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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북경 미술기행)

북.경.미.술.기.행 — 중국 현대미술의 요람을 찾아서…

이철규(전북회화회 회원)

모카베이징
모카베이징

표제면 발췌 (78쪽)

짧은 기간의 높은 경제성장으로 세계적으로 강국이 된 중국은 따산즈를 통해 미술분야에서도 세계강국으로 발돋움을 하려는 의지와 힘을 과시하고 있다. 푸념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만하는 기분이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본문

현재 세계미술시장에 막강한 화교자본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현대미술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생겨날까? 그 힘은 자본만으로 될 수 없는 터 중국미술을 떠받치고 있는 다양한 저변요소들–예술특구, 미술관, 화랑, 작가작업실, 전시회 등 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우진문화재단에서 역대 청년 작가 초대전 선출되었던 작가들을 모아 중국의 현대미술의 심장부이자 요람인 북경시의 예술특구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미술기행을 마련하여주었다. 신진작가들에서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과 연령층이 참가한 명실공히 전북미술의 대표주자들의 해외 첫 나들이 이었다. 인원구성도 좋았지만 전북미술의 현주소와 나아가 한국미술의 전반적인 것들을 중국미술과 비교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기에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하는 여행이었다. 특히 본인에는 과거 십여 차례의 중국여행을 하였지만 실로 북경이라는 곳은 처음이었고 게다가 미술분야를 집중적으로 탐방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어찌 가슴이 부풀지 않았으리,,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사실상 나에게 있어서 중국미술은 그리 큰 기대치로 다가오지 않았다. 중국미술에 대한 선입견이랄까? 그 동안 중국여행으로 얻은 지식으로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사회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어 있고 무언지 모르게 개방의 자유스러움 중에 사회를 통제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왔던 터 이러한 느낌들이 미술에도 적용되어 중국미술이 계속 발전되어 왔지만 그 한계도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한국미술이 다양성면이나 표현의 자유에서도 그래도 중국미술보다는 한수 위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 해서,,,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알량한 기대는 첫날부터 곧 무너졌지만 말이다…

방공호위에 지은 작가촌, 쏭장 예술구.

첫날은 북경시 외곽에 위치한 쏭짱 예술구를 탐방하였다. 쏭짱예술구에는 쏭짱미술관, 상상국제미술관, 모카베이징 등의 미술관이 소재해 있으며 과 방공호 위에 건립한 작가 촌이 있는 곳이다.

마침 쏭짱 미술관에서는 후엉 지타오(黃智濤)작가의 설치개념의 목 조각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술관을 들어가는 입구 그 크기부터가 범상치 않다. 넓은 계단을 내려가 접하게 된 전시실 크기와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압도적이다. 이런 규모의 전시장을 작품으로 채우려면 우선 작가들의 역량이나 스케일부터 커야 할 터 이러한 공간에서 전시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역량도 세계에 어느 미술관에 내놔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배가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전시 관람부터 중국의 크기에 놀랐다.

이러한 큰 규모의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접한 중국현대미술의 소감은 뭐랄까? 상당히 실험적이면서 자유스러움, 그리고 개성이 잘 표출되고 있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북경을 오기 전에 가졌던 중국미술에 대한 나의 좁은 소견 – 즉 여실히 현실을 보지 않고 추측으로 상황과 조건을 판단해 미리 선입견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느끼면서 말이다.

앞으로 열거될 다양한 북경 예술특구와 미술관에서 보게 될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필요할 것 같다.

중국의 현대미술의 시점은 일반적으로 1898년에 열린〈89 중국현대미술전〉을 들 수 있다. 이 전시는 일어난 같은 해 1989년 일명 '세상을 바꾼 해' 라 칭하는 천안문(天安門)민주화운동과 비견되고 하는 데,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정치사회적으로 개혁과 변화를 시도하였다면 가오밍루(高名潞)의〈89 중국현대미술전〉은 미술을 통한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시대조류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전시이었던 것이다. 단지 20여년의 기간을 통해 중국의 현대미술이 현재의 이 수준까지 성장하였던 것이 마치 중국의 경제성정과 맞물려 급성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20여 년 동안의 압축성장한 중국의 현대미술을 첫 전시장 쏭장 미술관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 규모가 마치 조그마한 학교 운동장을 크기를 방불케 한다. 첫날 중국북경 쏭짱미술관과 모카베이찡에서 접한 전시는 현 중국의 현대미술의 수준을 가늠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전시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음 날 북경 최대의 박물관인 국립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중국 서쪽 당나라 수도였던 서안(西安)에 있는 박물관보다는 유물들의 수가 적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수도에 있는 박물관답게 건물 내의 천정 높이나 전시벽면 크기 등등 그 규모는 일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다. 하지만 내용보다는 남을 보여주기 위함인 강한지…중국답게 좀 과도하다싶다.

그리고 찾아간 중국미술관은 마침 중국의 근현대 미술가의 전시가 기획전 형식으로 열리고 있었다. 중국 당대 최고의 수묵화가 인 이가염(李可染)의 이들 이소가(李小家)의 개인전과 함께 중국의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소가 선생의 담담한 필력으로 한필 한필 힘 있게 그려낸 수묵담채 실경 산수화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종병(宗炳)의 화산수서에서 말하는 인간과 자연이 모필(毛筆)의 표현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거침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1000호 이상의 대작이지만 작품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대충 그려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수묵산수화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눈을 세안한 기분이 든다. 한편 이렇게 현장 사생을 바탕으로 수묵화의 기본인 모필을 사용하여 자기만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작가나 작품을 한국에서는 접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 아쉬움만 남는다.

중국현대미술의 요람 따산즈 798을 보고 느끼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따산즈(798지역)는 그 규모나 한곳에 집합시킨 기획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무언가 서양과는 다른 중국스러움을 느꼈다.

북경 조양구에 북동쪽에 위치한 따산즈 798지역은 군수공장지역 이었다. 1950년대 구소련이 원조하고 구독일(독일민주공화국)이 설계를 맡아 바우하우스(Bauhaus)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며, 신중국전자 공업의 요람으로서 무선통신설비, 탱크 등을 제조했던 군수공장지역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 북경시 제2차 산업의 쇠퇴에 따라 798지역에는 빈 공장이 늘어났으며, 1997년 중국 중앙미술대학교의 수건국(隋建國)交手가 30여명의 강사와 같이 빈 공장을 임대하여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예술지역으로의 변화가 시작 되었다한다. 본격적인 예술특구로서의 형성은 2002년 798공장의 소유주인 북경칠성화전과집단이 이 공장 빈 건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공장 일부의 빈 건물을 예술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였고, 이후 가난한 예술가들의 입주신청이 몰려들면서 부터이다. 이후 2006에는 북경시 정부시책으로 798예술특구를 '문화창의산업기지로' 로 공식 지정하였고, 2008년에 시작된 북경시 5개년 경제사회발전계획을 통해 약 5억 위안(한화 600억원)을 지원하면서 현 상태의 예술구를 조성하였다. 따산즈예술구는 중국에서 가장 큰 예술구로 하루 2~3만, 798페스티벌 시기에는 3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한다. 2008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도로 및 경관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후 지금은 200여개의 창작실, 400여개의 갤러리, 50여개의 패션샵 이외에도 창작스튜디오, 레스토랑, 카페, 디자인 및 광고 회사, 출판사 등이 입주해 있다. 또한 160여개의 국제 미술품경매가 성황리 이루어지고 있으며 연간 2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다한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임과 서구의 상업예술자본과 상업시설이 입주하면서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점점 상업적인 관광지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썩 좋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마치 현 한국 서울의 인사동을 보는 기분이랄까!

따산즈에서의 갤러리 방문은 처음부터 강렬하였다. 따산즈 초입에 있는 Asian Art Works라는 화랑에서 데미안 허스트(Damein Hirst)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로 해골에 보석을 붙이는 작업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위해 전 세계유수의 화랑들이 대기하고 있다니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또한 그의 작품제작을 도와주는 조수가 150여명이나 된다하니 나같이 혼자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따산즈의 화랑들은 형형색색 독특한 형태의 구조를 가지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한가지정도의 개성 있는 장식들을 도입하고 있었다. 미국 첼시지역의 화랑들이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는 면과 확연히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미국미술과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개인의 생각으로는 미국의 현대미술을 뛰어 넘으려는 시도이자 도발이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단 북경 따산즈의 화랑들은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외부장식과 내부 전시공간들로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전시 작품들도 기대이상으로 현대미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중국의 현대미술의 높은 이해와 수준을 가늠 할 수 있는 장소이었다.

그리고 방문한 당인미술관, CAN ART화랑, PIN Gallery, UCCA예술중심 등의 미술관 및 화랑은 높은 수준의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방문한 허거쨩예술구는 따산즈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중국의 또 하나의 현대미술을 추구하는 장소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Found Museum에서 처음 마주 친 프랑스의 조각가 아르망의 작품과 세계유수의 작가의 소장품을 보고 중국의 현대미술의 높은 인식수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의 높은 경제성장으로 세계적으로 강국이 된 중국은 따산즈를 통해 미술분야에서도 세계강국으로 발돋움을 하려는 의지와 힘을 과시하고 있다. 푸념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만하는 기분이다.

현 따산즈로 대변되는 중국의 현대미술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

(2012,. 10 이철규)

수록 도판

모카베이징
모카베이징
쏭짱예술구
쏭짱예술구
AAW화랑 데미안 허스트전
AAW화랑 데미안 허스트전
상상국제미술관
상상국제미술관
중국미술관 이소가와 함께
중국미술관 이소가와 함께
쏭짱미술관
쏭짱미술관
당인미술관 전시작품
당인미술관 전시작품
당인미술관 전시작품
당인미술관 전시작품

  • 판독 참고: 본문의 '1898년에 열린〈89 중국현대미술전〉'은 지면 표기 그대로이며 1989년의 오식으로 보입니다.
  • 판독 참고: '수건국(隋建國)交手'의 '交手'는 지면 인쇄 그대로이나 문맥상 '教授(교수)'의 오식으로 보입니다.
  • 판독 참고: 이가염의 아들 이름 '이소가(李小家)'는 지면 표기 그대로이며 통상 '이소가(李小可)'로 알려져 있습니다.
  • 85쪽은 84쪽 도판이 이어지는 전면 사진 면이며, 스캔에서 상하가 뒤집혀 있어 정방향으로 보정했습니다.
지면 보기 · 원본 8쪽PDF에서 열기 ↗
지면 1지면 2지면 3지면 4지면 5지면 6지면 7지면 8

원 게재: 나의여행기(북경 미술기행) / 회화지 19호(2012) 78–85쪽 · 원본 PDF 78쪽 ↗

이 지면의 도판

MOCA Beijing(모카베이징)-MOCA Beijing(모카베이징)
쏭짱예술구 미술관-쏭짱예술구 미술관
데미안 허스트전시가 열리고 있는 AAW화랑-데미안 허스트전시가 열리고 있는 AAW화랑
상상국제미술관-상상국제미술관
중국미술관 이소가 선생과 함께 / 쏭짱미술관-중국미술관 이소가 선생과 함께 / 쏭짱미술관
당인미술관 전시작품-당인미술관 전시작품
당인미술관 전시작품-당인미술관 전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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