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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회화-여유로운 삶의 향기

사람살이

이 진 숙 (회원)

둘만 남았다. 덩그러니 큰 집에.....

'할머니~ ~'하며 손자 녀석이 잠에서 막 일어나 부엌을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올 것 같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녀석이 동생을 보았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 외가에 온 것이다. 아직 채 기저귀도 떼지 못한 녀석이 동생을 보았으니 얼마나 안쓰러운지…… 녀석의 이름은 가온이, 순우리말이다. 가온인 신사다. 인사도 잘하고 혼자서도 잘 놀고, 마당에 나가면 풀도 곧잘 뽑는다. 그러한 녀석이 동생 루미에게만은 폭력이 난무하다. 한번 말한 것은 절대 잊지 않고 실천하는 녀석인데, 왜 아니겠는가 22개월을 저만 예뻐하고, 저만 바라보고, 어디든지 저하고만 다니고, 누구에게든 관심의 집중이고,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와서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되었으니, 다른 것은 모두 인정해도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듯이 어른들이 잠깐이라도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면 곧바로 무차별 물고 꼬집기 일쑤이다. 나는 그런 가온이가 몹시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녀석과 늘 같이 다녔다.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두어 달을 같이 있으면서 키도 크고 말도 많이 늘고 뜀박질도 곧잘 하게 되었다.

'하버지 어디 있어?'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는다. '멍멍이는?' 하며 멍멍이에게 가자며 조른다. 마당에서는 혼자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깔깔거리며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둘만 살던 집에 가온이와 루미는 살아있는 인형이고 꽃이고 웃음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덤으로 찾아온 행복은 딸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바쁘게 살면서 친정에 와서 한가하게 부모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이렇게 산휴로 오랜 시간 같이 하니 얼마나 좋은지……내가 다시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고, 오랜 친구를 만나서 흉허물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해서 너무 좋았다.

더위가 어느 덧 가시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을 때, 회사에 복귀할 시간도 점차 다가오고, 오래 집을 비워두었기에 이제는 집에 올라가야겠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을 싸며 행복해 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차 두 대에 짐을 가득 싣고 올라갔다. 하루저녁을 같이 보내고 집에 내려오니 곳곳에 가온이와 루미, 그리고 딸아이의 흔적이 내 눈시울을 적신다. 괜히 쓸쓸한 기분이 들어오자마자 둘이서 손발 걷어 부치고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고 보니 또 다시 녀석들이 생각난다. 아이들 옷과 기저귀를 빨아 마당에 건조대를 내놓고 쨍한 햇빛에 말려서 정리할 때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깜짝놀라 받아보니 '할머니~ ~'하며 녀석이 전화를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빠이빠이' 하며 끊는다.

'여보 상추밭에 물도 주고 풀도 뽑아야겠어' 남편의 목소리에 밭으로 달려 나간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잔디에 물도 주고 배추밭도 돌보며 가끔씩 그와 같이 야외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손자들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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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전북회화-여유로운 삶의 향기 / 회화지 16호(2008) 70–71쪽 · 원본 PDF 7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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