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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역대 기고문 발췌 (2000년 제8호)

한국의 정신이 숨쉬는 미술

이창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한국의 정신이 숨쉬는 미술

(2000년 제8호)

글 이창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한국의 미술은 약 100여 년 전 만해도 주로 중국미술의 영향을 받다가 1910년경부터 시작한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서는 일본식 미술교육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후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의 영향하에 미국식 교육과 일본식 교육이 혼합하여 진행되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식 미술교육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후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의 여러 미술사조들이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서 물밀듯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술이 다양성 속에서도 한국적 정신이 담긴 미술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일부작가들에 의해서 꾸준히 병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국대학들은 학교 구조조정을 비롯하여 지나치게 세분화되었던 전공학과들을 유사한 학과끼리 통폐합하고 학부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학부제 운영과 학과 통폐합이 다소 문제도 있지만 세계의 대학추세로 볼 때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오늘날의 미술은 토탈아트(Total Art)로 동·서양화 및 조각, 디자인 들의 요소들이 한 화면에 통합돼 표현되어 지는 경향이 많으므로 동양화든, 서양화든 하나의 전공만으로는 다양한 표현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통해서 자기가 필요한 과목을 폭넓게 수강하고 다양한 기법을 터득하여 보다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잠시 저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저의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절은 서양식교육과 가치가 절대적이었고 종교는 기독교가 거세게 확산되는 때였습니다. 저의 청소년 시절에는 서양의 가치와 종교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때 형성된 저의 가치관과 역사관, 종교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지속되었으나 1980년 초 처음으로 유럽과 미국 등을 여행하면서 저의 가치관과 판단력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힘있는 서양인들에 의해서 쓰여진 세계역사와 종교와 가치관들이 한국적 가치관과 역사관과 종교관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변화가 왔다고 하기보다는 이러한 것은 좀 더 향상된 자각과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력에 의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방학 때마다 한국미술의 원류와 현장을 찾아서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의 전통미술과 문화재의 약 70%를 차지하는 불교미술을 특히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그때 저의 종교는 기독교였기 때문에 여러 불교미술을 볼 때마다 미술사적 양식이나 색채 등 피상적인 부분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의 문화와 미술을 답사 한 후에는 저의 종교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비록 불교가 인도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외래종교이지만 약 1600여 년을 지나면서 한국화 되어, 토착화 되어 나의 정서에도 맞고 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후 불교대학을 졸업한 후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미술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불교에 대한 미술사적 시각과 불교신앙심이 어우러져 불교미술에 대하여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 우리의 것, 우리의 정신이 담긴 미술로 가야 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의 뉴욕에서 불시 시작한 속칭 현대미술은 한국에도 상륙하여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 현대미술의 개념은 미술이란 용어로 상징되던 회화나 조각의 개념을 떠나 입체미술, 설치미술, 행위미술, 사진합성, 비디오 아트 등 그 범위가 다양해 졌습니다. 그것은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분야가 다양한 진폭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의해 내는 현대사회에 미술만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현대미술의 난무가 마치 미술의 대종인양 그리고 그렇게 해야 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인양 인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미술이란 무엇인가? 예술로서 영속적 가치를 지닌 미술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동의 본질이 결여된 미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연과 인생을 느낄 수 없는,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 위안과 감동을 주지 못하는 미술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주는 센세이셔널리즘에 치중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타당한 조형이론에 의해서 그런 작품들도 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은 실험성 일과성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게 모두 대단하게 평가될 것은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서구 미술의 모방적인 것들이 우리의 현대미술인양 둔갑하고 그것들이 모두 각광받는 현상은 재고 되어야 합니다. 몇 십년동안 혼신을 다하여 시간과 돈과 땀과 눈물을 다 바쳐 진지한 조형작업을 해온 작가들이 마치 구시대의 뒤떨어진 작가처럼 치부되는 이 현실이 일부 젊은 작가들에게 의해 자행되기도 합니다. 과학과 세계적으로 공통화가 되어야 하지만 예술은 보다 더 민족화가 되어야 하지만 예술은 보다 더 민족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술은 우리 것 다운, 우리의 정신이 보이는, 우리작가 특유의 기법이 물씬 풍기는 것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우리미술의 축구가 있고 해답이 있습니다. 자생적인 우리의 미술, 서구의 아류가 아닌 우리의 창의적인 미술만이 서구와 겨룰 수 있다. 자생적인 우리의 미술, 서구의 아류가 아닌 우리의 창의적인 미술만이 서구와 겨룰 수 있고 계속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통미술이나 문화는 그것을 창출한 민족이나 국민의 미의식, 기호, 정서, 지혜, 창의력이 집약되 역사적 산물인 동시에 새문화 창조의 밑거림이 되는 것입니다. 전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탈출이란 허망한 허상일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통으로부터의 탈피는 오직 그것을 철저하게 섭렵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창출해야 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위대한 작가와 작품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통을 철두철미하게 소화한 바탕 위에서만 탄생되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또한 역사상 전통의 계승이 착실하게 이루어진 시대에만 위대한 문화적 업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외래미술의 수용은 올바르게만 한다면 자체적인 미술의 발전에 크게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자극과 활력과 가능성을 제공하여 주기도 합니다. 외래미술이 전통미술과 조화를 이룰 때에는 우리의 미술이 독자적 특수성과 국제적 보편성을 유지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하여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미술의 전통과 외래미술의 영향력이 균형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합니다. 만약 전통미술의 독자성만을 고집하고 외래미술의 영향에 압도될 경우에는 독자성과 정체성(正體性)을 잃게 됩니다. 외래의 것 중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올바른 수용을 위해서는 수용자측의 뚜렷한 가치관이 서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의식이나 정서에 맞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의식과 필요성에 입각하여 주체적이고 선별적으로 엄격한 검토와 판단을 거쳐 수용되어야 하고, 외형적 수용에 치중하지 않고 그 내면과 이론적 배경을 철저하게 천착하여 수용해야 합니다. 일단 수용한 것은 우리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재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미술은 작가의 생가과 기법이 합쳐져서 승화되어 표현되는 것입니다. 작가의 풍부하고 창의적인 생각 내지는 사상과 철학이 세련되고 뛰어난 기법을 통하여 구현되어야 만 훌륭한 창작품으로 가능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손재주를 키우는 일에는 몰두하면서 머리와 가슴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철학과 사상의 빈곤 속에 기능주의만 팽배하게 될 때 좋은 작품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철학과 사상의 빈곤 속에 기능주의만 팽배하게 될 때 좋은 작품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작가는 창작에 임함에 있어서 무엇을(주제, 내용), 왜 (제작동기), 어떻게(기법) 그릴 것인지 생각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확립하고 그것을 작품에 투영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찬 생각, 뜨거운 가슴, 뛰어난 솜씨를 갖춘 작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미술전통이 어떠하며, 어떠한 기여를 해 왔는지, 그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그것이 한국 민족의 미의식과는 어떻게 부합되며 현대의 우리가 취해야할 장점은 무엇인지에 관해 충분히 연구하여 한국미술의 창출을 시도할 때 만족할만한 작품이 탄생 되리라고 봅니다. 또한 구상(具象)이건 비구상(非具象)이건 창작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한가지 경향만을 고집하고 다른 경향을 배척하는 일이 있어서도 곤란합니다.

창작에는 수 없는 많은 길과 방법이 있으며 그 모든 길과 방법이 언제나 다같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재료를 무엇을 쓰든 한국적 미의 창출이 한국의 작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임이자 세계미술에 기여할 수 있는 첩경이고 이것이 또한 가장 세계적인 한국미술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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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특집】 역대 기고문 발췌 (2000년 제8호) / 회화지 24호(2017) 36–39쪽 · 원본 PDF 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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