자도
신사임당 초충도
신사임당 초충도
정선 초충용사
정선 초충용사
심사정 괴석초충도
심사정 괴석초충도
황묘농접도
황묘농접도
조희룡 군접도
조희룡 군접도
남계우 군접도
남계우 군접도
상고재 초충도
상고재 초충도
박생광
박생광
이중섭 봄의 어린이
이중섭 봄의 어린이
이왈종
이왈종
윤형선
윤형선
이봉금 공존
이봉금 공존
초충도 화첩 도판 띠
초충도 화첩 도판 띠

  • 판독 참고: 52·53·54·55쪽 하단 판권 표기가 '2011년 통권 제18호'로 인쇄되어 있어 지면 오식으로 보입니다(50·51쪽은 '2012년 통권 제19호').
  • 판독 참고: 도판 03 캡션의 '정중 이암'은 지면 표기 그대로이며 '정중(靜中) 이암'의 호로 보입니다.
지면 보기 · 원본 6쪽PDF에서 열기 ↗
지면 1지면 2지면 3지면 4지면 5지면 6

원 게재: 회화이론 / 회화지 19호(2012) 50–55쪽 · 원본 PDF 50쪽 ↗

이 지면의 도판

청화백자초충문접시(도판 01) / 조선 15세기-청화백자초충문접시(도판 01) / 조선 15세기
청화백자매조죽문호(도판 02)-청화백자매조죽문호(도판 02)
초충도 화첩 도판 띠(상단)-초충도 화첩 도판 띠(상단)
정중 이암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도판 03)이암정중 이암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도판 03)
신사임당의 초충도(도판 04)신사임당신사임당의 초충도(도판 04)
겸재정선 〈초충용사〉(도판 05)정선겸재정선 〈초충용사〉(도판 05)
심사정 〈괴석초충도〉(도판 06)심사정심사정 〈괴석초충도〉(도판 06)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도〉(도판 07)김홍도단원 김홍도 〈황묘농접도〉(도판 07)
조희룡 〈군접도〉(도판 08)조희룡조희룡 〈군접도〉(도판 08)
남계우 〈군접도〉 부분(도판 09)남계우남계우 〈군접도〉 부분(도판 09)
상고재 〈초충도〉(도판 10)상고재상고재 〈초충도〉(도판 10)
내고 박생광(도판 11)박생광내고 박생광(도판 11)
이중섭 〈봄의 어린이〉(도판 12)이중섭이중섭 〈봄의 어린이〉(도판 12)
이왈종(도판 13)이왈종이왈종(도판 13)
윤형선 〈꽃이 나비를 향해 날아들듯〉(도판 14)윤형선윤형선 〈꽃이 나비를 향해 날아들듯〉(도판 14)
이봉금 〈공존〉(도판 15)이봉금이봉금 〈공존〉(도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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