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여행기
올해 초 2월 20일 친구 3명과 함께 중국에 가게 됐다. 사실 좀 오래되어서 여행기를 쓰려고 하니 기억이 아득하긴 하다. 우리의 처음 목적지는 북경이었고, 북경 외에 한 지역을 여행하기로 하고 간단한 여행계획을 세웠다. 이 여행은 어쩌면 좀 무모했는데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전 계획이나 예정이 없이 갑자기 시작되어서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는 속담처럼 좀 황당하긴 하지만, 그냥 여행하자는 말이 나와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하튼 즐거운 마음으로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날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4시간이나 연착됐다. 2008년 2월 20일은 육군 헬기가 양평군 용문산에서 추락해 조종사 등 탑승 장병 7명이 전원 사망한 날이다. 우리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비행기가 연착된다고 계속 투덜대고 있었다. 시간을 죽이고 죽여 하늘이 좀 편안해지던 시간에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북경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유학하는 친구 집에서 철판 깔고 숙박하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북경에서의 첫날밤은 왕푸징 거리를 구경하고, 천안문에서 국기 하향식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음날은 798지역에 가서 갤러리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 북경 자유여행을 했다. 나는 북경이 4번째여서 좀 지루했고 유학생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 명은 각자 북경여행을 했는데, 고궁에 다녀온 친구도 있고, 지하철만 타고 구경 다닌 친구도 있고, 각자 개성에 따라 즐거운 여행을 했다고 한다. 나는 친구와 집 주위를 구경하고 장도 보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중국여행 책자를 보며 겨울에 빙등제와 빙설제로 유명한 하얼빈을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 4명은 모두 중국말을 할 줄 몰랐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도 기차에 올랐다. 북경에서 하얼빈까지는 11시간정도 걸렸던 것 같다. 침대칸을 잡아서 새벽에 기차를 타서 저녁쯤 하얼빈에 도착하기로 했다.
중국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기차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대륙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만큼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와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쉴 사이 없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루한 시간이 계속된다. 정말 중국이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할 만큼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보통 기차를 탈 때 중국 사람들은 양손 가득 과일, 과자, 라면 등 먹을거리를 잔뜩 들고 탄다. 처음 중국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그 풍경이 너무도 이상했는데, 짧으면 5-6시간 길면 15시간 이상 기차를 타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자다 일어나다 먹다 그렇게 11시간 후 우리는 하얼빈에 도착했다.
하얼빈은 확실히 북경보다 날씨가 많이 추웠다. 내복까지 단단히 챙겨 입었는데도 정말 뼈까지 파고드는 추위가 마음까지 어는 것 같았다. 북경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했는데 기차표가 없었다. 그때부터 중국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당연히 당황하게 되고 기차역에서 4차선도로 건너에 있는 터미널을 몰라보고 택시를 타서 터미널에 데려다 달라고 하니 택시기사는 바가지 요금만 요구하고 엉뚱한 골목길에 내려주었다. 너무나 놀라서 말도 못하고 골목을 빠져나와서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조선족 모텔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여관을 발견했다. 혹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싶어 들어가 봤더니 다행히 조선족 청년이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조선족 청년을 붙잡고 상황 설명을 하고 기차표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곳에 묵기로 했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하얼빈 밤거리도 구경하고 저녁 식사도 하기 위해 택시에 올라 '중앙대가' 로 향했다. 하얼빈 중앙대가는 1900년대 러시아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러시아와 유럽풍의 건물들이 많아 이국적인 느낌이 풍기는 곳이다. 밤에는 건물에 아름다운 조명등을 켜놓아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춥고 배고팠지만 우리는 그 길을 한참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음식도 시켜먹었다. 해산물을 하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음식이 맛있었다. 거리를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고 낯선 곳이라 숙소에 돌아와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 조선족 청년의 도움으로 기차표를 구하게 됐다. 물심양면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조선족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택시에 올랐다. 북경에 가는 기차는 오후 4시 기차였고 그 전까지는 6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남은 시간을 최대한 아껴 하얼빈을 구경하기로 했다. 하얼빈은 겨울에 빙설제를 하는데 눈으로 거대한 조각을 하는 축제다. 우리는 우선 빙설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빙설제는 하얼빈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태양도 풍경구라는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태양도풍경구는 하얼빈시의 송화강 북쪽 끝에 위치하는 섬으로 스탈린공원과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일종의 거대한 공원인데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나 겨울이여서 그런지 허허벌판에 눈덩어리만 있어서 추위가 더 느껴졌다. 눈조각들은 사람의 키를 한참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낮은 앞산만한 조각상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많이 실망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성소피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성당으로 주변 극동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외부의 모습이 러시아 건물을 연상시키고 내부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2시였는데 성가대가 합창을 하는 시간이었다. 3곡정도를 불렀던 것 같은데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는 전시장으로 이용되는 듯 했다. 성당에서 나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하얼빈 여행의 많은 에피소드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놀란 일도 많았고 그만큼 즐거운 일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돌아가는 기차는 고속열차여서 8시간 만에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하얼빈 여행 얘기를 하면서 서로 한참 웃고 나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다함께 북경외곽의 시골마을에 가서 허물어가는 만리장성도 구경하고 시골마을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의 8박 9일의 여행은 끝을 맺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는 도무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지만, 지난 기억을 더듬어 돌이켜보니 즐거운 일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하얼빈에서 말도 안 통하는 4명의 정신없었던 여행은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원 게재: 전북회화-나의여행기 / 회화지 16호(2008) 64–67쪽 · 원본 PDF 6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